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쏙 빼고 주변국 빙빙 … 구멍 뚫린 아베 "도넛외교"
동남아·미·몽골·러·중동 등 16개국
매달 한 번꼴 순방 … 대륙 포위 전략
역사 문제로 한국과도 관계 삐걱
"한·미·중 밀착에 되레 고립 불러"
“외교는 단순히 두 나라의 관계만 보는 게 아니다. 지구의를 바라보듯 세계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취임 직후인 올 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밝힌 외교관(觀)이다. 일본 언론들도 “지구의에 핀을 꽂아나가는 방식”이라며 아베의 정상외교를 ‘지구의 외교’라 불렀다. 취임 후 지금까지 아베가 방문한 국가는 16개국이다.
조기 미국 방문 계획이 틀어지자 그는 1월 동남아 3개국(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을 먼저 찾았다. 2월 미국에 이어 3월 말 몽골, 4월 말~5월 초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터키를 방문했다. 5월 말 서울로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담이 중국 측 거부로 무산됐고, 아베는 행선지를 미얀마로 틀었다. 6월엔 폴란드·영국·아일랜드, 참의원 선거 압승 뒤인 7월 말엔 다시 동남아 3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을 갔다.
한 달에 한 번꼴의 외국순방이다. 아베는 참의원 선거 직전 한 토론회에서 자신의 외교를 자화자찬하다 야당 대표에게 호되게 반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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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러시아에 가선 외상·방위상의 2+2회의를 창설키로 했고, 일본 총리로 아일랜드를 첫 방문하는 등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도 강화됐다. 많은 나라가 일본에 기대를 걸고 있다. 외교는 이렇게 지구 전체를 보면서 해야 한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참 많은 나라 이름을 댔는데, 한국과 중국이 빠져 있다. 그건 너무 큰 문제 아닌가.”
그 무렵부터 아사히(朝日)신문 등은 ‘지구의 외교’가 아닌 ‘도나쓰(도넛) 외교’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아베의 방문국을 지도상에 색칠하면 한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이 된다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중국·한국과의 외교 경색을 꼬집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아베가 취임 후 줄곧 ‘중국 포위 외교’ 노선을 취한 건 “먼저 중국 주변국들과의 연계를 강화해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중·일 관계에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대놓고 “중국을 포위하겠다”고 밝힐 수가 없어 만들어낸 단어가 ‘가치관 외교’다.
“자유와 민주주의·인권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주장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립돼 있지 않은 중국을 주변국들로부터 ‘왕따’시키겠다는 플랜이었다. 2006~2007년 제1차 아베 내각 때도 이와 비슷한 ‘자유와 번영의 활’ 구상이 있었다. 북유럽과 동유럽·중앙아시아·인도·동남아 지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일본이 지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지역들과 한국·일본을 이으면 큰 활의 모양이 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당시 ‘자유와 번영의 활’ 구상을 입안했던 아베의 측근들이 아직도 아베 외교팀의 주축이다. 7년 전 외상이던 아소 다로(麻生太<90CE>)는 현재 부총리로 정권의 2인자다. 또 아소 외상 밑에서 사무차관을 지냈던 야치 쇼타로(谷<5185>正太<90CE>)는 ‘내각 관방 참여’란 직함을 가진 아베 관저의 외교 실세다. 과거 외무성의 과장으로 ‘자유와 번영의 활’ 구상의 실무를 담당했던 가네하라 노부카쓰(兼原信克)가 관방부장관보로 관저에 포진해 있다. ‘자유와 번영의 활’이 ‘가치관 외교’ ‘지구의 외교’로 둔갑했을 뿐 ‘중국 견제론’이 아베 외교의 본질이며, ‘아베-아소-야치-가네하라’ 라인이 주도한다는 점엔 변화가 없었다.
아베에게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잦은 동남아시아는 중국 포위의 남쪽 기지다.
그가 1월 인도네시아에서 발표한 ‘동남아 외교 5원칙’은 그 결정판이다. ‘힘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열린 해양’을 내걸며 아베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말엔 남중국해 섬 영유 문제로 중국과 날카롭게 대립 중인 필리핀에 일본의 해양순시선 10척을 제공키로 약속했다. ‘동남아 편중 외교’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10월 라오스·캄보디아·브루나이를 찾아 ‘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방문’ 프로젝트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남쪽 기지가 동남아라면 북쪽 기지는 몽골이다. 3월 초 특사로 파견됐다 돌아온 측근 시오자키 야스히사(<5869>崎恭久) 자민당 정조회장 대리가 지도를 펴놓고 “중국에 경제 의존도가 큰 몽골을 (일본 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고 하자 아베 총리는 두말없이 오케이를 했다. 당시 외무성은 중국을 크게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아베가 밀어붙였다. 몽골에 간 아베가 미국·일본·몽골 3자 정책대화를 제안하자 중국은 크게 격앙됐다.
처음엔 한국도 ‘포위의 대상’이 아닌 ‘포섭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독도 문제와 역사왜곡으로 양국관계가 삐걱대며 ‘한국과 함께 중국을 압박한다’는 아베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래서 한국은 중국과 함께 아베식 도넛 외교의 구멍이 됐다.
이렇듯 아베가 7개월 내내 중국 포위에만 열을 올렸지만, 최근엔 도넛외교에 대한 비판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중국을 포위하려다 오히려 일본이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謙次)는 일본을 제외한 한국·미국·중국 3국 간 정상회담이 활발히 진행 중인 사실을 지적하며 “(아베가 만든 것은) 중국 포위망이 아닌 일본 포위망으로, 그간의 외교 방침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초조감 역시 포위망을 짠 일본 쪽이 더 큰 것 같다. 냉랭한 갈등 속에서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35주년을 맞은 12일 일본은 “전략적 호혜관계에 따라 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중국은 “현재 중·일 관계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양국은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지향한다’는 정신으로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내가, 그럴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