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세종대왕은 국가 안보와 과학 기술 발전과 더불어 민주적인 정치를 함께 이룩한
전세계 유일무이의 왕이다.
세종은 한글 창제의 업적만 있던 왕이 아니다.
노비 출신의 기술자인 장영실을 천거하여 여러가지의 시계, 천문대 등 과학 기술 발전에 도모했다.
정치적으로는 국방을 강화하여 왜구의 침입에 몸살을 앓던 조선에 대마도 정벌로 침략을 저지했다.
민생을 위한 복지도 대단했다.
임신한 여자나 남자들은 출산 휴가가 가능했다.
노비에게 먼저 출산 휴가를 여자에게는 출산 전 1개월, 출산 수 100일 (세종실록32권)
남자에게는 30일(세종실록64권)의 휴가를 주는 복지 제도
1435년 6월21일 사회적 약자인 노인을 배려하는 수직(壽職)제도를 제정하였다.
수직제도란 80세 이상인 노인에게는 양노연(養老宴)이름으로 노인을 위한 잔치를 베풀고,
쌀 두섬을 하사하고,
90세 이상인 노인에게는 8품관직(명예직)을, 100세 이상 노인에게는 노비를 면하게
하는 반상(班常)철폐를 단행했던 제도를 말한다.
수명 46세 시대였음에도 세종 23년에는 100세이상의 노인이 10명이나 되었으며,
그중 여자가 7명, 남자가 3명이었고,
104세 최장수 노인이 있었다고 세종실록에 기록 되어있다.
남녀 평등도 있었다. 한국의 남성 우월주의가 생겼던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다.
15세기 까지만 해도 정도전의 경국대전에 의한 통치로 남녀 평등이 가능했다.
15세기 까지는 남자가 부인의 처가살이를 하는게 한국의 전통 풍습이었다.
그리고 제사는 지금은 장남이 지내지만, 15세기에는 남녀 모두 지냈고 자식들이 돌아가며 올렸다.
재산 상속도 장남이나 아들에게만 주었던 조선 후기와 달리 모든 자녀를 공평하게 주었다.
15세기 이미 한국은 가장 청렴하고 복지화 된 사회와 굳건한 정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정권은 당시 사회에서 오래 갈 수 없었다.
한국은 이미 과거 가장 성숙한 정치를 했던 나라이다.
그래서 일본이 더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동양권 나라로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던 나라이다.
한국에 말뚝을 박는 행위 자체도 그들의 뿌리 깊은 역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 사람들에게 민도가 낮다 등의 발언은 삼가는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