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 미군에 의하여 일본여성은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조직적 성폭력 피해에 직면하게 된다. [가리꼬미(Round Up)]라 불리웠던 일제검거에 의한 강제 성병검진, 강제치료의 피해이다. 검진이란 말은 위생적인 일, 혹은 본인을 위한 일이 실시되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상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집창지구의 여자들에게 실시된 성병검진의 실태는 그것 자체가 잔인한 성폭력이었다. 미군과 그 지시를 받은 일본정부·지방청은 미군병사를 성병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집창지구만으로는 부족하다하여, 그 폭력을 가두로까지 확대하였다.
거리에서 여성을 다짜고짜 납치하여 강제적인 검진을 실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폭력을 합법화한 것이 앞서 언급한 성병 예방법이다. 최초의 [가리꼬미]는 폐창령의 4일 뒤인 1월 28일에 동경에서 실시되어 그 후 전국에서 거듭 실행되었다. 3월의 RAA 폐쇄는 수많은 여자들의 일거리를 빼앗았지만, 그 대부분이 노상 매춘 이외에 따로 살 길을 마련할 수 없었다.
각지에 노상 매춘이 급증하고 더욱이 만연하여, 8월의 전국적인 [가리꼬미]에서는 대략 만5천명이 체포되었다. [가리꼬미]는 49년 9월까지 미 헌병의 지휘로 이루어지고, 그 이후는 일본측이 일체를 인수하였다. 미 헌병이나 일본관헌이 거리에서 매춘을 한다고 의심하는 것만으로 저항도 못하고 폭력적인 연행이 자행되었다. 우연히 일제검거 구역 안을 통행하던 중에 인권유린도 지나치게 심한 난폭한 검거가 당연지사처럼 행해졌다. 검진하는 자리에서 다수의 일반 장병이 [성병 교육]이라 사칭하여 세워놓고 구경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부나 여학생, 근로여성들이 [매춘부]로 의심받아 검진을 강제당하는 이른바 미스 캐치(miss catch)도 드물지 않았다. 당시의 매춘부 중에는 미스 캐치가 된 체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강제 검진에서 받은 타격은 피해여성으로 하여금 자포자기토록 만들어 [신세를 망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생성이 발표한 1952년의 미군병사 상대의 노상매춘은 17-18만명 이상이었다.
1954년 11월에 일어난 가나가와현의 사가미하라 기지의 소녀집단윤간 사건의 전말은 하나의 전형일 것이다. 사건의 고소를 접수한 미군장교는 가해자인 미군병사가 피해자를 범하기 전에 [초코렛과 1달러의 군표를 주었기] 때문에 [겁탈이 아니라 매춘이다. 오히려 소녀들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큰소리를 쳐서 미군병사의 죄는 묻지 않게 했던 것이다. 또 앞에서 서술한 [가리꼬미(일제단속)]의 피해도 마찬가지로 치도세나 센다이의 기지에서는 매춘부의 3할, 이따이에서는 4할, 타치카와에서는 5할 이상이 미군병사에게 겁탈당한 일이 [전락]의 원인이라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겁탈이 매춘을 조장하였음도 간과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