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에 나오는 임나는 옛날 경상북도 고령 지방에 있었던 부족국가, 즉 임나가야를 줄인 말로 신라에서는 금관가야 다음으로 6가야의 맹주국이었다고 해서 대가야라고 불렀다. 그런데 바로 이 임나에 왜(倭)가 일제 강점기의 총독부처럼 "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 임나일본부설인데, 이는 712년 편찬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고사기는 원래 고대의 신화.영웅전설.민간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일본이 한반도 경영설을 주장하는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정한기사(征韓記事)를 보면 그 값어치를 쉽게 알 수 있다.
황후(신공)는 신이 지시한 대로 서정(西征)을 시작하였다. 바다로 건널 때 물 속의 크고 작은 고기들이 전부 모여 배를 떠밀고 항해하였다. 도중에 순풍이 크게 일어 배는 풍랑을 타고 전진하였는데 배가 일으킨 파도가 신라국의 국토를 절반이나 물에 잠기게 하였다.
이런 황당한 신화전설을 바탕으로 하는 임나일본부설은 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일본 학자들도 고사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선조가 세운 광개토태왕비에 임나가야가 나오고 왜가 등장한다는 것이 사카와가 그려 온 탁본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비는 이런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여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살려 줌과 동시에 한국정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였던 것이다.
문제는 광개토태왕 당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었는데 어떻게 "일본부"를 세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일본"이란 국호는 광개토태왕 시대보다 거의 300여 년이나 뒤인 7세기 후반에 가서야 쓰게 된다. 여기에 대한 일본의 답은 왜=일본, 즉 광개토태왕비에 나온 왜는 바로 일본의 선조라는 것이다.
먼저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서 광개토태왕 당시는 야마토 정권이 서부 일본을 통일하지 못했고, 강력한 기마군단을 가진 고구려와 맞서 싸우거나 이미 기마전투 방법을 알고 있던 가야를 격파하여 200년간이나 통치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다. 더 나아가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왜는 "북큐슈 일대의 백제의 조종 밑에 움직이던 친백제, 친가야적 존재이다.
왜는 "북큐슈 이토지마 반도에 있었던 가야 계통 소국이다. 왜가 백제나 가야에서 건너간 유민들이고, 당시의 전투는 고구려.신라 대 백제.가야.왜의 연합세력 간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왜는 당연히 본국을 도와 싸워야 했다.
4세기 말 일본열도에서는 아직 통일된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다.
광개토태왕비에 나타난 왜는 해적처럼 한반도 남부를 침범한 세력이지 신라와 백제를 신하국가로 삼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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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女皆 臂, 點面, 文身. 沒水捕魚. 無文字, 唯刻木結繩. 敬佛法, 於<百濟>求得佛經, 始有文字.
남녀는 모두 팔과 얼굴에 점을 찍는 문신을 한다.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 문자는 없어, 나무에 줄을 맺어 새긴다. 불법을 숭상하여 "백제"에서 불경을 구하니 문자의 시작이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538년 입니다. 즉 6세기까지 일본은 미개인 이였습니다.
군사력과 문화수준이 아프리카 보다 못한 수준이였던 것입니다.
食用手
손으로 음식을 먹는 수준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