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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범죄행위 일본인 잘 몰라…교과서에서 가르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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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범죄행위 일본인 잘 몰라…교과서에서 가르쳐야"

오마이뉴스 원문 기사전송 2013-05-25 11:45



다다미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명성황후 연구실이다. 바닥에는 명성황후 관련 탁본 자료가 널려있다. 벽에는 "명성황후"와 일본인 이름을 새긴 자료가 붙어있다. 책상 위에도 명성황후 자료가 쌓여있다. 
일본 구슈 구마모토현 아소산 기슭에 사는 가이 도시오(甲斐利雄·84)씨 집을 찾은 것은 지난 21일 저녁 무렵이다. 그는 한국인 방문객을 보고 맨발로 뛰어 나왔다. 환하게 웃으며 끌어안았다. 

그를 처음 만난 때는 지난 2004년 5월이다. 그는 중학교 교사를 은퇴한 직후부터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구마모토 지역 관련자를 찾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1997년경 우연히 만난 한국인소녀가 나를 명성황후와 연결시켜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그 소녀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처음 알려줬다. 만나고 싶지만 이름도 알지 못한다. 그때부터 명성황후에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모임의 회장을 맡은 당시 그는 기자를 처음 만나 "죽는 날까지 명성황후 시해범을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꼬박 9년의 시간이 흘렸다. 그동안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명성황후 사건과 관련한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가이씨는 명성황후 시해에 적극 가담한 한 범죄자 후손을 찾아 참배를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씨가 호응했다. 가와노씨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공모하고 사건 당일 직접 왕궁을 쳐들어간 구니토모 시게아키(1861-1909)의 외손자다. 

2005년 당시 84세인 가와노씨는 조부를 대신해 경기도 남양주 홍릉을 찾아 명성황후 묘소에 무릎을 꿇었다. 사죄의 절을 올렸다. 참회를 눈물을 흘렸다. 시해사건 후 110년만의 일이었다. 가와노씨의 역사 인식과 정수웅 감독(당시 다큐서울 대표)의 중재 등 역할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가이씨가 없었다면 애당초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다.

기사 이미지▲ 가이도시오씨의 집 방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에 대한 자료로 꽉 있다. 벽에 시해사건 가담자의 명단이 붙어 있다.ⓒ 심규상
기사 이미지▲ 가이도시오씨의 집 방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에 대한 자료로 꽉 있다. 벽에 시해사건 관계자 48명의 명단을 붙어 놓았다. 붉은 원안은 가이씨가 거주하고 있는 구마모토 출신(21명)을 표기한 것이다.ⓒ 심규상
- 110년 만에 가와노씨와 명성황후 묘소를 찾았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은?
"참배를 위해 홍릉을 찾았을 땐 마침 영친왕(고종의 여섯째 아들)의 기일을 맞아 명성황후 증손자 이충길씨와 우연히 만났다. 앞을 막았다. 가해자 후손이 묘소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팽팽한 긴장감에 모두가 초긴장했다. 그때 명성황후 후손은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가와노씨는 "일본 황실이 사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행히 명성황후 후손들이 가와노 선생의 진위를 알고 잘 대접해주었다."

가와노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조부의 죄상을 알려왔다. 또 "개인적인 사죄로 그칠 일이 아닌 일본 정부가 나서 사죄하고 교과서에서도 다뤄야 한다고 본다"며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본 서적"에서 만든 교과서에 유일하게 기술돼 있었는데 우경화 과정에서 삭제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더 사죄하기 위해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해온 가와노씨는 지난해 향년 90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가이씨는 가와노씨에 대해 "많은 명성황후 시해 후손을 찾아 나섰지만 우리모임의 활동을 끝까지 지지하고 협력한 사람은 가와노 선생뿐"이었다며 "그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시해사건에 가담한 후손들을 만날 때마다 "과거를 들추지 말라", "협조할 수 없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떤 후손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조상의 죄상을 밝혀 죄인으로 만들려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반면 가와노씨는 자신의 손자에게 까지 "대를 이어 사죄해야한다"고 가르쳤다."

기사 이미지▲ 가이씨가 ?아낸 마츠무라 다츠키(松村辰喜,1868-1937)의 기념비. 아소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기념비를 그가 탁본한 것이다. 이 기념비에는 "조선에 머물면서 동지와 민비사건에 관여" 한 일을 치적으로 새겨 홍보하고 있다.ⓒ 심규상
일본에서 시해사건 가담 후손들을 찾는 일은 간단치 않다.

"일본에는 한국의 "족보" 같은 기록물이 없다. 3대가 지나면 조상들이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가담 후손들을 통해 시해가담자의 행적을 찾는 일에 난관이 많다."

그러던 중 그는 마츠무라 다츠키(松村辰喜,1868-1937)의 기념비에서 명성황후에 대한 기록을 발견했다. 아소국립공원 입구에 서 있는 마츠무라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일을 "치적"으로 새겨 홍보하고 있었다. 마츠무라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행동대장격이였던 아다치 켄죠우(安達謙藏, 1864-1948)의 요청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와 <한성신보>사에 입사했다. 

<한성신보>는 일본 외무성이 한반도의 침략을 위해 기밀보조비를 지급해 경영을 도운 신문사로 "명성황후시해사건"의 비밀 본거지로 사용됐다. 명성황후 시해현정에는 마츠무라 등 <한성신보> 전 사원이 가담했다. 마츠무라 등 시해사건 관련자들은 일본 히로시마 재판에 회부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무죄 방면됐다. 하지만 아소국립공원에 들어선 마츠무라 공적비에는 "조선에 머물면서 동지와 민비사건에 관여" 한 일을 치적으로 새겨 놓았다. 

기사 이미지▲ 방안 벽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사죄하는 뜻으로 만든 연이 걸려있다. 가이씨가 직접 매년 정성을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심규상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일을 "치적"으로 새겨 국립공원에 세운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잘못된 일이라고 기록해 아소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들 모두가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립공원 측에 이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으나 전혀 변화가 없다."

- 마츠무라 공덕비의 존재를 처음 알리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 후손을 만났나?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고 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 무덤 위치도 가르쳐 주지 않아 어디인지 찾지 못했다. 마츠무라의 사진을 보면 얼굴에 길게 흉터가 있다. 자료를 찾다 본인이 직접 "젊을 때 조선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다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을 찾았다. 얼굴 흉터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매년 모임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방문단을 조직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경복궁과 명성황후의 묘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을 찾고 있다. 일본인을 대신해 "사죄의 글"을 올리기 위해서다. 오는 10월로 8년째를 맞는다. 방안 벽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사죄하는 뜻으로 만든 연이 걸려있다. 가이씨가 직접 매년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사죄방문단을 모집하는 홍보포스터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120개, 재작년에는 100개의 연을 만들었다. 올해는 지금까지 24개를 만들었다. 사람들을 만나 연을 전하며 명성황후 사건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일종의 홍보포스터다. 글자 한자 한자를 쓸 때나 대나무살을 다듬을 때마다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 한국 방문 경비는 어떻게 조달하나?
"경비는 모두 개인부담이다. 7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회원 15명이 참여했다. 올해도 갈 예정이다. 하지만 고령으로 걷지 못하거나, 앞을 볼 수 없거나 하는 등 몸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 걱정이다."

기사 이미지▲ 가이씨가 직접 만든 올해사죄방문단을 모집하는 홍보포스터이자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사죄하는 뜻으로 만든 연이 걸려있다.ⓒ 심규상그의 향후 계획은 후임을 맡을 젊은 회원들을 찾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후임을 맡을 젊은 사람들을 찾아 육성하는 일이다. 5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지만 대부분 나이가 많다. 다행히 50~60대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어 안심하고 있다. 회원들이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자료를 공부하며 훈련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관련 자료와 책을 읽게 하고 소감문과 이어서 이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있다."

다른 하나는 명성황후 사건을 통해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일이다. 

"구마모토시민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일을 계속해 나가려고 한다. 올 초 구마모토 내에 있는 퇴직교사 모임에서 우리 모임을 소개하고 활동을 소개했다. 그랬더니 규슈지역 퇴직교사모임에서 또 발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지난 3월 규슈지역모임에서 발표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앞으로도 이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2년 후에는 명성황후 묘소를 참배해온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주년에 맞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 중이다."

같은 시간 일본 내 주요 인사들의 망언소식이 전해졌다. 가이씨는 거듭 교육을 강조했다.

"일본인들은 일본이 행한 범죄행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가서 관광만 할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 묘소를 찾아 참배하거나 서대문형무소, 독립기념관 등을 꼭 둘러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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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犯罪行為日本人よく分からなくて…教科書で教えると

日本犯罪行為日本人よく分からなくて…教科書で教えると

oh my news 原文 記事送信 2013-05-25 11:45



たたみ部屋に立ち入った. 方案は明成皇后研究室だ. 底には明成皇后関連拓本資料が散らばっている. 壁には ¥"明成皇后¥"と日本人名前を刻んだ資料が付いている. 机の上にも明成皇后資料が積もっている. 
日本グシュ熊本県阿蘇山岸に住むガイ回ります(甲斐利雄・84)さん家を尋ねたことは去る 21日夕方頃だ. 彼は韓国人訪問者を見て裸足で飛び出した. 明るく笑いながら抱きしめた. 

彼を初めて会った時は去る 2004年 5月だ. 彼は中学校教師を引退した直後から明成皇后弑害に加わった熊本地域関連者を捜す事に沒頭していた.

1997年頃偶然に会った韓国人少女が私を明成皇后と連結させて新しい生に導いた. その少女が明成皇后弑害事件を初めて知らせてくれた. 会いたいが名前も分からない. あの時から明成皇后に事件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 ¥"明成皇后を思う集まり¥"も作った.

集まりの会長を引き受けた当時彼は記者を初めて会ってたまらない日まで明成皇后殺人犯を追跡すると言った. それからぶっ通しで 9年の時間が流した. その間彼は日本と韓国を行き交って明成皇后事件と係わった太めな成果を残した.

ガイさんは明成皇后弑害に積極加わった一犯罪者子孫を尋ねて参拜を提案した. 彼の提案にがワノ−ダスミ(河野竜巳)さんが互応した. がワノ−シは明成皇后弑害事件を公募して事件当日直接王宮を攻めこんだグニトモしげあき(1861-1909)の外孫だ. 

2005年当時 84世人がワノ−シは祖父の代わりをして京畿道南揚州洪陵を捜して明成皇后墓所にひざまずいた. お詫びの寺をあげた. 懺悔を涙を流した. 弑害事件後 110年ぶりの事だった. がワノ−シの歴史認識とゾングスウング監督(当時ドキュメンタリーソウル代表)の仲裁など役目に起因したことだったがガイさんがいなかったら始めから可能ではない事だった.

記事イメージ▲ ガイ都市オさんの家部屋は明成皇后弑害事件加担者に対する資料でぎゅっとある. 壁に弑害事件加担者の名簿が付いている.c。 深堰上
記事イメージ▲ ガイ都市オさんの家部屋は明成皇后弑害事件加担者に対する資料でぎゅっとある. 壁に弑害事件関係者 48人の名簿に付いておいた. 赤い原案はガイさんが居住している熊本出身(21人)を表記したのだ.c。 深堰上
- 110年ぶりにがワノ−シと明成皇后墓所を尋ねた時記憶に残る事は?
参拜のために洪陵を捜した時はちょうど栄親王(高宗の六番目息子)の期日を迎え明成皇后曽孫子イツングギルシと偶然に会った. 前を阻んだ. 加害者子孫が墓所に現われたからだ. 瞬間空気が凍りついた. 張り切ている緊張感に皆が超緊張した. あの時明成皇后子孫は ¥"日本政府次元の謝りが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たしがワノ−シは ¥"日本皇室が謝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返事した. 幸いに明成皇后子孫たちががワノ−先生の真偽が分かってよくもてなしてくれた.

がワノ−シは機会がいる度に外祖父の罪状を知らせて来た. また個人的なお詫びで止む事ではない日本政府が出て謝罪して教科書でも扱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と明成皇后弑害事件が ¥"和書¥"で作った教科書に唯一に記述されていたが右傾化過程で削除されたと批判したりした. <oh my news> インタビューを通じてもっと謝罪するために来ると言う暮したいと言って来たがワノ−シは去年享年 90歳の年で死んだ. 

ガイさんはがワノ−シに対して多い明成皇后弑害子孫を探して出たが私たちの集まりの活動を最後まで支持と協力した人はがワノ−先生だけだったと彼は歴史的でも非常に貴重な人と回想した. 

弑害事件に加わった子孫たちに会う度に ¥"過去を暴かないでね¥", ¥"協調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口を割らなかった. どんな子孫は無罪判決を受けたが先祖の罪状を明らかにして罪人にマンドルリョするのか¥"と抗議したりした. 一方がワノ−シは自分の孫にまで ¥"代を引き継いで謝罪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教えた.

記事イメージ▲ ガイさんが ?アネンマツムだとダツキ(松村辰喜,1868-1937)の記念碑. 阿蘇山国立公園入口にある記念碑を彼が拓本したのだ. この記念碑には ¥"朝鮮に泊まりながら同志と明成皇后事件に関与¥" 韓日を政治功績で刻んで広報している.c。 深堰上
日本で弑害事件加担子孫たちを尋ねる事は簡単ではない.

日本には韓国の ¥"系図¥" 同じ記録物がない. 3台が経つとご先祖が何の事をしたし何が間違ったのかを分からない. 加担子孫たちを通じて弑害加担者の行績を捜す事に難関が多い.

そうする中彼はマツムだとダツキ(松村辰喜,1868-1937)の記念碑で明成皇后に対する記録を見つけた. アソグックリブゴングワン入口に立っているマツムラを称える記念碑には明成皇后弑害事件に加わった事を ¥"政治功績¥"で刻んで広報していた. マツムという明成皇后弑害事件の行動隊場格だったAdachiケンジョウ(安逹謙蔵, 1864-1948)の要請を受けて韓国に渡って来て <漢城新報>死に入社した. 

<漢城新報>は日本外務省が韓半島の侵略のために機密補助費を支給して経営を助けた新聞社で ¥"明成皇后弑害社でも¥"の秘密本拠で使われた. 明成皇后弑害ヒョンジョンにはマツムだとなど <漢城新報> 全社員が加わった. マツムだとなど弑害事件関連者たちは日本広島裁判に回附されたが証拠不十分で皆無罪方面された. しかしアソグックリブゴングワンに立ち入ったマツムだと功績費には ¥"朝鮮に泊まりながら同志と明成皇后事件に関与¥" 韓日を政治功績で刻んでおいた. 

記事イメージ▲ 方案壁には明成皇后弑害事件を謝罪する意味で作った軟餌かかっている. ガイさんが直接毎年真心を入れる事でもある.c。 深堰上
一国の国母を弑害した仕事を ¥"政治功績¥"で刻んで国立公園に建てたことは確かに誤った仕事だ. 誤った仕事だと記録してアソグックリブゴングワンを捜す観光客たち皆が歴史をまともに分か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国立公園側にこれを絶えず申し立てて来たが全然変化がない.

- マツムだと功徳費の存在を初めて知らせて問題を申し立てた. その子孫に会ったか?
尋ねたが会ってくれていない. 私たちと考えが違う. 墓位地図教えてくれなくてどこなのか捜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 マツムラの写真を見れば顔に長く傷あとがある. 資料を捜して本人が直接 ¥"若い時朝鮮でさまざまな事をして生じたこと¥"と言ったという記録を捜した. 顔傷あとが明成皇后弑害事件と連関があることもできると思う.

彼は毎年集まりの会員たちを対象で訪問団を組織して明成皇后が弑害された景福宮と明成皇后の畝がある京畿道南楊州市洪陵を捜している. 日本人の代わりをして ¥"お詫びの文¥"を載せるためだ. 来る 10月で 8年目に迎える. 方案壁には明成皇后弑害事件を謝罪する意味で作った軟餌かかっている. ガイさんが直接毎年真心を入れる事だ. お詫び訪問団を募集する広報ポスターでもある.

去年には 120個, 一昨年には 100個の年間を作った. 今年は今まで 24個を作った. 人々に会って年間を伝えて明成皇后事件を知らせて参加を督励している. 一種の広報ポスターだ. 字一字一字を書く時や竹肉を整える度に裂果性をつくしている. 

- 韓国訪問警備(経費)はどんなに調逹するか?
警備(経費)は皆個人負担だ. 7年の間一年も欠かさないで行っている. 去年にも会員 15人が参加した. 今年も行く予定だ. しかし高令で集めることができないとか, 前を見られないとかするなど身がよってくれない人々がますます増えて心配だ.

記事イメージ▲ ガイさんが直接作った今年お詫び訪問団を募集する広報ポスターと同時に明成皇后弑害事件を謝罪する意味で作った軟餌かかっている.c。 深堰上彼の今後の計画は後任を引き受ける若い会員たちを尋ねる事だ.
一番重要な事は後任を引き受ける若い人々を尋ねて育成する事だ. 50人余りの会員が活動しているが大部分年上だ. 幸いに 50‾60代会員たちが参加していて安心している. 会員たちが明成皇后に対する歴史資料を勉強して訓練している. 若い人々に関連資料と本を読むようにして所感文科引き継いでこの事をするという駄目押しを受けている.

他の一つは明成皇后事件を通じて日本人たちの歴史意識を覚ますようにする仕事だ. 

駆魔モットー市民たちに歴史的事実をまともに知らせる事を続いて行こうと思う. 今年の初熊本内にいる退職教師の集まりで私たちのの集まりを紹介して活動を紹介した. すると九州地域退職教師の集まりでまた発表してくれと言う要請が来た. 去る 3月九州地域の集まりで発表した. 大きい反響を起こした. 今後ともこれを拡大して行く予定だ. 特に 2年後には明成皇后墓所を参拜して来てから 10周年になる年だ. 10周年に迎える多様な行事を計画の中だ.

同じ時間日本渡してください人士の妄言消息が伝わった. ガイさんは重ねて教育を強調した.

日本人たちは日本が行った犯罪行為に対してよく分からない. 学校で教えないからだ. 明成皇后を弑害した歴史的事実に対して分かっている人々も珍しい. 日本人たちが韓国へ行って観光ばかりするのではなく明成皇后墓所を尋ねて参拜するとか西大門刑務所, 独立記念館などを必ず見回して感じたら良い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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