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의 침략 역사
일본의 침략은 5세기에 만들어진 광개토왕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 때에는 우리의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였음에도 일본은 광개토왕비를 조작해 일본이 백제와 신라를 지배했다고 왜곡하였다.
고려 말에는 왜구들이 침략해 약탈해 가는 일이 빈번했고, 조선 시대에도 왜구의 침략이 계속되어 1592년,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전란에 휩싸인다. 7년 간의 전쟁은 조선·명·일본 3국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특히 싸움터였던 우리나라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1860년대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급격히 근대화된 일본은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해, 1876년 우리나라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청일 전쟁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우위를 점령한 일본은 1904년 한일 협정서를,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하면서 국권을 강탈해 갔고 1910년 한일 합병 조약으로 국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2. 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란 일본의 야마토왜(大和倭)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임나)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설이다. 일본은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을 증거로 들며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임나일본부"란 말은 한국의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일본 측의 왜곡이 의심되는 이 주장은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조장하고 있으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3. 칠지도란?
칠지도(七支刀)는 일본 나라현의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철제 칼로, 오랫동안 숨겨져 내려오다 1953년에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칼의 몸 좌우로 가지 모양의 칼이 각각 세 개씩, 모두 일곱 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어 칠지도라 불리며, 칼의 몸 앞뒤에 61자가 금으로 새겨져 있다.
칼의 앞면에는 "泰○四年○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鋼七支刀(出)百兵宜供供候王○○○○(태○4년 ○월 16일, 무쇠를 백 번 두들겨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모든 적을 막아 낼 것이다. 후왕에게 주노니)"라는 34자가, 뒷면에는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예로부터 이와 같은 칼은 없었다. 왜왕 지는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라는 27자가 새겨져 있지만, 지워진 글씨 때문에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되었다.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 것이라는 설, 백제왕이 왜왕에게 바친 것이라는 설, 동진의 왕이 백제를 통해 왜왕에게 전해 주었다는 설, 백제왕이 왜왕에게 대등한 관계에서 전해 주었다는 설 등이다. 일본은 지워진 부분의 글씨를 달리 해석하여 칠지도를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로 주장하고 있지만 칠지도에 새겨진 글귀는 훼손의 의혹이 짙고, 또 칠지도가 일본으로 보내진 때는 백제의 국력이 가장 강했던 시기여서 일본 측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