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18 13:00
▲ 네이버 메신저앱 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스티커(위)와 만화 주인공들(아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모와 흡사하다. /라인 캡처, 조선DB직장인 송모(42)씨는 얼마전 초등학생 아들이 쓰는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채팅창이 온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모를 쓴 캐릭터로 도배돼있었기 때문이다. 군모의 의미와 일제 군국주의가 상징하는 바를 설명해줘도 아들은 “귀여운데 어떻냐”며 반문할 뿐이었다. 송씨는 ‘만화 캐릭터의 하나고 글로벌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은 인정해야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찜찜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라인에서 서비스중인 "개구리중사 케로로" 스티커의 캐릭터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모자와 흡사한 군모를 쓰고 있다. /사진=영화 "마이웨이" 中송씨를 곤란하게 만든 서비스는 최근 사용자 1억5000만명을 돌파한 네이버(NHN(035420) (315,000원▲ 22,000 7.51%)) 모바일메신저 ‘라인’이다. 이 서비스는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국내에서도 가입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건당 2000원의 다양한 스티커는 초중고생 사이에서 인기 상품 가운데 하나다. 네이버 역시 스티커 판매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하지만 라인에서 판매되는 스티커 중 상당수가 단순한 일본풍을 넘어 지나친 왜색(倭色)을 보여주고 군국주의적 색채까지 나타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 선임을 계기로 역사 왜곡을 일삼는 현재 상황에서 근ㆍ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일본 문화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라인의 국내 버전에서 판매되고 있는 캐릭터 스티커는 총 141종으로, 이 중 일본 군국주의 논란을 낳은 캐릭터로 제작됐거나 지나친 왜색풍을 띠는 스티커는 최소 10종이 넘는다.
▲ 라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비밀결사 매의 발톱단" 스티커(왼쪽)와 "에반게리온" 스티커(오른쪽). 두 애니메이션 모두 일부 내용이 군국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라인 캡처‘개구리중사 케로로’와 ‘에반게리온’, ‘비밀결사 매의 발톱단’ 등은 군국주의 논란에 휩싸인 만화 캐릭터들이다. 만화 속 케로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모와 거의 유사한, 붉은색 별이 박힌 노란 모자를 쓰고 있다. 케로로의 소대원들이 쓴 모자 역시 일본의 옛 군모와 흡사하다. 에반게리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 공격을 감행한 일본군 특공대 ‘가미카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군국주의 논란을 낳았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타이즈맨, 오소마츠군(2개), 천재 바카본(2개), 카이스마 레이지 스티커. 캐릭터들이 왜색을 강하게 띠는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라인 캡처일본 전통의상을 착용한 캐릭터도 많다. 내려받기 순위 상위권에 있는 ‘타이즈맨’ 캐릭터는 일본 마츠리(신령에 제사를 지내는 축제) 의상과 흡사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하치마키(흰 천으로 만든 머리띠)와 유사한 흰 머리띠를 두르고 ‘훈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속옷만 입은 채 춤추는 모습이 민망할 정도다. 기모노와 게다(일본 나막신)를 착용한 왜색(倭色) 짙은 캐릭터도 많다. 인기 스티커인 ‘천재 바카본’ 캐릭터 역시 일본 의상인 유카타와 게다를 착용했다. 일본어 문구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된다. 산리오의 ‘시나모롤’ 스티커는 문구가 쓰인 13개 스티커 중 7개에 일본어가 들어갔다.
▲ 라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시나모롤" 스티커(맨위), 카카오톡에서 서비스하는 "짱구"(가운데), "마이멜로디"(아래) 스티커. 시나모롤 스티커에는 일본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간 반면 짱구와 마이멜로디 스티커에는 한글이 들어갔다. /라인, 카카오톡 캡처현재 네이버 라인이 일본 업체에 외주를 주고 판매하는 스티커는 전체(141종)의 절반에 가까운 70여종이다. 이밖에 네이버가 자체 제작하는 스티커에도 일본인들이 참여한다.라인과 경쟁관계인 카카오톡도 일본에서 만든 이모티콘(라인 스티커와 같은 개념)이 포함돼 있다. 카카오톡에 따르면 이모티콘 357개 가운데 일본 캐릭터가 20개가 있다. 하지만 이 중 과도한 왜색을 띠는 상품은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일본 캐릭터로 만든 스티커에도 일본어 대신 한국어 문구가 들어갔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모바일메신저 마이피플에서 제공하는 이모티콘 가운데는 일본 캐릭터가 아예 빠졌다.
라인이 이처럼 지나친 일본 지향을 보여주는 이유는 이 서비스가 네이버 일본 법인(라인주식회사)에서 만들었고, 일본 사용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전체 사용자 중 약 30%인 4200만명이 일본인이고, 라인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일본에서 발생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일본인들의 유료 콘텐츠 구매 비율이 워낙 높아 시장의 수요에 맞춰 스티커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네이버 측은 라인이 일본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외국에서 대부분 라인이 일본 서비스라고 알고 있으며 회사측도 그렇게 설명한다”며 “일본에서 처음에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었으니 일본 제품이 맞다”고 말했다.
▲ 역사 왜곡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조선DB라인은 연이은 역사 왜곡 발언으로 외교적 물의를 일으킨 아베 총리가 국정 홍보에 이용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내 홍보효과까지 톡톡히 봤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라인에 ‘수상관저’ 공식 계정을 개설하고 “라인 친구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아베 신조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됐다. 라인이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만큼, 네이버 입장에서는 라인주식회사의 모기업이 한국 업체라는 사실이 가급적 알려지지 않도록 ‘쉬쉬’하고 있다.이 때문에 해외 언론들까지도 라인을 한국이 아닌 일본 제품으로 인식한다. 영국 BBC는 지난달 말 “중국의 위챗, 일본의 라인과 한국의 카카오톡이 수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고 보도했으며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일본의 문자 앱 라인”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한ㆍ일 관계가 경색되는 가운데 네이버가 지나치게 일본풍이 강한 콘텐츠를 국내에 무분별하게 유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군국주의나 왜색을 띠는 일본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들여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 아베 총리는 최근 "731"이라는 숫자가 적힌 전투기에 탑승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731부대는 과거 일본군이 한국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조선DB특히 아베 총리는 최근 ‘731부대(과거 일본군이 한국, 중국, 러시아인 등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한 부대)’를 연상케 하는 숫자가 적힌 전투기에 탑승하는 등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어, 네이버의 일본 콘텐츠 유통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태웅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수용자에게 일본 문화라는 걸 사전에 충분히 인지시키고 온라인 콘텐츠 감독 기관의 관리 아래서 적절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장기나 욱일승천기, 신사참배와 달리 기모노나 게다 등 일부 일본 문화는 수용 가능 여부를 결정짓는 선이 애매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또 “역사 교육을 교과서만 갖고 할 게 아니라 만화, 영화 등 콘텐츠 교류 문제도 고려해서 다각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청소년들이 일본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