이렇게 되자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적인 것으로 완전히 깨뜨려버렸다고 자신한 한국학계로서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런 "우려"가 지금도 싹 가셨다고 하기 힘들다.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박천수 교수는 2006년 충남대 백제연구소 기관지인 "백제연구" 43집에 투고한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을 통해 본 5-6세기 한반도와 일본열도"라는 논문에서 "한국측 일부 연구자 중에서는 "임나일본부"와 관련을 우려하여 전방후원분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또는 부정하려는 현상조차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함평 신덕고분 발굴이라 할 수 있다. 이 고분은 1991년 3월 국립광주박물관이 현지 실측조사를 하다가 도굴 구멍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같은 해 6월17일 이후 7월18일까지 약 한달 동안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도굴 피해를 보긴 했지만, 나중에 그 도굴품 중 상당수를 회수한 데다 수습 유물 또한 만만치 않아 이번에 같은 기관에서 발굴한 용두리 고분까지 포함해 조사가 이뤄진 전방후원분 7곳 중 가장 많은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신덕고분 발굴성과는 17년이 흐른 지금까지 구체적인 공개가 없다. 다만 광주박물관은 지난 95년 "함평 신덕고분 조사개보"라는 "행정보고서"만을 작성해 관계기관에 배포했을 뿐이며, 이조차 "대외비"로 묶어놓았다. 박물관이 당시 이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발굴성과가 자칫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