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정체…난민통제력 상실
올 유럽 선거 끝나면 푸틴 영향력 더 커질 가능성"
기사 이미지 보기헤지펀드업계 대부이자 열린사회재단 운영자인 조지 소로스 미국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과 중국 정치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해 온 민신 페이 미국 클레어몬트매켄나대 케크국제전략연구소 소장 겸 정치학과 교수가 올해 정세를 통찰하는 특별 기고문을 한국경제신문에 보내왔다. 소로스 회장은 유럽연합(EU)체제의 내부 모순이 커져 곧 옛 소련처럼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페이 교수는 시진핑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한 중국에서 권력 다툼이 발생할 것으로 예견했다.
나는 여든여섯 살 먹은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시민이 됐다. 어떤 정치체제가 지배하는가의 중요성을 어릴 때 배웠다. 히틀러의 독일이 1944년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아버지는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닫고 가짜 신분증을 구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때 죽었을 것이다.
1947년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한 헝가리를 탈출해 영국으로 갔다.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철학자 카를 포퍼를 사사했다. 나는 사람들이 지도자를 뽑고, 지도자는 유권자의 이익을 살피도록 요구받는 ‘열린 사회’와 통치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안을 조작하려 시도하는 ‘닫힌 사회’를 구별하게 됐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때다. 열린 사회들은 위기에 처했다. 파시스트 독재자부터 마피아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닫힌 사회가 부상하고 있다. 선출된 지도자들은 유권자의 정당한 기대와 염원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 유권자는 현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나는 EU가 처음 구상될 때부터 이 제도를 열렬히 지지했다. 열린 사회 구상을 실현하는 것이라 여겼다. EU 지도자들은 실현 가능한 목표를 일정한 계획표에 따라 제시했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치력을 동원했다. 이들은 하나하나의 행위가 다음 단계의 통합을 필요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그렇게 EU로 나아갔다.
EU, 자발적 연합체 성격 상실
그러나 이후 뭔가가 상당히 잘못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동등한 국가들의 자발적인 연합체’는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로 변질됐다. 채무국은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채권국은 채무국들이 억지로라도 의무를 다하게 하려 애쓴다. 이는 자발적인 관계도 아니고, 동등한 관계도 아니다.
독일은 유럽의 헤게모니를 쥐었지만 성공적인 패권국이 되려면 자국 이해관계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지키지 못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을 시작해서 EU의 발전을 이끈 것과 대조적으로, 금융위기 이후 독일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긴축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통일 전 독일은 유럽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해 언제나 돈을 좀 더 낼 의향을 보였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EU 예산과 관련해 독일의 추가 부담을 요구했을 당시 독일이 어떤 태도를 보였던가.
독일은 자국 이익 더 챙겨
그러나 통일로 비싼 비용을 치른 독일은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을 때는 추가 부담을 감당할 만큼 사정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유럽 재무장관들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가 더 무너지면 안 된다고 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국 유권자를 의식해 ‘모든 국가는 자국 금융회사를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EU 분열의 시작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EU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점점 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법조문들이 유로존의 발목을 잡았다. EU 조직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유권자는 소외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反)EU 움직임이 부상했다.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 부결 등으로 EU 해체 경향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푸틴 방식, 열린 사회와 공존 못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것인가. 특히 EU의 운명이 우려스럽다. EU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놓일 위험이 있다. 그의 사고방식은 열린 사회와 공존할 수 없다.
푸틴은 자기 권력의 취약성을 알고 있다. 그의 체제는 천연자원을 뽑아낼 순 있지만 경제를 성장시키진 못한다. 그는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벌어진 ‘색깔 혁명’(장미혁명 오렌지혁명 등)으로 인해 긴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제했고, 이어 잘못된 정보와 거짓 뉴스를 퍼뜨려 민주주의를 뒤흔들었다. 푸틴이 트럼프가 선출되도록 도운 방식이다.
올해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에서 줄줄이 선거를 치르는 유럽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에선 유력 대선주자 두 명이 푸틴과 가깝다. 이들 가운데 차기 대통령이 나온다면 푸틴이 유럽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난민위기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서 EU의 붕괴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EU는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이 1990년대 초 겪은 것과 비슷한 길을 갈 전망이다. EU가 달라지기 위해서라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EU의 해체를 막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조지 소로스 회장 약력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1947년 영국으로 이주 △1952년 런던정치경제대 졸업 △1956년 미국으로 이주 △1970년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설립 △1973년 퀀텀펀드 설립 △1992년 파운드화 투자로 성공 △1993년 열린사회재단(OSF) 설립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