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는 크게 유학의 파벌이 두개 존재해 있었다
하나는 훈구파 다른 하나는 사림파
훈구파(관학파)는 고려를 뒤집고 역성혁명으로 관료제를 확립했고 중앙 집권주의를 강화했다.
사림파(사학파)는 고려의 유학자를 잇고, 조선을 부정한 고려 충신의 후예로 지방자치와 유교원리주의를 강조했다.
조선 전기는 훈구파가 주도해,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역사관과 정치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중기부터 사림파가 대두해, 지방에서 뿌리를 두고 향약과 서원을 중심으로 유교적 사회질서를 만들어 갔다.
사림파가 집권하고 나서는 이상적인 유교적 문치를 표방했으므로, 문약한 국가가 되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나서 더이상의 중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만의 청나라가 아닌 조선이 중화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림파는 오히려, 조선을 황제국으로 조선의 임금을 황제로 하는 小中華를 만들고자 했다
이것이 小中華의 핵심이다.
조선이 근대화가 늦어, 외세의 침략에 대응이 늦었던 것은 , 실사구시보다 위정척사를 중시한
사림의 피가 마지막까지 함께 했기때문이나
사림은 사림 나름대로, 이상적인 고고한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론
中華사상은 [나라]가 아니라, 이상적 [정치鄕]을 사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