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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倭亂 때 선조가 내린 18점의 선무 공신교서 가운데 하나인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가 일본에서 들어와 국립중앙박물관에 25일 안착했다.
이 교서는 MBC "느낌표" 제작진이 국민 모금 운동으로 모은 1억2천만 원을 들여 일본의 한 고서점으로부터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날 기증한 것이다. 이날 오후 박물관 앞뜰에서는 이 교서의 귀국을 알리는 "고유제"도 열렸다.
"공신 교서"는 공을 세운 신하에게 임금이 상을 내린 기록을 담은 문서.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김시민 장군의 공신 교서는 1604년 선조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18점의 선무 공신교서 가운데 하나다.
가로 226cm, 세로 37.2cm 크기의 비단 두루마리로 만들어진 교서에는 김시민 장군을 잃어 슬퍼한다는 내용과 함께 김 장군을 선무 2등 공신에 추증하고 유족에게 노비와 토지를 하사한다는 내용이 기록됐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산성 대첩,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는다. 당시 김시민 장군은 3천800명의 소규모 군대로 8배에 가까운 3만여 명의 정예 왜군을 물리쳤다.
이 교서를 일본의 고서점에서 처음 발견한 안승준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현재 6명의 공신교서가 남아 있고, 이 중 원균 등 4명의 공신교서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영훈 학예연구실장은 "다른 공신교서들이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 미뤄 이 교서도 보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느낌표"의 "위대한 유산 74434" 코너에 참여하고 있는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언제까지 국민이 모금해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들여올 것인가.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는 고유제 후 보존처리를 거쳐 29일부터 8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에 전시되며, 이후 국립진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영구 전시된다.
<김시민 공신교서 원문>
敎
嘉善大夫慶尙右道兵馬節度使兼晋州牧使贈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資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事上洛君金時敏書
王若曰守孤城?大敵旣盡徇國之忠嘉乃績報爾勞宜擧錄勳之典玆循公議用示殊恩惟卿稟氣雄豪早事弓馬登名虎榜以忠義自任於身陳力王家處夷險不貳其操頃緣國運之否塞而値島夷之陸梁百年承平之餘萬姓莫有固志八路望風而潰一箇未見男兒時卿通判晋陽乃獨屹如砥柱自請方伯董率梟健之兵屢斫列營逐去蜂屯之賊軍聲因之自振隣邑倚以爲安方官軍出戰在外之時聞虜騎乘虛薄城之報倍道馳入本鎭視死如歸負石重修女墻以身先卒絶甘分少能得人歡心飮血登?誓以死共守罔晝夜督戰出智計益奇偏師無外援寡固不可敵衆兇徒竟遠遁弱猶能以制强惟終始效忠者若玆故前後行賞之非一初陞牧伯聊表一時之褒嘉繼擢總兵佇見大材之展布豈料夫一中流矢竟壞予萬里長城生爲良將死爲忠臣在卿何憾與共患難未共安樂若已痛?贈正卿而官子孫奚足盡義士之?虜再至而城陷沒益可驗前日之勳遺愛?深於晋人誦功頗切於陳疏?輿論而弗拂揆予意而亦宜肆策勳爲宣武功臣二等超二階爵其父母妻子亦超二階無子則甥姪女壻超一階嫡長世襲不失其祿宥及永世仍賜奴婢九口田八十結銀子七兩表裏一段內廐馬一匹至可領也於戱百世將匹休庶垂裕於後裔九原不可作竊自悼於中心故玆敎示想宜知悉
一等 李舜臣 權 慄 元 均 二等 申 點 權應銖 金時敏 李廷? 李億祺 三等 鄭期遠 權 ? 柳思瑗 高彦伯 李光岳 趙 儆 權 俊 李純信 奇孝謹 李雲龍
萬曆 三十二年十月 日
가선대부 경상우도병마절도사겸 진주목사 효충장의협력선무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겸 지의금부사 상락군 김시민에게 내리는 교서(임금의 글)
왕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대는) 외로운 성을 지키고 많은 적을 막아내어 이미 나라에 목숨을 바치는 충성을 다하였으니. 그 공적을 가상히 여기고 그대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하여 마땅히 공훈을 표창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할진대 이에 드러난 공의(公議)를 따라 특별한 은총을 보이고자 하노라.
아! 그대의 타고난 기품은 웅대하며 호탕하였고. 일찍이 활 쏘고 말 타는 것 일삼아 무과에 이름을 올렸다. 자신에게는 충의를 자신의 임무로 여겼으며 국가와 왕실이 곤경에 처하매 힘을 다하였으니 그 마음가짐이 변함이 없었다. 지난번 국운이 막혀 섬 오랑캐가 날뛰자. 우리나라는 백년 동안 평화로운 나머지 온 백성이 굳센 뜻을 가지지 못하니 팔도가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는) 풍문만 들어도 무너지고 한 사람의 남아다운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 때 경(卿)은 진양(진주)의 판관으로서 홀로 큰 기둥처럼 우뚝 섰도다. 스스로 관찰사에게 청하여 날래고 용감한 군사를 거느리고 누차 늘어선 적의 진영을 격파하였고 벌떼처럼 모여 있는 왜적을 쫓아버렸으니 그 군대의 명성은 이로 인해 스스로 떨쳐졌고 이웃 고을이 그대에게 의지하여 편안하게 되었도다.
바야흐로 관군이 출전하여 외방(外方)에 나가 있을 때에 오랑캐의 기병이 그 허술한 틈을 타서 약한 성(본성. 진주성)을 공격해온다는 보고를 듣고 급히 달려 본진으로 달려 들어오니 죽을 것을 보고도 돌아온 것과 같았다. 돌을 져다가 성의 여장(女墻. 성 위의 방어 시설)을 거듭 수리함에 몸소 병졸보다 먼저 나섰고. 맛있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적은 것이라도 나누어 먹으니 백성들의 환심을 얻을 수 있었고. 피를 마시며 성 위에 올라 죽음으로써 함께 지킬 것을 맹서하였다.
밤낮을 잊고 싸움을 독려하고 지모(智謀)와 계략(計略)을 냄이 더욱 기묘(奇妙)하였으며. 적은 군사에다 밖으로부터의 도움도 없어서 적은 군사로는 진실로 많은 적의 무리를 당해낼 수 없었으나 흉한 무리들이 마침내 멀리 도망하도록 하고야 말았으니. 약한 군사로써 오히려 강한 적을 제압하였도다.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충성이 드러난 것이 이와 같으므로 전후에 상을 준 것이 한 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목사로 승진시켜 애오라지 경의 한 때의 가상함을 포상하였고. 이어서 발탁하여 군사를 총괄하게 하여 큰 재목의 뜻을 펴는 것을 보고자 했으나. 어찌 뜻밖에 한 발 흐르는 화살에 맞아 마침내 나의 만리장성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였으랴? 살아서는 좋은 장수가 되었고 죽어서는 충신이 되었으니 경에게 있어 어찌 유감이 있으리오. 그대와 더불어 환란을 이겨내었으나 그대와 더불어 안락함은 함께 누리지 못하니 이처럼 나의 가슴이 아픔이라.
정승의 벼슬(병조판서)를 증직하고 자손에게 벼슬을 준들 어찌 족히 의로운 선비를 표창함을 다한다 하겠는가? 오랑캐가 다시 이르러 성이 함락되매. 전일의 공훈이 더욱 값지도다. 그대가 진주 사람들에게 사랑을 끼침이 이미 깊어서 자못 공적을 기리는 상소가 간절하고 여론을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내 뜻도 또한 그러하노라.
이에 그대를 선무공신 2등에 봉하고 두 계단의 품계를 올려주며. 그 부모와 처자에게도 역시 두 등급을 높여준다. 아들이 없으면 생질이나 조카. 사위를 한 등급을 올려 주겠으며. 적장자는 대대로 이를 세습하여 그 녹을 잃지 않게 할 것이다. 죄를 사면하는 것도 영구토록 할 것이다. 아울러 노비 9구. 토지 80결. 은 7냥. 겉옷과 속옷의 옷감 1단. 내구마 1필을 내려주니 이르거든 받으라.
아아! 앞으로 백 세대에 달할 때까지 그 아름다운 명성을 지닐 것이며 후손에게 내려 전해질 것이다.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없으므로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슬퍼하노라.
그러므로 이에 나의 뜻을 보이고자 하니 마땅히 이 뜻을 알라!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초등학교때 우연히 보게 된 문화재 반환을 다룬 방송 위대한 유산 74434.
"공식적으로 확인된"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유산의 갯수는 7만 4천 4백 3십 4점이다.
위대한 유산 74434는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환수받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위대한 유산 74434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가시적인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금 약탈당한 일본을 벗어나 고국 진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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