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국가정보기관 인력의 80%를 해외기업 기술탈취용도로 쓴다.
민간기업과 정보기관의 중간모체인 JETRO 와 MITI 를 통해서 59개국, 75개 주요도시에서 기업기밀을 도용한다.
소송당한 사건들은;
1981년 히타치와 토시바가 IBM의 컴퓨터 매인프래임 관련 기업기밀을 갈취한사건.
1986 후지쓰가 Fairchild semiconductor 로부터 메모리 기술, 도면등 9년동안 갈취.
1992 후지카메라가 Honeywell 로 부터 렌즈기술갈취, 4억 달러 배상판결.
현재, 후지카메라 vs 코닥사의 35mm 카메라기술 유출로 법정공방중
그이외에도 일본의 기술도용은 부지기수. 법정까지 가지않고 쉬쉬한것까지 포함하면 상당수.
98년 FBI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기업기밀유출의 36%는 일본의 소행이라고 집계됨
(1위는 중국 41%, 3위는 프랑스, 한국은 6위)
일본은 모방 정도가 아니라 범죄수준의 기업기밀탈취가 이뤄지고 있다.
NACIC가 인터넷 홈페이지(www.nacic.gov)에 공개한 연례보고서(Annual Report to Congress on Foreign Economic Collection and Industrial Espionage, 2000)는 부록에 사유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첨부하였는데, 이 부록에는 ‘(미국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정보(경제-산업-기술 정보)를 수집하는 나라는?’이라는 질문과 함께 ‘중국, 일본,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대만, 인도’ 순으로 답항을 제시하였다.
국가정보원이 NACIC의 이와 같은 국가 방첩활동을 벤치마킹해 국내 기업-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시행한 ‘산업보안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 기업-연구소 관계자들은 외국 국가들 중 우리의 산업기술 및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하는 국가로 일본(57.3%) 다음으로 미국(16%), 그리고 중국(10.8%)을 꼽고 있다. 그리고 외국 산업스파이의 주 관심 기술 분야(복수 응답)로는 반도체 기술(83.3%) 정보통신기술(42.8%) 응용프로그램 개발기술(23.8%) 기계전자기술(23.8) 정밀화학기술(20.9%) 등을 꼽았다.
첨부된 pdf파일과 url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http://www.fas.org/irp/nsa/ioss/threat96/part05.htm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5/02/28/200502280500046/200502280500046_2.html
산업스파이 하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앞서 가고 있다.
하이테크 산업분야에서 교과서적인 사건은 지난 "77년부터 "86년까지 10년간에 걸쳐 발생한 일본의 미국 페어차일드사에 대한 스파이활동이다.
샌프란시스코 일본 영사관의 공작요원들이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의 연구원들을 고용해서 컴퓨터 개발과 관련된 사업계획을 빼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연구와 경영에 관한 극비서류들을 입수해서 2주에 한번씩 일본 영사관 직원들에게 컴퓨터 디스크를 넘겨주었다.
이 정보는 페어차일드사의 일본에 대한 기술경쟁력 유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마침내 "86년 10월 23일 일본 최대의 컴퓨터 제조업체인 후지쓰는 페어차일드 반도체회사의 주식 80%를 매입할 계획을 발표했는데 후지쓰사가 산업스파이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입계획을 세웠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당시 국방장관과 상무장관의 반대로 이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http://www.antisanupspy.co.kr/main02-click-11.html
1989년 11월 10일 미국 보스통늬 리츠 칼튼 호텔 429호실.
그레이그 스펜서라는 이름의 한 사나이가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었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당시 49살의 스펜서는 신용카드 사기극을 벌여 물의를 일으킨 동성애자 매음단의 일원이었던데다
코카인과 불법무기를 소지한 혐의로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법정에 서면 중형이 불가피한 죄질이었다.
게다가 스펜서는 불치병인 에이즈에 걸려 증세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 언론들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나중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스펜서는 일본 무역 진흥회(JETRO)등 일본 정부에 고용된 스파이였다.
그는 미국 백악관과 국회의 고위직 인사들의 약점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스스로 남창의 세계를
걸어들어간 인물이었다.
스펜서의 후견인은 일본의 통상 산업성을 창설한 자민당의 원로급 지도자 시나 에쓰사부로였다.
스펜서는 1979년 통산 산업성과 일본 대기업들이 출연한 정책 연구그룹(PSG)의 워싱턴 대표를
맡으면서 일본 정부의 눈과 귀 역할을 해냈다.
물론 중요한 정보가 건네지면 일본측으로 부터 수만 달러의 사례금이 뒤따랐다.
FBI(미연방 수사국)의 조사결과 스펜서가 죽기 직전 일본 측이 "거래"를 단절했다는 증거가 포착됐다.
일본 측은 스펜서의 매음 등의 혐의로 사법당국의 추적을 받는데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스펜서가 일본측에 의해서 타살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그것은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남창을 드나드는 미국 고위관리들의 명단이 일본 정부에 넘어갔다는 사실이었다.
한편의 첩보 미스테리물을 방불케하는 이런 일들이 요즘도 벌어진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공작의 무게중심이 정치 정보대신 경제 기업관련 정보로 옮겨졌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약간 추가)
1989년 크레이그 스펜서라는 남자가 미국 경제부처의 고위 관리를 대상으로 남창(男娼) 활동을
하면서 산업 스파이 했다는 사실이 FBI에 의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가 빼낸 정보는 일본 무역 진흥회(JETRO)를 통해 일본 기업들로 흘러 들어 갔고, 당시 미국 산업에 수백억 달러의 피해를 끼친것으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