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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칼럼 NIDA!!! 젊은 사람들은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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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禹昌 칼럼]자기가 선택하는 인생

오스트리아의 시인 Hugo von Hofmannsthal의 詩 [외면적 인생의 노래]는 큰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면서 인생에 대하여 심금에 닿을 만한 관찰을 포함하고 있다.  인생에는 방황과 고독과 고통 또 기쁨과 열매가 있으나,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저런 많은 것을 보아서 의미가 있나?] 하는 물음들이 생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 것을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작으면서 깊은 느낌의 어떤 순간이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하지만. [그래도 "저녁이군"★ 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Hofmannsthal은 이렇게 말한다. [이 하나의 말-깊은 뜻과 눈물이 흐르는 이 하나의 말]로부터 [마치 벌집 구멍으로부터 진한 꿀 흘러 내리듯] 감미로움이 흐를 수 있다.

저녁은 해의 밝음이 가고 밤의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명암의 교체만으로도 저녁은 특별한 감흥을 준다. 또 이 감흥에는 더욱 知的 인식이 스며 있다. 저녁 시간은 하루의 끝이다. 그것에 주의하는 것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하나로 포착하는 것이다. 저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감흥과 깨달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외면화된 삶에서 귀중한 것은 이와 같이 작은 내면性의 깨달음을 분명히하는 것이다.

★ 원래 의미는 夕飯(Dinner)가 아니라 夕(Evening), KJ 번역 시스템 때문에 誤譯이.

외적인 순응만 강요된 사회
[외면적 인생의 노래]는 老年의 지혜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Hofmannsthal가  詩를 만들었을 때는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였다. 詩를 만들었을 때, 그는 빈(Vienna)의 심미주의적 詩風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감흥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詩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젊은 시절의 心情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법학 공부를 하던 호프만스탈은 이 詩를 만들 무렵 문학과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詩의 내면性의 강조는 나쁘지 않게 생각되지만, 시인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그것이 현실 도피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내면이 없는 외면이 맹목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외면이 없는 내면도 공허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외면적 인생에 중요성을 두는 경향이 있는 만큼 내면을 강조하는 것은 균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내면의 동의 없이 사는 인생은 결국 나의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적인 인생은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외부세상에서 살고 또 가능하다면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이다. 개인의 인생의 문제를 떠나서, 외면적 순응만을 요구하고 내면적 의미의 추구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도 창조성의 근거를 잃고 무엇보다도 안정의 바탕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안과 밖이 맞아 들어가는 인생이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젊은 시절은 자신이 수긍할 수 있는 의미를 실현해줄 수 있는 인생을 추구하다가도 대부분은 사회의 요구에 타협하면서 安着點을 찾게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젊은 시절이 없는 사회가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한다. 교육제도 그리고 대학 입시제도의 혼란도-사실 또 많은 사회 문제도--깊은 근본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외면화된 우리의 인생의 방식에 緣由하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달로 오랫동안 계속되던 대학 선발 절차가 마감된다. 말할 것도 없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입학은 되었지만 원하지 않는 대학에 입학이 된 사람도 있고,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입시 준비를 해야 할 사람도 있다. 원하는 대로 된 사람에게는 축하의 말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주어야 마땅하겠지만, 입시제도의 난관을 경험한 모든 젊은이들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 제도에서, 대학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일류대학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데에는 守門將이 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守門將이 내놓는 질문과 지원자의 답이 맞아들어 가야 한다. [열려라, 참깨!]라는 암호를 발견하는 것에 학생들은 수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것은 願書를 준비하기 전의 1년 또는 2~3년일 수도 있고, 요즘 추세로 보면 유치원을 들어갈 무렵부터 守門將이 내어놓을 것 같은 암호들을 익히는 것에 긴 세월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려는 것은 얼른 생각하기에는 일류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류대학의 교육이 참으로 이류와 다른가? 교육의 내용의 높고 낮음은 교수와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시설에 영향을 받을 것인데, 정말로 이러한 항목들에서 일류와 이류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인가? 일류, 이류, 삼류 하는 말들이 顯示하는 차이가 크다고 想定하더라도, 대학 지망생이나 그 부모가 이러한 것들을 考慮한 결과 일류대학을 선택하는 것일까? 대학을 가까에서 지켜본 사람이면, 차별化해서 이야기되는 대학들에서 받는 교육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일류, 이류에 따라서 학문이나 사회봉사 활동에서 교수들의 수준이 반드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차이가 난다고 하여도 학부 학생들의 수용 능력을 생각할 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시설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중요한 문제는 대학의 선택이 정말로 나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나는 대학에 의하여 선택되는 것이다. 전공이나 학과의 선택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어떤 학문을 공부하고 싶은가는 중요치 않다. 어느 단과대학, 어느 학과가 나를 받아주고, 나중에 어느 이름 난 직장에서 나를 받아주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직장에서 선택 당하는 현실

내가 원하는 공부가 어떤 것인가,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일이 쉽지 않다. 바른 판단의 한 요소는, 지혜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에 못지 않게, 무엇을 의미 있는 것으로서 절실하게 느끼는가-이에 관련하여 마음 속에 들려오는 부름을 아는 일이다. 심증이 생길 때까지는 방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일을 시험하고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하는 방황을 허용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모두 밖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고를 때에는, 무엇이 내 마음이 원하는가 보다는 무엇이 명품이냐가 중요하다. 아파트를 구하는 데에도 기준은 편의나 생활공간으로서의 느낌보다 부동산 市場의 전망이다. 인생의 의미는 사회적 지위의 명품 가치에 의하여 정해진다. 물론 외면적 사회에서, 이름은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름은 허영심을 만족시켜준다. 그것은 취직이나 존경이나 사회적 지위와 교환할 수 있는 高價의 어음이다. 그러나 실질과 허상이 교차되는 명품의 세계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나의 인생이다. 나는 참으로 내가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작은 순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날 하루가 끝난 다음, [저녁이군★]하고 저녁의 감흥에 주의할 수 있는 사람은 실로 극히 희귀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 金禹昌 / 고려대 명예교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2131823425&code=9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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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動的なコラム NIDA!!! 若い人々は必読!!

[金禹昌 コラム]自分が選択する人生

オーストリアの詩人 Hugo von Hofmannsthalの 詩 [外面的人生の歌]は大きい主題を扱うことではないのに人生に対して心琴に触れるに値する観察を 含んでいる.  人生には彷徨と孤独と苦痛また喜びと実があるが, 結局は [このすべてのものが何の所用があるか?] [あらゆる多くのことを見て意味があるか?] する問いたちが 生ずるようになる. そんな中にもそれを償ってくれることができることは, 小さながら深い感じのどんな瞬間だ. 何の所用人家だと言うが. [それでも ¥"夕飯だね¥"★ して言う人は多くのことを言うこと]だ--Hofmannsthalはこんなに言う. [この一つの言葉-深い意味と涙が流れるこの一つの言葉]から [まるで蜂の巣穴から濃い蜂蜜下がるように] 甘美さが流れることができる.

夕方は海衣明るさが行って夜の闇が始まる時間だ. 明暗の入れ替えだけでも夕方は特別な感興を与える. またこの感興にはもっと 知的 認識が染みている. 夕方時間は一日の終りだ. それに気を付けることは一日を返り見てそれを一つで捕捉するのだ. 夕方だと言うことはこの感興と悟りを言語で表現する行為だ. 外面化された生で貴重なことはこのように小さな内面性の悟りを明確にするのだ.

★ 元々意味は 夕飯(Dinner)ではなく 夕(Evening), KJ 翻訳システムのため 誤訳が.

外的な順応だけ強要された社会
[外面的人生の歌]は 老年の知恵を表現していることのように聞こえる. しかし Hofmannsthalが  詩を 作った 時は二十の歳が只今過ぎた時だった. 詩を 作った時, 彼はヴィン(Vienna)の審美主義的 詩風の影響の下にあった. 感興の大切さを言ったことはここに係ると言える. しかし 詩は心深い所で明らかに感じられる生を暮すという彼の若い時代の 心情を表現したことでもある. 法学勉強をしたホフマンシュタールはこの 詩を 万たち頃文学と哲学で方向を変えた.

しかし 詩の内面性の強調は 悪くないように 考えられるが, 詩人の若い年を思えば, それが現実逃避であ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疑心を持つようにする. 内面のない外面が盲目であることは違うことがないが, 外面がない内面も空虚な事だ. しかし世の中は外面的人生に大切さを置くきらいがある位内面を強調することは均衡のための必要な事だ. 内面の洞のなしに暮す人生は結局私の人生ではなく他人の人生を暮すものと言える.

 

理想的な人生は自らが意味あると感じることができる人生を外部世の中で住んでまたできればそれを自ら作って行く生だ. 個人の人生の問題を去って, 外面的順応のみを要求して内面的意味の追求を許容しない社会も創造性の根拠を失ってなによりも安定の土台を用意することができない. しかし眼科外が迎えて入って行く人生が易しく可能ではない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若い時代は自分が納得することができる意味を実現してくれることができる人生を追い求めていながらも大部分は社会の要求に妥協しながら 安着点を捜すようになることが普通だと言うでしょう. ところでそういう若い時代のない社会が私たちの社会ではないかと言う. 教育制度そして大学入試制度の混乱も-実はまた多い社会問題も--深い根本においては, 徹底的に外面化された私たちの人生の方式に 縁由することが多いと言える.

今度月で長い間続いた大学選抜手続きが締め切られる. 言うまでもなく願う大学に入った人もいて, 入学はなったが願わない大学に入学になった人もいて, 完全にはじめから 新たに入試準備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人もいる. 願い次第になった人には祝いの言葉を, 願い次第にならない人には慰労の言葉を与えるべきだが, 入試制度の難関を 経験したすべての若者達は慰労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することもできる.

うちの社会制度で, 大学に支援する人々は皆が一流大学に入るのを希望する. 一流大学に入るには 守門将がある. 入って行くためには 守門将が出す質問と志願者の答がそうたち語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開かれなさい, 胡麻!]という暗号を見つけることに学生たちはスオブヌン時間を過ごす. それは 願書を 準備する前の 1年または 2‾3年のaこともできて, このごろ成り行きで見れば幼稚園を入って行く頃から 守門将が出しておくような 暗号たちを習うことに 長い歳月を過ごさなければならない.

一流大学に入ろうとすることは凍る思うには一流の教育を受けるためだからだ. ところで一流大学の教育がまことに二流と違うか? 教育の内容の高低は教授と教育プログラムと教育施設に 影響を受ける のに, 本当にこのような項目たちで一流と二流の差がそんなに大きいことか? 一流, 二流, 三流する言葉が 顯示する差が大きいと 想定しても, 大学志望生やその親がこのようなものなどを 考慮たいてい 結果一流大学を選択することだろう? 大学をがカで見守った 人なら, 差別化真書話される大学で受ける教育が大きく差がないことだということを認めざるを得ないだろう. 勤めている大学の一流, 二流にしたがって学問や社会奉仕活動で教授たちの水準が必ず大きく差があることでは見えない. 差があると言っても学部学生たちの収容能力を思う時, それが大きく重要ではないだろう. 似ている話は施設や教育プログラムに対してもできる.

重要な問題は大学の選択が本当に私の選択ではないというのだ. 私が大学を選択するようだが, 実際は私は大学によって選択されるのだ. 専攻や学科の選択でもそうだ. 私がどんな学問を勉強したいのかは重要ではない. どの単科大学, どの学科が私を受けてくれて, 後でどの有名な職場で私を受けてくれるのかということが重要だ.

大学・職場で選択あう現実

内の願う勉強がどれか, 私が住もうとする人生がどれなのかを分かる事が易しくない. 塗った判断の一要素は, 知恵のお話に聞き入ることに劣らず, 何を意味あることとして切実に感じるか-これに関して心の中に聞こえる呼びかけが分かる事だ. 心証が生ずるまでは彷徨があるものと決まっている. ところでうちの社会には自ら感じて思う事を試して生の方向を決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彷徨を許容する余裕がない.


 

私たちは人生で 大事なことは皆外から来ると思う. 品物を選ぶ時には, 何が私の心が願うかよりは何が名品なのかが重要だ. アパートを求めることにも基準は便宜や生活空間としての感じより不動産 市場の見込みだ. 人生の意味は社会的地位の名品価値によって決まる. もちろん外面的社会で, 名前は実質的な意味を持つ. 名前は虚栄心を満足させてくれる. それは就職や尊敬や社会的地位と交換することができる 高価の手形だ. しかし実質と虚像が交差される名品の世界で忘れてしまうことは私の人生だ. 私はまことに私の願う勉強が何やら分からない. 多分もっと重要なことは生の小さな瞬間を調べることができない一日のだ. 今日一日が終わった後, [夕方だね★]と夕方の感興に気を付けることができる人は実に極めて稀な, 幸せな人と言うでしょう.

〈 金禹昌 / 高麗大名誉教授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2131823425&code=9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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