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학과 교수의 또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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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분을 제가 추출해서 올립니다. 일본인들은 이것에 동의합니까?
한국 역시 프랑스와 미국에 의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었으나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이를 물리쳤다.
1905년 11월, 이토히로부미는 무장한 일본군을 이끌고 서울의 왕궁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무장한 일본군의 포위 속에 한국의 대신들을 위협하여 소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토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러일전쟁 중에 독도를 불법적으로 자국의 영토에 편입시켰는데, 이는 한국의 영토를 강점한 것으로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불법적인 영토 침탈 행위이다.
또 일본군들은 의병들의 근거지가 될 만한 촌락과 가옥, 심지어는 오래된 사찰까지 닥치는 대로 방화함으로써 말 그대로 한반도를 완전 초토화시켰다.
안중근의 의거는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어 이후 이 지역에서 항일투쟁이 활성화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 일대에서 독립군들은 일본군을 대파하여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우리 민족은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만 년 역사 속에서 숱한 시련을 이겨낸 민족이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문보기
韓国史学科教授のもう一つの文
一部分を私が抽出してあげます. 日本人たちはこれに同意しますか?
韓国もフランスとアメリカによる丙寅の役と辛未の役を経験したが民族の団合された力でこれを飽きた.
1905年 11月, 伊藤博文は武装した日本軍を導いてソウルの王宮をかこんだ. そして武装した日本軍の包囲の中に韓国の大臣たちを脅威していわゆる ‘ウルサヌックヤック’を強制で締結するようにした.
だけでなく日本は露日戦争の中に独島を不法的に自国の領土に編入させたが, これは韓国の領土を強点したことで国際法的にはっきりと不法的な領土侵奪行為だ.
また日本軍たちは義兵たちの足だまりになるに値する里と家屋, はなはだしくは古い査察まで次から次へ火を放つことで言葉とおり韓半島を完全焦土化させた.
安重根の義挙は韓国人はもちろん中国人にまで大きい胸を打って以後この地域で抗日闘いが活性化になるのにこの上なく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
1920年鳳梧洞と青山里一帯から独立軍たちは日本軍を大破して抗日武装闘争の輝く戦果をおさめた.
日製に国を奪われた時我が民族はこれを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ると信じた. 半分だけ年歴史の中で多い試練を勝ち抜けた民族がこのように虚しく崩れるわけないという信念があったか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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