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의 경우 1923년에 있었던 일본의 관동 대지진은 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람에게는 지옥과 같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 당시 토오쿄오의 가옥 64만채 중 40만채가 불타버렸고 사망자만도 10만명 이상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건물이 쓰러지는 까닭에 넓은 공터로 도피한 사람들은 불덩어리 재들이 쏟아져내리는 바람에 그대로 집단 소사했다고 한다. 지옥일지라도 그처럼 참혹하고 처참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은 일본인에게만 악몽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게는 그보다도 더 뼈저린 한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참화속에 관동일대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진 일본 관헌은 ‘조선인들이 방화하고 있다’ ‘그들이 우물에 독약을 뿌렸으니 물을 마시지 마라’ ‘먹을 것들을 강탈 당했다’는 등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흉폭해진 민심을 우리 재일교포에게 돌린 것이다. 이듬해 1924년 당시 구미위원회(歐美委員會)가 밝힌 바에 의하면 2만3천59명 이상이 살해 또는 실종 된 것으로 나타났다. 애써 축소시킨 일본 당국의 비공식 집계에서도 이때 포악해진 일본인들에게 죽창 등에 마구 찔러 죽임을 당한 수가 7천명이 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