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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영웅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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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해전

시대 조선시대     정의 조선 선조 25년(1592년)에 한산도 앞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워 크 게 이긴 전투. 임진왜란 때에 삼대첩의 하나로 일본의 함선 47척을 격침시키 고 12척을 나포함.
◎초기의 임진왜란(壬辰倭亂)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동양 삼국(東洋 三國)의 병력 수백만 명이 동원된 전쟁이었으며, 이로 인한 인적, 물적, 정신적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 측이 패한 것은 1592년 4월 중순 왜군이 쳐들어온 뒤부터 그해 6월 중순 평양이 점령당할 때까지의 2개월에 지나지 않으며, 대체로 소강 상태에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패배로 끝이 났다.

특히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2년 1월 6일 일본 전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서 동원한 왜군이 30만 110명(제 1선단 조선출정부대 9개 군(軍) 15만 8,700명, 제 2선단 대본영대기부대 8개 군 10만 2,960명, 병력수송 및 해상작전 수군 4개 대대 9,450명, 대본영 직속부대 5개 대대 2만 9,000명)이었다.
수군의 수에 대해서는 <중국역대전쟁사(中國歷代戰爭史)>(중화민국(中華民國) 3군대학(三軍大學) 편저, 1979, p.408)에 의하면 "9,200명"이라고 되어 있으나, 유마성보(有馬成甫)의 <조선역수군사(朝鮮役水軍史)>(동경(東京) ; 해공사(海と空社), 소화(昭和) 17년, pp.44~45) 및 편야차웅(片野次雄)의 <이순신수길(李舜臣と秀吉)>(동경(東京) ; 성문당신광사(誠文堂新光社), 1983, p.69)에는 "조선국선수지세(朝鮮國船手之勢) ; 1,500인 구귀(九鬼), 2,000인 등당(藤堂), 1,500인 협방(脇坂), 1,000인 가등(加藤), 700인 내도(來島), 250인 관평(菅平), 1,000인 상산(桑山), 850인 굴내(堀內), 650인 삼약(衫若)으로 합계(合計) 9,450인"이라 되어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후자의 기록을 따랐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로 부임한 지 만 14개월만인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 오후에 왜군의 제 1선단 중 제 1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거느린 1만 8,700명이 700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이튿날인 14일 새벽 왜군은 부산을 기습하고, 양산/밀양/대구/상주를 거쳐 왜란이 터진 지 19일 만인 5월 2일 수도 한성을 함락시켰으며. 이후 6월 13일에는 평양까지 함락시켰다. 제 2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거느린 2만 2,800명은 4월 19일 부산에 상륙하여 경주/영천/신영/서울로, 제 3진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거느린 1만1,700명은 김해에 상륙하여 창원/성주/개령/추풍령/서울로 진격하였다.

◎이순신의 등장
아군은 부산진의 적군을 궤멸시키고,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이 80여 척의 배와 수군 8,000여 명으로 왜적을 방어하다가 초기에 왜적선 10여 척을 쳐부수기도 하였으나, 왜군의 예봉이 4월 하순(29일 경) 경상우수영 함대를 공격해오니 패전하여 도망하려 하였다. 육상 전투는 거의 패배로 일관되고 있었고, 이때 경상수사의 요청과 조정에서의 공격 명령으로 이순신이 5월 4일 새벽 자신의 판옥선(板屋船) 24척, 협선(夾船) 15척, 동원어선(動員漁船) 46척의 총 85척을 이끌고 출항해 원균의 전선 6척(판옥선 3척, 협선 3척)과 합류하였다. 9일까지 옥포(玉浦)/합포(合浦)/적진포(赤珍浦) 해전에서 6일 간 전함 42척(옥포 : 26척, 합포 : 5척, 적진포 : 13척 가운데 11척)을 격파하였고, 조선 수군의 피해는 경상자 1명뿐이었다.

◎거북선의 등장과 왜군의 전략 변경
2차 출전은 경상우수영의 원균 함대 3척과 6월 4일부터 가세한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憶祺)의 함대 25척으로 모두 51척의 규모였다. 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11일 간 67척(사천(泗川) : 13척, 당포(唐浦) : 21척, 당항포(唐項浦) : 26척, 율포(栗浦) : 7척)을 침몰시키고, 적병 88명을 참획하였으며, 아군 피해는 전사 11명, 부상 26명이었다. 이 때 처음으로 거북선이 사용되었으며, 그 효능이 입증되어 그 이후 해전에서도 거북선은 계속적으로 활약하였다. 이로써 경상도 쪽으로 진격한 일본 수군이 소탕되어 일본은 조선 수군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무기인 조총(鳥銃)을 이용하여 육상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였던 일본은 수군마저 주로 육전에 투입하고 있었다. 중촌질(中村質)은 <임진왜란(壬辰倭亂)에 관련된 제문제(諸問題), 제2회 국방해양력(國際海洋力) 심포지엄 발표문집>(해군해양연구소, 1991, pp.46~48)에서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 수전보다 육전에 주력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즉 일본이 동원한 선수(船手)는 국내전인 소전원(小田原) 공격 때와 비교하여 5% 미만에 지나지 않았으며, 일찍이 왜구의 근거지였던 구주(九州)의 제번(諸藩)은 수군이 아닌 육군의 선봉으로 동원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바다에서는 단 한 번도 이겼다는 보고를 듣지 못하고, 사천해전 · 당포해전에서 가메이(龜井玆矩)·구루시마(來島通元)의 수군마저 패하자,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바 있고 육상으로 공격했던 수군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등에게 해전에 참가하여 조선 수군을 격파하라고 명령하였다. 전략 집행에 변경이 요구되자, 이들은 육상에서 내려와 거제도 부근으로 즉각 항진하였다. 그 중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6월 5일 용인(龍仁) 전투에서 이기고, 6월 19일 웅천으로 내려와 해상 활동을 하다가, 7월 6일 73척의 함대를 이끌고 출발하여 7일 견내량(見乃梁)에 이르렀다.

반면 조선의 수군은 승리로 말미암아 전투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육전에서도 사기가 올랐다. 수군의 역할과 중대성은 여기에서부터 나타났다. 왜군은 5월 2일 한강을 건너고 한성 천 리 길을 19일 만에 정복했지만,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평양까지 300리 길을 30일 걸린 6월 15일에 도착했던 것이다.

◎한산해전
이순신은 7월 5일부터 7월 13일까지 9일 간, 견내량에서부터 한산도 앞바다 및 안골포(安骨浦)로 3차 출전을 하였다. 7월 5일 이억기와 함께 전선 49척을 이끌고 전라좌수영을 떠나, 6일 남해 노량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7척과 합세하여 모두 56척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순신은 협소한 견내량이 해전에 적합하지 않음을 파악하고, 일본의 대선단(大船團)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鶴翼陣)을 펴고 각종 총통을 쏘아 먼저 2~3척을 격파하였다. 일본 수군이 겁을 먹고 도망하려 하자, 왜적선을 유인하여 도망가는 척 하다가 일시에 역회전하여 학익진법(鶴翼陣法)을 폈다. 이로써 층각선(層閣船) 47척을 쳐서 깨뜨리고, 12척을 나포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 견내량 싸움을 지휘했던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간신히 김해로 도주하였고 나머지 적선 14척도 겨우 도망갔지만, 이틀 뒤 안골포에 있던 적선 28척까지 모두 42척을 격침시키고, 육지로 도망한 왜군 150급을 참획하는 등 개전한 이래 가장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왜적선 90% 이상을 무찌른 이 전투가 바로 한산해전(閑山海戰)이다. 이 때 아군의 피해는 전사자 19명, 부상자 114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산해전의 승리는 조선 수군이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분수령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왜의 호남 진출을 좌절시키고 나아가 왜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산도에서 패전한 뒤로 전략을 바꿨는데, 그 전략은 조선 수군을 만나면 도망가라는 것이었고 내륙에 올라가 방어 작전을 펴라는 것이었다. 방어 작전은 물론 성을 쌓고 조선 수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싸움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 해전으로 전쟁은 실질적으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순신의 해전 승리로 왜의 침략 전쟁은 활기를 잃었고, 더 이상의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산해전 요약>

◎1차 전과
일자 - 1592년 7월 8일
해전명 - 견내량해전(見乃粱海戰)
조선 수군 - 이순신 함대 : 24척(판옥선 21, 거북선 3), 원균 함대 : 7척, 이억기 함대 : 25척 등 총 56척
왜군 - 73척
전과 - 47척 격침, 12척 나포, 14척 도주
피해 - 전사 19명, 부상 114명

◎2차 전과
일자 - 1592년 7월 10일
해전명 -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
조선 수군 - 이순신 함대 : 24척(판옥선 21, 거북선 3), 원균 : 7척, 이억기 함대 : 25척 등 총 56척
왜군 - 42척
전과 - 42척 격침

명량해전

시대 조선 시대     정의 조선 선조 30년(1597년)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명량에서 왜선(倭船)을 쳐 부순 싸움.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적 함대 133척을 맞아 싸워 31척의 적선 을 격파하여 크게 이김.
◎칠천량해전에서의 패배
1597년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왜적선(倭敵船)에 대패하고 겨우 12척만 도망하여 남았다. 이 때 조정에서는 수군이 너무도 미약함을 알고, 8월 15일 이순신에게 육군에 종사(從事)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수군의 작전이야 말로 승리의 요체임을 단호하게 주장했다.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권13, 부록5 행록1에는 이러한 이순신의 주장이 잘 나타나 있다. “저 임진년(壬辰年)부터 지금까지 5~6년 동안 적이 감히 충청, 전라도를 곧장 돌진해 오지 못했던 것은 실상 우리 수군이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게 전선이 아직도 12척이나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만일 수군을 모두 폐하여 버린다면 적은 천 번 만 번 다행한 일로 여길 뿐더러, 충청도를 거쳐 한강에까지 갈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걱정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전선은 비록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 글은 현대적인 전략 개념으로 보면 "현존함대전략(現存艦隊戰略)" 이며, 또 열세할지라도 이길 수 있다는 결전전략(決戰戰略)의 의지이기도 하다.

◎명량해전(鳴粱海戰)
마침내 왜적선 8척이 8월 28일 새벽 6시쯤 어란진(於蘭鎭) 앞바다에 출현하였다. 이순신 함대는 장도(獐島)로 이동하여 밤을 지내고, 8월 29일 진도의 벽파진(碧波津)에 도착하여 보름 동안 머물렀다 9월 15일 조수를 타고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海南郡 門內面 右水營)으로 진을 옮기어 울돌목을 지켰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김억추(金億秋)에게 수중철색을 쓸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왜적선은 200여 척 가운데 55척이 9월 14일 어란진에 도착하였고, 9월 16일 오전 11시쯤 전투가 시작되었다. 일차로 수중철색에 왜적선이 걸려 전진하지 못하자, 곧바로 뒤를 따라오던 왜적선이 그들의 앞 배에 충돌하게 함으로써 왜적선 133척 가운데 무려 31척을 깨뜨리는 전과를 올렸다.

<선조실록> 권 94, 선조 30년 11월 10일(정유)에 보면 “한산도(칠천량해전)에서 패전한 이후 전선과 무기가 거의 다 흩어져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신(臣, 이순신)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김억추 등과 함께 전선(戰船) 13척과 정탐선(哨船) 32척을 모아 가지고 해남현 바닷길의 중요한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적의 전선 130여 척이 이진포 앞바다에서 이 쪽을 향하여 왔습니다. 신은 수사 김억추, 조방장, 배흥립, 거제 현령 안위 등을 지휘하여 각각 전선을 정비하여 진도의 벽파정 앞바다에서 적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대포로 적선 20여 척을 쳐부수고 쏘아 죽인 것만도 대단히 많았는데, 바다에 빠져 떠있는 적 8명의 목을 베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반면 조선 수군은 전선 13척, 초선(哨船 ; 협선) 32척으로 단 1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다만 전사자 2명과 부상자 2명이 있었을 뿐이다. 이 해전은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완전무결한 승리의 사례이다.

노량해전

시대 조선시대     정의 조선 선조 31년(1598년)에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왜병과 대결한 마지막 해전. 이 해전에서 이순신은 명나라 장군 진린(陳璘)과 더불어 싸웠으며, 승 리와 함께 전사함.
◎왜군의 철수
노량해전(露粱海戰)은 임진왜란 7년의 전쟁 가운데서 마지막 전투이다. 1598년에는 4차례의 전투가 있었는데, 절이도전투(折爾島戰鬪, 7월19일), 예교와 유도전투(9월 15일~10월 4일), 장도해전(獐島海戰, 9월 20일~10월 9일) 등 일본군이 철수하기 위한 전초전이 있었고 이러한 전투가 연장된 것이 바로 노량해전이다. 특히 예교에는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일본군 15,000여 명이었는데, <초서체일기(草書體日記)>에 의하면 아군이 예교의 적군을 장도 뒤에서 10월 2일부터 나흘 동안 맹공격을 했으나, 불행히도 사선(沙船) 25척, 호선(號船) 77척, 비해선(飛海船) 17척, 잔선 9척 등 모두 128척을 가진 명나라 수군은 그 중 39척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조선 수군도 제포만호 주의수(朱義壽), 사량만호 김성옥(金聲玉), 해남현감 유형(柳珩), 진도군수 선의문(宣義問), 강진현감 송상보(宋相甫) 등 5명이 조총에 부상을 입었고, 사도첨사 황세득(黃世得)과 군관 이청일(李淸一) 등 2명은 전사하였다. 수병도 29명이 전사하였다.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지난 8월 18일 횡사하였으므로, 철수하려 했다. <선조실록(宣祖實錄)> (권 103, 선조 31년 8월 19일(임신(壬申))에 의하면 “경상우수사 이순신(李純信)의 비밀 장계(狀啓)가 왔다. 일본으로 잡혀갔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이 말하기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7월 초에 병사했으므로, 흉적(凶賊)이 장차 철수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카 등 왜군들은 빨리 철수할 것을 바라고 있었고, 이순신은 석 달이 지난 11월 8일 예교성에 있는 왜적들이 10일 안으로 탈출하려 한다는 소식을 명나라 유정(劉綎)에게서 받았다. 이순신은 도망가는 왜적을 한 척도 돌려보내지 않을 비장한 각오로 11월 9일 고금도(古今島)를 떠나, 11월 11일 다시 유도에 도착하여 예교에 있는 왜적이 도망갈 길을 차단하였다. 이틀 뒤 왜적선 10여 척이 근처의 장도에 나타났다가, 이순신 함대의 추격을 피해 예교 가까운 포구인 신성포(新城浦)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군은 종일 예교 앞에서 왜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바짝 압박을 가하기도 하면서 해상 봉쇄선을 장도까지 확장하였다.

한편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왜군은 부하 8명을 통해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에게 돼지와 술 등 뇌물을 바치고 도망갈 길을 터 달라며 교섭을 시작했다. 진린은 손쉬운 전공을 세우려는 탐욕을 가졌음직 하나 이순신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그들의 의도를 성사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량해전의 시작
1598년 11월 17일 저녁, 예교성에 갇힌 왜군은 횃불 신호로 남해 등지에 있는 그들의 아군에게 알리었다. 이에 호응하는 횃불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고성에 있는 다치바나(立花統虎), 사천에 있는 시마즈(島津義弘), 남해에 있는 무네(宗義智) 등이 모두 노량 바다로 집결하여 고니시를 구출하고, 일본으로 되돌아갈 최후의 전투를 감행할 작정이었다. 이순신 역시 최후의 결전을 할 요량이었다. 이순신은 18일 밤 자정이 되자, 문득 대야에 깨끗한 물을 떠와 손을 씻었다. 혼자 갑판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이 원수 놈들을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고 하늘에 빌었다.(<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권(卷) 9 부록(附錄) 31쪽「행록(行錄))

아무튼 이순신은 왜적선이 무수하게 이동한다는 정보에 명나라 수군을 지휘하여 11월 18일 밤 10시에 출항, 노량 앞 바다로 이동하였으며, 11월 18일 밤부터11월 19일까지 이틀 간 밤을 새가며 싸웠다. 11월 19일 새벽 2시쯤 아군 연합 함대는 왜적의 선단이 몰려오는 노량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왜군이 새벽 4시 노량을 거쳐 관음포(觀音浦) 앞 바다에서 이르자, 이순신은 요격전(邀擊戰)을 벌였다. 우리 수군은 전선 83척, 수군이 1만 7,000여 명이고, 명나라 수군은 전선 63척, 수군 2,600명이었다.

왜적의 병력은 대선 500여 척, 수군 6만여 명이었다. <선조실록(宣祖實錄)>(선조 31년 11월 27일 도체찰사 이덕형의 장계)에 의하면 “적선이 3백여 척”이라고 하였지만,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권 9 부록 1「행록」과 <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에는 “적선이 5백여 척”이라 하였으며, <선조실록>(선조 31년 11월 24일)에는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군문 형개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적선 100척을 나포하고 200척을 불태웠으며, 참수 500급, 생포 180여 명, 익사자는 아직 물위에 떠오르지 않아 알 수 없으며, 이총병(이순신)이 죽었다.”고 되어 있다.

이날 새벽 아군은 적들이 모르게 비밀리에 전진하였다. <명사(明史)>에서 본 노량 관음포 해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1598년 11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배를 내어 먼저 달아났다. 마귀(麻貴)는 드디어 도산(島山), 유포(酉浦)에 들어갔고, 유정(劉綎)은 예교를 공격하여 탈환하였다. 석만자가 수군을 이끌고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원하려 하자, 진린이 이를 맞아 쳐부수어 패배시켰다. 여러 곳의 왜군이 돛을 달고 모두 돌아갔다. 왜가 조선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다. 중앙의 조선과 그 속국들은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도 관백(關白)이 죽고서야 전쟁이 비로소 종식되었다.”라고 되어 있다.(<명사(明史)> (권320「열전(列傳)」제208 외국(外國) 1 조선) 여기서는 진린의 역할로 왜적선을 패배시킨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이순신의 역할이 가장 핵심이 됨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순신의 전사와 해전의 마무리
마지막 전장(戰場)은 도산(島山), 유포(酉浦), 예교(曳橋)가 있는 곳이다. 이 최후의 전쟁은 이순신이 순국하였으므로 이순신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행록(行錄)>, <행장(行狀)>, <비문(碑文)>, <실록(實錄)> 및 모든 사료(史料)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새벽 조(朝) 명(明) 연합 함대는 좌우로 편을 갈라 행진했다. 그리고 이순신은 포구와 섬들마다 복병을 배치하여 적을 대비하도록 해가며 진군했다. 사천에 웅거하고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등의 왜적들은 500여 척을 이끌고, 경상도 사천으로부터 남해 노량 사이에 있는 광주양(光州洋)을 지나 곧장 노량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때, 조선 수군들은 대적선의 항로 전방인 죽도와 관음포 사이에 배치되었고, 명나라 수군은 죽도 북쪽에 매복하였다. 왜적선이 노량 수로를 지나 관음포 앞바다로 다가왔을 때, 우리 수군들은 좌우에서 번개처럼 나타나 일시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적들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갈팡질팡하다가는 이윽고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우리 수군에게 대항해 왔다. 그러자 우리 수군들은 적선에 근접하여 불붙는 땔감(薪火)을 마구 던져 적의 배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적들은 날이 새기 시작할 무렵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관음포(觀音浦)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왜적선들은 이 바다에서 싸우다가 남해 관음포로 쫓겨 들어갔다. 거기엔 밖에서 보면 마치 툭 트인 바다요, 수로 같이 보이지만, 돌아서기만 하면 바다가 막혀 달아날 길이 없는 곳이다. 왜적선들은 다시 돌아서서 대항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앞장서서 전군을 지휘했다. 북을 힘차게 치게 했다. 쥐새끼도 쫓기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돌아서서 고양이에게 달려들 듯이, 왜적선은 이순신의 배를 목표로 겹겹이 에워싸며 최후 발악으로 달려들었다. 이순신은 자못 위험해졌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본 진린은 포위망을 뚫고 들어와 이순신을 구해냈다. 이 때 진린의 배가 적선에게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었다. 이순신은 적의 장수 세 명이 층각선(層閣船)에 앉아 전투를 지휘 독려하고 있는 것을 보고 총과 화살을 그쪽으로 집중 사격하게 하여 그 중 한 명을 사살하였다. 이것을 본 적들은 자기 장수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 진린의 배에서 포위망을 풀고 그 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에 진린은 위급함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순신과 진린은 다시 힘을 다하여 호준포를 쏘아 적선을 계속 깨뜨렸다.

아군은 오전 10시경 이순신이 전사하자, 그의 명에 따라 죽음을 극비에 붙이고 곡도 하지 않았으며, 변함없이 독전기를 흔들며 지휘하였다. 유형(柳珩 : 해남현감)과 송희립(宋希立 : 이순신 전속부관)도 적탄에 맞았으나 잠시 기절했을 뿐, 다시 일어나 상처를 싸매고 싸웠다고 한다. 정오에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적선 200여 척을 불태웠다. 적병은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고, 살아남은 자들도 포로로 잡히거나 목 베여 죽는 등 대부분 전사하였다. 시마즈 등은 겨우 50척을 거두어 도망쳤다. <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권下)에 의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그 틈을 타서 묘도(猫島 : 여천군 삼일면 묘도)의 서쪽 해협을 통과하여 몰래 남쪽 외양(外洋)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우리 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은 쉬지 않았다. 이순신의 지휘 하에서 깨진 적선의 수만도 200여 척에 달하고 있었다. 적들은 패전의 빛이 짙어지자 관음포 앞을 벗어나 남쪽으로 도망칠 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적선 1척도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이순신은 스스로 앞장을 서서 달아나는 적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북을 더 힘차게 두들기게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었다. 바로 이때였다. 적의 탄환이 이순신의 왼쪽 가슴을 맞히고 겨드랑이를 관통하여 나갔다. 심 학익진
시대 조선시대     정의 학이 날개를 편 듯이 치는 진, 적을 둘러싸기에 편리한 진형.
◎학익진(鶴翼陣)의 두 가지 운용 형태
학익진은 좌승함과 중군함의 위치에 따라 두 가지로 운용되었다.

먼저 좌승함이 날개 중앙에 있으면, 중군함은 날개 중앙 앞으로 전진 배치된다. 중군함의 역할이 전진 배치됨으로써 적군의 이동 및 동태를 직접 확인하여 공격 의도를 좌승함에 전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때의 좌승함은 직접 전투 대열에 서서 공격에 참가하게 된다. 즉 좌승함에서 직접 화포 등을 운용한다.

이 경우 좌승함이 공격 대열에 참가함으로써 공격이 방어의 최적 수단이 된다는 것에 장점이 있다. 그러나 좌승함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중군함이 적진 앞으로 배치됨으로써 적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결함이 있다.

다음으로 좌승함이 날개 뒤에 별도로 호위함을 가지며, 중군함이 날개 중앙에 배치될 수 있다. 이 경우 중군함이 공격 대열에 참가하여 직접 화력을 운용하는 형태이고, 그 공격의 정도에 따라 좌승함에 정확한 보고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좌승함은 그만큼 전투력이 방어에 치중되어 화력의 운용에 있어서는 효용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날개 뒤에 별도의 호위함을 가지고 진형 전체를 지휘할 수 있으므로 지휘가 용이하고, 무엇보다 다른 전투진으로 바꾸고자 할 때 매우 효율적이다. 본디 좌승함 주위에는 언제나 호위진이 있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학익진과 첨자찰진
그런데 이러한 학익진은 어떤 진형에서 변환이 용이한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전라우수영에서 발견된 전투진(戰鬪陣)을 살펴보건대, 학익진과 첨자찰진의 배 이름이 같다. 즉 첨자찰진을 학익진으로 배치하고, 그 역(逆)으로도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첨자찰진 진형을 이용하여 다른 진형으로 바꿀 때 역시 학익진이 가장 용이함을 알 수 있다. 즉 중군함 앞에 있는 배들이 학익진의 날개로 배치되고, 좌승함 뒤에 배치된 배들 역시 학익진에서 좌승함 뒤 또는 옆에 배치된다면 큰 무리가 없는 것이다. 특히 좌승함 주위에 있는 배들은 좌승함을 호위하고 있는 세력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좌승함 뒤에 배치된 배들은 학익진에서 또 다른 날개로 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첨자찰진과 학익진 진형이 배치된 자리를 서로 비교하여 첨자찰진에서 학익진으로 변형시키는 원리를 살펴 보면, 첨자찰진의 후진에 있는 배를 중군선 가까이로 옮겨 배치하고, 앞 열에 있는 배는 양쪽 날개 끝으로 벗어나게 배치한다. 이것은 곧 전투 편성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소속 부대별로 각기 한 가지씩의 임무를 수행했음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평소 그 부대의 특성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부대장이 지휘관이 되어 부하를 지휘한다는 것이다.

일자진에서도 학익진을 쉽게 배치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형태를 보이지 않는 것은, 해상에서 학익진이 일자진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가로 일렬로 늘어선다면 그 많은 배를 모두 배치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첨자찰진을 이용했을 것이다.   시대 조선시대     정의 일자로 늘어선 진형으로, 요즘의 횡렬진(橫列陣)에 해당.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권10, 부록 22 에는 “공(公 ; 이순신)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일자진(一字陣)으로 진을 치고 대포와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 대니, 적병은 쓰러졌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鳴梁海戰) 때 사용했던 전투진(戰鬪陣)이다. 이 때 조선 수군은 전선 13척으로 왜적선을 맞아 31척을 격침시켰으며, 아군은 단 한 척도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일자진은 육상에서의 학익진으로 볼 수도 있다. 육상에서의 학익진은 횡렬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시대 조선시대     정의 많은 배들의 이동이나 적군의 공격에 용이한 진.
첨자찰진(尖字札陣)은 중군함이 좌승함 앞에 배치되어 있으며, 맨 앞에는 척후선이 각각 좌우에 한 척씩 배치되어 있고 그 뒤에 중군의 직접 지휘를 받는 전위 대열이 있다. 그리고 좌승함 주위의 작은 배들도 쐐기진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뒤에 후열로 좌승함의 직접 지휘를 받는 듯한 후위 대열이 있다. 이 진형은 많은 배들의 이동이나 적군의 공격에 매우 용이하다.

조선삼도수군조련전진도

  시대 조선 시대     정의 1741∼1800년경에 당시 수군 편제(水軍編制)를 그린 병풍
◎조선삼도수군조련전진도(朝鮮三道水軍操練戰陣圖) 병풍
병풍 속 그림은 조선 수군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이 조련을 하는 전진의 모습이다. 삼도 수군의 총사령부인 통제영은 경상도 통영에 있었다. 삼도 수군의 조련은 춘추, 즉 봄과 가을에 실시하였다.

그림의 제작 연대는 조선 시대 전함의 제도인 ‘전선(戰船), 방선(防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이란 명칭으로 미루어 보아 1741년~1800년 경에 당시 수군 편제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거북선이 40여 척 있는데 이 제도는 정조 연간에 해당된다).

통제사가 삼도의 수군을 점호하고 조련하기 위하여 5방위(五方位 ; 前營, 左營, 右營, 後營, 中營)로 진을 벌리고 있는 그림이다. 배의 만듦새를 정확하게 잘 그렸고 의장도 잘 나타냈다. 그림 가운데 정자각을 세운 배(亭子閣船)가 있는데, 귀빈을 실어 나르는 배이다. 그림에서는 한가운데 통제사가 타는 좌선이 있고 그 아래쪽에 부선과 정자각선이 있다. 정자각선에서 노 젓는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 넣었기 때문에 이 배의 노 젓는 모습을 통해 거북선이나 판옥전선에서 조선식 노를 어디에 걸고, 어떻게 저었느냐 하는 의문이 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삼도수군조련전진도에서 수군을 조련하는 전진에는 다섯 영이 있다. 각 영마다 그 아래에 다섯 사파총(司把摠 ; 전, 좌, 중, 우, 후)이 편성되어 있고, 또 그 아래에 다섯 초관(哨官 ; 전, 좌, 중, 우, 후)이 편성되어 있다.

◎통제영의 상전선(上戰船)
좌선은 조선수군의 전선 중에서 제일 큰 규모의 배이다. 이 배의 선급(배의 만듦새와 크기를 나타내는 것) 이름은 천자일호좌선(天子一號座船)이다. 1615년에는 배밑의 길이가 14발이었으나 그 뒤 차츰 길어져서 1800년에는 18발까지 늘어났다.

삼판은 7폭을 쌓아 올렸고, 이물비우는 곡목을 세로로 대어 박고 그 위에 용머리 그림(獸面畵)을 그렸다. 이 병풍의 모든 판옥전선의 이물비우에는 용머리 그림을 그렸다. 평선(平船 ; 1층 겻집까지만 되어 있는 배) 위에 판옥상장을 꾸미고 방패에는 꿈틀거리는 용의 그림을 그렸다. 각선도본에 있는 전선의 만듦새와 같다. 판옥 위에는 북을 받쳐 놓았고 많은 깃발을 세웠다. 돛대는 둘이 있는데 이물돛대에만 돛을 달아 올렸다. 배 한가운데 가마지붕을 씌우고 장막을 친 장대에는 도장을 넣어 두는 함이 3개가 놓여 있다. 앞 이물쪽과 뒷 고물쪽에 청백(靑白) 차일을 쳤다. 배 위에서는 수군들이 통제사가 선청(배의 마루)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조선식 큰노를 멍에의 뺄목 사이로 5척(隻)만 반쯤 걸어 놓았다. 노를 물에 내리지 않은 것은 닻을 올린 채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키는 물에 내려 배의 방향을 잡고 있다. 방패를 성문 다락의 판문처럼 안으로 들어올리고, 군졸들은 점호를 기다리고 있다. 좌선의 왼쪽에는 군사들의 음식물을 마련하여 온 거룻배가 줄지어 있다. 판옥전선의 닻은 보이지 않으나 이물머리의 출입문 안에 밧줄이 보인다. 고물꼬리에도 겻집을 깔았다. 삼도 수군 통제사 휘하에는 충청수영, 전라좌수영, 경상좌우수영이 있었다.

◎전라좌수영 전선
전라좌수영의 수군절도사가 타는 판옥전선으로 전진에서는 다섯 영의 앞쪽인 전영(前營)을 맡고 있다. 수군을 조련하는 전진에는 다섯 영이 있다. 각 영마다 그 아래에 다섯 사파총이 편성되어 있고, 또 그 아래에 다섯 초관이 딸려 있다.

전라좌수영을 호좌수영(湖左水營)이라고도 부르며, 별칭은 매영(梅營)이다. 본영(本營)은 지금의 여수시에 있었다. 영장(營將)들이 타는 읍진전선(邑鎭戰船)급인 이 배의 이물머리에는 배의 만듦새와 크기를 나타내는 선급(船級) 이름인 현자선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 배의 배밑 길이는 13발(把) 정도이고, 배에 타는 군사는 164명 안팎이다.

◎정자각선(亭子閣船)
정자각선의 만듦새는 평선 위에 장자각을 세웠고, 지붕은 기와로 이은 것 같다. 뱃전에는 방패를 둘렀으며, 정자각 앞쪽에는 4기둥을 세우고 청백 차일을 쳤다.

이물의 양쪽 뱃전에서는 노군(櫓軍)들이 2척의 조선식 큰노를 멍에 뺄목 위에 걸어 젓고 있다. 고물에는 방향을 조정하는 키가 달려 있고, 배 위에는 킷다리를 받쳐주는 받침대가 있다. 이물비우는 세로로 대어 박았다. 그림에서는 선멍에에 가로로 널판대기 2장을 더 올렸다. 삼판은 5폭으로 쌓아 올렸다.

이 배는 직접 싸움을 하는 배가 아니고 통제사나 귀한 손님을 실어 나르는 배이다. 배 위에는 겻집을 깔았으며 차일밑에는 기생들이 대령하고 있다. 또 고물머리에는 선미판(鋪板)이 배꼬리까지 깔려 있다. 이 병풍에 그려진 모든 싸움배들에서는 노 젓는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정자각선을 통해서 싸움배에서 노 젓는 법을 엿볼 수 있다. 옛 문헌 가운데는 노 젓는 방법에 대한 기록은 있었으나, 노 젓는 모습에 대한 그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통제영 거북배
통제영 본영에 소속되어 있는 거북선으로 각 수영에 소속되어 있는 거북선보다 그 크기가 크다. 거북등에는 가마지붕을 씌우고 장막을 친 장대가 있고, 깃대에는 "거북 귀(龜)"자 기(旗)를 매달았다. 이 거북선은 평선의 신방위에서 바로 거북 잔등판을 둥글게 씌웠다. 이물비우는 가로다지로 대어 박았다. 뱃전의 멍에 뺄목 사이로 조선식 큰노를 4척만 걸었다.

거북선에는 돛대(이물돛대와 한판돛대)가 2개 있는데 그림에는 그려 넣지 않았다. 신귀(神龜)의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발포진(鉢浦鎭)의 거북배
전라좌수영에 소속되어 있는 발포진(鉢浦鎭)의 거북선이다. 크기는 통영 거북선보다 작고, 만듦새는 통영 거북선과 꼭 같게 그려져 있다. 돛대가 2대 있는데 이물돛대에만 돛을 달아 올렸다.

전라좌수영에는 방답진(防踏鎭), 여도진(呂島鎭), 사도진(蛇島鎭), 발포진(鉢浦鎭), 녹도진(鹿島鎭)의 5진포와 순천부(順天府), 광양현(光陽縣), 낙안군(樂安郡), 보성군(寶城郡), 흥양현(興陽縣) 등의 5관읍이 소속되어 있었다. 발포진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는데 1580년에 이순신 장군이 이곳의 수군만호로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는 이순신 좌수사가 만든 영 거북선, 순천 거북선, 방답 거북선 등 3척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에는 1593년에 더 만든 거북선을 포함하여 5척이 있었다.

이물비우를 가로다지 널판때기로 대어 박은 것이 다른 병풍이나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거북선의 세로 모양 이물의 그림과 다르다. 임진년 때 거북선의 만듦새를 그대로 그린 것 같다.

◎방패선
전선 다음으로 큰 싸움배인 방선(防船)이다. 방선은 평선의 뱃전 밖에 신방을 걸고 그 위에 방패만을 세운 배로 배의 만듦새는 전선의 몸체와 같다. 이 배는 우탐선(右探船)이라는 깃발을 달았고 ‘탐’이라 쓴 깃발을 깃대에 올렸다. 탐선을 탐망선이라고도 하는데 적군의 정황을 살피는 배이다.

이 배보다 좀 작은 것으로 사후선이라는 것이 있는데 본진에서 멀리 바다로 나아가 적군의 동정을 살피는 배이다.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신기전(神機箭)을 쏘아 올려서 적의 상황을 알린다.

◎돛단 짐배
싸움배 외에도 군수품과 화약, 병기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있다. 이 배들은 전진에는 들지 못하지만 보조선으로 점호에 참가하고 있다. 돛단배라는 것은 어떤 종류를 일컫는 것이 아니고, 배에 돛을 달아맨 배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임진왜란 때 고깃배도 이순신 함대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전쟁 연습 때에는 가장한 적군의 배를 가왜선(假倭船)이라고 하여 돛단배를 대신 쓰기도 하였다.

◎거룻배 또는 거루
거룻배는 어미배(母船)에 딸린 새끼배(子船)인 경우도 있지만, 바닷배와 강배를 가릴 것 없이 물건이나 사람을 배와 배, 뭍과 배 사이로 실어 나르는 돛을 달지 않은 작은 배를 말한다. 그림의 거루는 물항아리를 싣고 물을 길어 나르고 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배를 급수선(汲水船)이라고 한다.

싸움배는 한 달치의 군량을 항상 싣고 다니도록 되어 있다. 배의 한판멍에 바로 뒤편에 밥을 짓는 투석간이 있는데 이곳에 물독을 들여놓고 물을 담아둔다. 반찬거리도 저장하고 솥에 불을 지펴 밥도 짓는다. 그러나 물은 많이 싣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연안의 뭍에서 길어다 먹게 된다.  안택선(안타케부네)   시대 조선시대(16C, 일본 :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정의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주력함. 안택형선(安宅型船) 또는 장선(將船)이라 고도 함.

16세기에 일본은 축적된 수군전법과 배 축조 기술 집결하여 안택형선(安宅型船, 이하 안택선)라는 대형 전함을 만들어 수군의 주력함으로 활용했다. 안택선은 공격/방어력, 항행 성능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으며, 일본 수군을 다룬 많은 서적에서 "해상의 성"(海上之城)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안택선에는 여러 가지 크기가 있는데, 가장 작은 것은 500석, 일반적으로는 1,000석~2,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크기였으며, 2,000석 이상을 적재하는 초대형선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구성은 안택선을 기함(旗艦)으로 하여 관선(關船 ; 세끼부네), 소조선(小早船 ;고바야부네), 작은 관선를 편입하여 함대를 편성하고, 이 함대에 병마와 병량을 운송하는 화물 수송 선단을 종속시키는 것이 기본 형태였다.

◎안택선의 구조
이물, 즉 선수(船首)가 견고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상갑판 위는 2층으로 되어 있다. 그 한 가운데 "누각"이라고 하는 사령탑이 있는데, 순판(楯板=방패)이라는 두꺼운 방패 널판으로 상갑판 위에서부터 상부의 뱃집 구조물 둘레를 대었다. 누각의 크기는 4방의 너비가 2칸(3.64미터)이며 높이는 2.5칸(4.5미터)이다.

방패판은 두께가 2치(6cm)~3치(9cm)정도 되는 박달나무나 가시나무로 판자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활과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이 방패판은 조립이 가능하며 그 일부는 판의 아래에다 돌쩌귀를 달아서 밖으로 눕힐 수 있게 되어 있다. 적선과 가깝게 붙어서 접전을 할 때 방패판을 바깥쪽으로 넘어뜨린 다음, 적선으로 올라 가는 사다리로 이용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다.

선수의 정면 방향으로는 대포를 장착한 것이 특이하다. 선수에 상자 모양의 상장판옥(上粧板屋)이 있기 때문에 이물의 상갑판의 너비가 넓다. 이처럼 정면이 넓었으므로, 대포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배밑은 석회로 물막이를 하여 견고하며 저판을 2중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몇 군데에 물을 막아주는 격벽(隔璧)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선체 일부가 파손되어 침수가 발생하였을 때에도 다른 선창(船倉)은 무사할 수 있었다. 즉, 현재의 강선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2중 저판 및 수밀격벽(水密隔璧)의 방식과 기법을 15~16세기의 일본 목조 군선에서 이미 실용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안택선은 가또기요마사(加藤淸正)를 시작으로 구로다(黑田), 구기(九鬼),혼다(本多) 등 여러 무장들에 의하여 건조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중소형이 많이 건조되었다.

관선(세끼부네)

시대 조선시대(16C 이후, 일본 : 아즈치모모야마시대)     정의 전국시대부터 제작돼온 일본의 대표적인 군함. 조선(早船)이라고 부르기도 함.
관선(關船 ; 세끼부네)은 안택선(安宅船)과 함께 전국시대 수군 함대에서 활약했던 전선(戰船)이다. 안택선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는 일반 배들도 1,000여 년을 계속 이어져온 통나무배, 즉 ‘고주식선체’ 구조의 기법에서 탈피하여 본격적인 준구조선(準構造線)과 구조선(構造線)으로 탈바꿈하는 때였다. 선수(船首)의 모양도 상자형(箱子型)이 아니고 뚜렷하게 위로 돌출된 단일 선수재(船首材)를 가지고 있으며 뾰족한 형태로 되어 있다.

관선의 크기는 노 30척을 거는 것에서부터 노 100척을 거는 것까지 다양하였으나, 그 중에서 40척~50척을 거는 중형선이 가장 많이 건조되었다. 상부 구조나 의장(艤裝)은 안택선의 제도에 준하였으나, 누각과 쇠붙이를 두르는 장갑(裝甲) 등은 일반적으로 작게 만들었다. 노 80척을 거는 관선 이하에는 누각이 없다.

노 40척~50척을 거는 중형 관선은 방패판(防牌板)이 이물의 전면에만 설치되어 있고, 측면은 장막(帳幕)으로 대신하였기 때문에 "막장선"(幕張船)이라고 불리었다. 그 외에도 측면의 방패판에 대나무를 사용한 것도 있다.

관선은 수군함대에서 안택선을 보좌하며, 쾌속성(快速性)을 이용하여 순양함(巡洋艦)의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빠르다는 의미로 "조선"(早船)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형 관선에는 소노(小櫓)가 76자루 걸려 있으며 대노(大櫓)는 48자루가 걸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선체 구조는 밑판/중판/상판으로 구성된 3층식이거나, 밑판과 중판을 하나로 한 2층식의 두 가지가 있다.

17세기 초에 목할법(木割法=배를 짓는 비례법)이 보급되면서 관선의 선형, 구조, 의장도 표준화되었다. 그후 강호시대(江戶時代)를 지나면서 관선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평화가 장기간 지속되었으므로, 군선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부족했던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소조선(고바야부네) 시대 조선시대(16C 이후, 일본 : 아즈치모모야마시대)     정의 작은 규모의 관선을 말함. 전투보다는 척후용 또는 연락용으로 활약.
소조선(小早船 ; 고바야부네, 소형선으로서 빠르게 달린다는 의미의 이름)은 관선(關船 ; 세끼부네)의 일종으로, 관선 중에서 가장 작은 배인 소형 관선(小型關船)을 이른다. 일반적으로 14척~30척의 노를 거는 소형 쾌속 관선(小型快速關船)을 말하는데, 쇠붙이를 나무판이나 각목 등에 붙이는 장갑장치(裝甲裝置)를 관선보다 적게 하여 보다 가벼우며, 간략하게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시창(矢倉 ; 상장 누로(樓櫓)) 대신에 반원(半垣)이라고 하는 낮은 방패판(楯板-순판)을 설치한 것도 관선과 다른 점이다.

소조선은 중형이나 대형 관선보다 경쾌하고 민첩하게 항해를 할 수 있으므로 척후 정찰용이나 연락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구축함(驅逐艦)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공격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노 30척정도를 가진 비교적 큰 소조선이라 하더라도 8자루 내외의 철포(鐵砲; 조총)를 탑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임진왜란 때 당포에 나타난 왜적의 척후선을 발견하고 조선 함대에서 사후선(伺候船)으로 뒤쫓게 하였으나, 너무 빨라서 따라 잡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선(니마부네)


시대 조선시대(일본 : 에도시대)     정의 병사, 마필, 군량 등을 나르는 수송선.
하선(荷船 ; 니부네)은 천석선(千石船)이라고도 하는데 병사, 마필, 군량 등을 나르는 배를 말한다. "천석선"이란 ‘짐 싣는 큰 배’라는 뜻이다. 중국의 고대선이나 한국의 고대선에서도 ‘큰 배’를 ‘천석선’이라는 별칭으로 부른 것은 유사하다. 하선은 일본 배의 대표적인 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이런 선형을 ‘변재선(弁才船)’ 또는 ‘베자이 만듦새"(ベザイ造り)라고 불렀다.

에도시대 중기 이후부터 일본 연안을 활발하게 누비면서 양곡을 운송하던 선박이 바로 변재선이다. 크기에 따라 구분하면, 능원(菱垣), 준회선(樽廻船)이나 성미(城米), 번미(藩米) 등이 있었으며, 500석~1,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크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막부 말기에는 1,500석~2,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대형선이 많이 사용되었다.

에도시대 해운의 주력으로 등장한 변재선은 원래는 16세기 경 뇌호내해(瀨戶內海 ; 세도나이까이)를 중심으로 발달한 연안선 선형이기 때문에 내파성(耐波性)이 약하여 외해나 원양항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변재선은 서양식 범선과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와라"(航)라고 부르는 두꺼운 판재의 배밑을 기본으로 하여 네다나(根棚)/나까다나(中棚)/우와다나(上棚)라고 하는 삼단의 외판을 조합하여 선체를 쌓아올린다. 따라서 종방향의 강도는 배밑과 외판(삼판)에 의해 결정되며, 횡강도는 적당한 간격으로 양현(兩舷)의 외판과 외판 사이에 굵은 선량을 가설하여 높인다. 선량은 선체가 가로로 벌어지지 않게 잡아 주는 작용도 겸하고 있다. 이와 같이 두꺼운 판재와 굵은 선량으로 구성된 선체는 상당한 강도를 감당할수 있을 만큼 튼튼하며, 제작도 용이했다.

하지만 이런 기법은 소형선에서는 적합하지만 대형선이 되면 선량과 선량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게 된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도 선량 사이에 있는 외판은 쉽게 변형되며, 특히 철정으로 연결한 네다나와 나까다나, 나까다나와 우와다나의 연접 부분이 취약하다.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이후의 화선은 거의 다 늑골, 또는 늑골 모양의 부재(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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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滅の英雄李舜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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릣똓궻릶궸뫮궢궲궼 <뭷뜎쀰묆먰몚롊(뭷뜎쀰묆먰몚럍)>(뭷됗뼬뜎(뭷됗뼬뜎) 3똓묂둾(랳똓묈둾) 뺂뮊, 1979, p.408)궸귝귢궽 "9,200릐"궴궶궯궲궋귡궕, Yuma뤻싃(뾎봭맟뺗)궻 <뮝멞땤릶똓럷(뮝멞뽴릣똓럍)>(뱦떈(뱦떈) ; 둇뗴롊(둇궴뗴롊), 뤑돸(뤊쁝) 17봏, pp.44~45) 땩귂긯깈깛깂`@긂깛긐(빿뽰렅뾜)궻 <귽긚깛긘깛긚긎깑(뿘뢺륿궴뢋땑)>(뱦떈(뱦떈) ; 맟빒궇궶궫떢(맼빒벐륷뚹롊), 1983, p.69)궸궼 "몾멏뜎멗롨뭤먆(뮝멞뜎멏롨봙맖) ; 1,500릐긐긐귻(뗣딺), 2,000릐긤깛긐_깛긐(뱻벐), 1,500릐긭깈긳긫깛긐(쁢띯), 1,000릐둢뱯(돿뱻), 700릐볙벞(뿀뱡), 250릐긐@깛긯깈깛긐(맀빟), 1,000릐륂랹(똊랹), 850릐긐깑긨(뻳볙), 650릐긖깂긞긏(禳롟)궳뜃똶(뜃똶) 9,450릐"궴궶궯궲궋귡. 뷢롌궼궞궞궳뚣롌궻딯^궸븊궋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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뻃륿뢋땑(뻃륿뢋땑)궼둇궳궼궫궬덇붥(됷)귖룦궯궫궴궋궎뺪뜍귩빓궘궞궴궕궳궖궦궸, 럏밮둇먰 갋 뱛븓둇먰궳돹긽귽(딻덁深뗩)갋땶쀛긘}(뿀뱡믅뙰)궻릣똓궠궑봲귢귡궴, 럏밮둇먰궳룦뿕궢궫럷궕궇궯궲뿤뤵궸뛘똼궢궫릣똓깗긌긖긇깂긚긪궳(쁢띯댝렊), 돿뱻Yoshiaki(돿뱻됁뼻), 긐긌깉긘_긇(뗣딺됁뿲) 궶궵궸둇먰궸랷돿궢궲뮝멞릣똓귩똼봨궢궶궠궋궴뙻궋븊궚궫. 먰뿪렩뛱궸빾뛛궕뾴땫궠귢귡궴, 궞귢귞궼뿤뤵궔귞돷궯궲땺띙뱡뗟룋궳뮳궭궸뛮릋궞귪궸궭궼궬궯궫. 궩궻뭷깗긌긖긇깂긚긪깑궼 6뙉 5볷뾢봃(뿳릑) 먰벉궳룦궯궲, 6뙉 19볷똅먯궳돷궯궲둇뤵뒋벍귩궢궲궔귞, 7뙉 6볷 73롖궻듞묂귩벑궋궲뢯뵯궢궲 7볷긎깈깛긨깏긿깛긐(뙥봗쀀)궸럧궯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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뿘뢺륿궼 7뙉 5볷궔귞 7뙉 13볷귏궳 9볷듩, 긎깈깛긨깏긿깛긐궔귞듪랹뱡돧뜃땩귂귺깛긕|깑|(댝뜙뎋)궳 3렅뢯뤾귩궢궫. 7뙉 5볷귽긆긞긏긎궴궴귖궸궻멟궳궼 49롖귩벑궋궲멣뾿뜺릣뎑귩땸궯궲, 6볷볦둇쁈쀀궳똹룤덭릣럊뙰뗉궻 7롖궴쀍귩뜃귦궧궲둊 56롖귩]궑귡귝궎궸궶궯궫. 뿘뢺륿궼떣룷궶긎깈깛긨깏긿깛긐궕둇먰궸몜돒궢궘궶궋궞궴귩봠닾궢궲, 볷{궻묈멏뭖(묈멏뭖)귩듪랹뱡돧뜃궳뾘덙궢궲믝뾻릛(믝뾻릛)귩뛎궛궲둫롰몟뱷귩궎궯궲먩궸 2~3롖귩똼봨궢궫. 볷{릣똓궕|궕궯궲벀궛귝궎궴뙁_, 둖밎멏귩뾘덙궢궲벀궛궬궥륶귟귩궢궶궕귞궢궲궋귡뱑뭷덇뺆궸땤됷]궢궲믝뾻릛@(믝뾻릛@)귩둎궋궫. 궞궎궋궎귦궚궳몏둻궳궼(몏둻멏) 47롖귩뫥궯궲봨궯궲, 12롖귩뺕궑귡궶궵묈궖궋먰됈귩궇궛궫.

궕긎깈깛긨깏긿깛긐궚귪궔귩럚딐궢궫깗긌긖긇깂긚긪깑궼릈궎궣궲뗠둇궳벀몪궢궫궢럄귟뫍멏 14롖귖귘궯궴벀궛궬궢궫궕, 볫볷뚣귺깛긕|깑|궸궇궯궫렄궳궼 28롖귏궳둊 42롖귩똼뮶궠궧궲, 뿤뭤궳벀궛궫`똓 150땳귩랷됪궥귡궶궵둎먰궢궫댥뿀덇붥뫝궋먰됈귩궓궠귕궫. 둖밎궳궼 90% 댥뤵귩뫥궭봨궯궫궞궻먰벉궕궥궙듪랼둇먰(듪랹둇먰)궬. 궞궻렄됦똓궻뷀둙궼먰롌 19릐, 븠룤롌 114릐궸똮궫궶궔궯궫.

듪랼둇먰궻룦뿕궼뮝멞릣똓궕볦둇궻맕둇뙛귩뒶멣궸뤆닾궥귡빁릣쀤궸궶궯궫궢, 뙅됈밒궸궶궨궻뚋볦릋뢯귩띇먟궠궧궲궿궋궲궼궶궨귩룦궰궞궴궕궳궖귡궴궋궎렔륪뒾귩렃궰귝궎궸궢궫. 볷{궻뻃륿뢋땑궼듪랹뱡궳봲먰궢궫뚣궳먰뿪귩빾궑궫궕, 궩궻먰뿪궼뮝멞릣똓궸됵궑궽벀궛궬궢궶궠궋궴궋궎궞궴궬궯궫궢볙뿤궸뤵궕궯궲뻞뚥띿먰귩뛎궛궶궠궋궴궋궎궻궬궯궫. 뻞뚥띿먰궼귖궭귣귪뤻귩먑귪궳뮝멞릣똓궻벍뫴귩뙥뮗귡궻궬궯궫. 궩궢궲밢믨밒궸궚귪궔귩뷃궚귡궻궬궯궫. 궞궻둇먰궳먰몚궼렳렲밒궸룷뛐륉뫴궸볺궯궫. 뿘뢺륿궻둇먰룦뿕궳궶궨궻륬뿪먰몚궼뒋딠귩렪궯궫궢, 궞귢댥뤵궻묈궖궋궚귪궔궼딳귞궶궔궯궫.

<듪랼둇먰뾴뽵>

걹1렅멟됆
볷븊궚 - 1592봏 7뙉 8볷
둇먰릐 - 긎깈깛긨깏긿깛긐긶]깛(뙥봗瞬둇먰)
뮝멞릣똓 - 뿘뢺륿듞묂 : 24롖(붋돫멏 21, 딻멏 3), 뙰뗉듞묂 : 7롖, 귽긆긞긏긎듞묂 : 25롖궶궵몟 56롖
`똓 - 73롖
멟됆 - 47롖똼뮶, 12롖뺕, 14롖벀몪
뷀둙 - 먰 19릐, 븠룤 114릐

걹2렅멟됆
볷븊궚 - 1592봏 7뙉 10볷
둇먰릐 - 귺깛긕|깑|긶]깛(댝뜙뎋둇먰)
뮝멞릣똓 - 뿘뢺륿듞묂 : 24롖(붋돫멏 21, 딻멏 3), 뙰뗉 : 7롖, 귽긆긞긏긎듞묂 : 25롖궶궵몟 56롖
`똓 - 42롖
멟됆 - 42롖똼뮶

뼿쀀둇먰

렄묆 뮝멞렄묆     맫` 뮝멞먩멵 30봏(1597봏)궸뿘뢺륿궻벑궘릣똓궕~깈깛긐깏긿깛긐궳`멏(`멏)귩뫥궭봨궯궫몚궎. 12롖궻밺멄(먰멏)궳밎듞묂 133롖귩}궑몚궯궲 31롖궻뫍멏귩똼봨궢궲묈궖궘룦궰.
걹렦먯쀊둇먰궳궻봲뻢
1597봏뮝멞릣똓궼렦먯쀊둇먰(렰먯쀀둇먰)궔귞둖밎멏(`밎멏)궸묈봲궢궲귘궯궴 12롖궬궚벀궛궲럄궯궫. 궞궻렄뮧맢궳궼릣똓궕궇귏귟궸귖뷊롢궠궕빁궔궯궲, 8뙉 15볷뿘뢺륿궸뿤똓궸]럷(]럷)궢궶궠궋궴궋궎뼺쀟귩돷궢궫. 궢궔궢뿘뢺륿궼릣똓궻띿먰궼뙻뾲궳룦뿕궻뾴믺궶궻귩궖궯궾귟궴롥뮗궢궫.

<뿘뭺븧뚺멟궳(뿘뭺븧뚺멣룕)>뙒13, 븊^5 긶깛긐깓긞긏1궸궼궞궻귝궎궶뿘뢺륿궻롥뮗궕귝궘뙸귦귢궲궋귡. 갾럡릔묬봏(릔묬봏)궔귞뜞귏궳 5~6봏궻듩룺궶궘듃궑궲뭺먃, 멣뾽벞귩귏궯궥궙궸벺릋궢궲뿀귡궞궴궕궳궖궶궔궯궫궞궴궼렳띧럡궫궭릣똓궕벞귩멽귪궬궔귞궳궥. 귖궎럡궸밺멄궕귏궬 12롖귖럄궯궲궋귏궥. 궹쀍귩뢯궢궲뛕궢궲몚궑궽귔궢귣궳궖귡럅럷궳궥. 귖궎귖궢릣똓귩둊봯궢궲궢귏궯궫귞룺궶궋먪붥(됷)뼔붥(됷)궠궋귦궋궶럷궳럙궎뤵궸, 뭺맭벞귩똮궯궲듌]궸귏궳뛱궘궳궢귛궎. 맫궢궘궩귢궕럡궕륲봹궥귡궴궞귣궳궥. 궩궢궲귏궫밺멄궼궫궴궑룺궶궋궚귢궵, 럡궕궶궶궋댥뤵룺궶궘듃궑궲럡궫궭귩봭렚궸궥귡궞궴궕궳궖궶궋궬귣궎.갿 궞궻빒궼뙸묆밒궶먰뿪둜봑궳뙥귢궽 "뙸뫔듞묂먰뿪(뙸뫔듞묂먰뿪)" 궳궇귟, 귏궫쀲맖궳귖룦궰궞궴궕궳궖귡궴궋궎뙂먰먰뿪(뙂먰먰뿪)궻댰럘궳귖궇귡.

걹뼿쀀둇먰(뼿瞬둇먰)
릩궸둖밎궳궼 8롖궕 8뙉 28볷뽭뼻궚 6렄뜝떅뿊릛(돆뿒N) 돧뜃궸뢯뙸궢궫. 뿘뢺륿듞묂궼뾜뱑(겕뱡)궸댷벍궢궲뽭귩됡궟궢궲, 8뙉 29볷릋뱗궻솢봨릛(빲봥뮼)궸뱸뭶궢궲뵾뙉궻듩궴궵귏궯궫 9뙉 15볷룙롨궸뤸궯궲둇볦똕뽩볙뽋덭릣뎑(둇볦똕 뽩볙뽋 덭릣뎑)궳`깛귩댷궢궲긂깑긤깑긾긞긏귩롧궯궫. 뿘뢺륿궼멣뾿덭릣럊긎긆긞긏긟(뗠돪뢌)궸롨뙰밪륡귩룕궘궞궴궕궳궖귡귝궎궸뼺쀟귩돷궥궶궵뼔붗궻뷈귩롦귟뫓궑궫. 둖밎멏궼 200]귎귪궴뭷 55롖궕 9뙉 14볷떅뿊릛궸뱸뭶궢궫궢, 9뙉 16볷뚞멟 11렄뜝먰벉궕럑귏궯궫. 덇렅궳롨뙰밪륡궸둖밎멏궕궔궔궯궲릋귔궞궴궕궳궖궶궋궴, 뮳궭궸뚣귩븊궋궲뿀궫둖밎멏궕붯귞궻멟궓븷궸뤧벺궥귡귝궎궸궥귡궞궴궳둖밎궳궼 133롖궻뭷궓궓귝궩 31롖귩봨귡먰됈귩궇궛궫.

<먩멵렳^> 뙒 94, 먩멵 30봏 11뙉 10볷(맱뽿)궸뙥귢궽 갾듪랹뱡(렦먯쀊둇먰)궳봲먰궢궫댥뚣밺멄궴븧딇궕귌궴귪궵랼귞궽궯궲뤑궑귏궢궫. 궩귢궳_궠귏(륿, 뿘뢺륿)궼멣뾿뾆귖릣똓먢뱗럊긎긆긞긏긟궶궵궴궴귖궸밺멄(먰멏) 13롖궴뭈귟궳궼(룭멏) 32롖귩뢜귕궲궋궲둇볦뙢둇듶벞쁇궻뢣뾴궶뮠둷귩띏궋궳궋궫궕, 렄궻밺멄 130]롖궕귽긙깛|돧뜃궳궞궻뺴귩뛀궚궲뿀귏궢궫. 궼궋궫{뜽긎긆긞긏긟, 멷뺳뤾, 긹갋긲깛깏긵, 땺띙뙢쀟댝딅궶궵귩럚딐궢궲궩귢궪귢밺멄귩맢뷈궢궲릋뱗궻긮깈긞긏긬]깛긐돧뜃궳밎뺴궴귩궔궑귟귒궦맖궋귝궘몚궋귏궢궫. 궩궢궲묈뺺궳뫍멏 20]롖귩뫥궭봨궯궲궎궯궲궓궔귚궳궇귡궻궬궚귖궥궟궘뫝궔궯궫궕, 둇궸궓귍귢궲븖궔귪궳궋귡밎 8릐궻롵귩뼃궸궢귏궢궫.갿궴궠귢궲궋귡.

덇뺴뮝멞릣똓궼밺멄 13롖, 룊멗(룭멏 ; 떐궳궼) 32롖궳궫궬 1롖귖뷀둙귩뷀귞궶궔궯궫궢, 궫궬먰롌 2릐궴븠룤롌 2릐궕궋궫궬궚궬. 궞궻둇먰궼맊둉둇먰롊궳궩궻쀞쀡귩{궢궲귒귡궞궴궕궳궖궶궋뒶멣뼰뙁궶룦뿕궻럷쀡궬.

긩깏긿깛둇먰

렄묆 뮝멞렄묆     맫` 뮝멞먩멵 31봏(1598봏)궸쁈쀀돧뜃궳뿘뢺륿궕`빜궴뫮뙂궢궫띍뚣궻둇먰. 궞궻둇먰궳뿘뢺륿궼뼻룶똓긙깛깏깛(뮻겕)궴궋궯궢귛궸몚궯궫궢, 룦뿢궴덇룒궸먰궥귡.
걹`똓궻밣뢁
긩깏긿깛둇먰(쁈瞬둇먰)궼릔묬궻뿉 7봏궻먰몚궻뭷궳띍뚣궻먰벉궬. 1598봏궸궼 4됷궻먰벉궕궇궯궫궕, ]깑귽긤]깛긣(먟렋뱡먰벉, 7뙉19볷), 귽긃긎깈궴_벞먰벉(9뙉 15볷~10뙉 4볷), 뾜뱑둇먰(겕뱡둇먰, 9뙉 20볷~10뙉 9볷) 궶궵볷{똓궕밣뢁궥귡궫귕궻멟룭먰궕궇궯궫궢궞궻귝궎궶먰벉궕뎱뮮궠귢궫궻궕궥궙긩깏긿깛둇먰궬. 벫궸귽긃긎깈궸궼룷맻깇긌긥긇(룷맻뛱뮮)궕럚딐궥귡볷{똓 15,000]릐궬궯궫궕, <몢뫬볷딯(몢룕뫬볷딯)>궸귝귢궽됦똓궕귽긃긎깈궻밎똓귩뮮귖뚣궳 10뙉 2볷궔귞럏볷궻듩뽖뛘귩궢궫궕, 븉뛍궸귖롈멄(뜾멏) 25롖, 뜂멄(뜂멏) 77롖, 붶귊궲궼(뷅둇멏) 17롖, 봳궳궼 9롖궶궵둊 128롖귩렃궯궫뼻릣똓궼궩궻뭷 39롖궕됌궸봕궑귡뷀둙귩뷀궯궫. 뮝멞릣똓귖묉뻆뼖뜂뭾댰릶(롩`롺), 럏쀀뼔뚈뗠맟뜓(뗠맳뗃), 둇볦뙢듒쀞^(뽺겕), 릋뱗똓롿깛긂귻깛(먬`뽦), 떗릏뙢듒몎몜뺚(몎몜뺗) 궶궵 5릐궕뮖뢤궸븠룤귩븠궯궫궢, 럊뱆앺렖돥맊벦(돥맊벦)궴똓뒸뿘볷맭(뿘맭덇) 궶궵 2릐궼먰궢궫. 릣빜귖 29릐궕먰궢궫.

`똓궼뻃륿뢋땑(뻃륿뢋땑)궕땸귡 8뙉 18볷돘궢궫궻궳, 밣뢁궢귝궎궴럙궯궫. <먩멵렳^(먬멵렳^)> (뙒 103, 먩멵 31봏 8뙉 19볷(쌟륯(릔))궸귝귢궽 갾똹룤덭릣럊뿘뢺륿(뿘룂륪)궻붼뼤뮮똶(륉[)궕뿀궫. 볷{궳긗긳긭깈긊긞_궕벀궛궲뢯궫릐궕뙻궎궻귩, 갻뻃륿뢋땑(뻃륿뢋땑)궕 7뙉룊궸뷲궢궫궻궳, 떏뫍(떏뫍)궕룶뿀밣뢁궥귡궻귩딂궎.갽궴뙻궯궫.갿

룷맻깇긌긥긇궶궵`똓궫궭궼몓궘밣뢁궥귡궞궴귩]귪궳궋궫궢, 뿘뢺륿궼랳뙉궕똮궯궫 11뙉 8볷귽긃긎깈깛긐궸궇귡둖밎궫궭궕 10볷뭷궸묮뢯궢귝궎궴럙궎궴궋궎뤑뫃귩뼻뾎륃(뿫겕)궔귞롷궚궫. 뿘뢺륿궼벀궛궬궥둖밎귩덇롖뱗뺅궠궶궋붱몊궶둶뚦궳 11뙉 9볷뚀뜞귖(뚀뜞뱡)귩땸궯궲, 11뙉 11볷귏궫_벞궸뱸뭶궢궲귽긃긎깈궸궇귡둖밎궕벀궛궬궥벞귩롏뭚궢궫. 볫볷뚣둖밎궳궼 10]롖궕뗟궘궻뾜뱑궸뙸귦귢궲궔귞, 뿘뢺륿듞묂궻믁궋뱼궭귩뷃궚궲귽긃긎깈뗟궘궻뒅궳궇귡긘깛깛긐|(륷뤻뎋) 뭷궸볺궯궲뛱궯궲궢귏궯궫. 됦똓궼덇볷뭷귽긃긎깈궻멟궳둖밎귩뾘덙궢궫귟, 궙궯궴댊뵕귩돿궑궫귟궢궶궕귞둇뤵븬띂멏귩뾜뱑귏궳둴뮗궢궫.

덇뺴궞귢댥뤵뫯궑귡궞궴궕궳궖궶궔궯궫`똓궼븫돷 8릐귩믅궣궲뼻릣똓뱊벲긙깛깏깛(뮻겕)궸볋궴궓롴궶궵귦궋귣귩뺲궛궲벀궛궬궥벞귩뢯궲궰궚궶궠궋궴궋궋궶궕귞뚴뤒귩럑귕궫. 긙깛깏깛궼롨똹궋먭뛘귩뿧궲귝궎궴궥귡宴~귩궕긙깈긞긂긙긞긏덇궰뿘뢺륿궻떗뛡궶뵿뫮궸귆궰궔궯궲붯귞궻댰}귩맟뚻궠궧귡궞궴궕궳궖궶궔궯궫궞궴궴뙥궑귡.

걹긩깏긿깛둇먰궻롨럑귕
1598봏 11뙉 17볷[뺴, 귽긃긎깈깛긐궸빧궣궞귕귞귢궫`똓궼궫궋귏궰륪뜂궸볦둇뱳뭤궸궋귡붯귞궻됦똓궸뭢귞궧궫. 궞궞궸뚚돒궥귡궫궋귏궰궕궇궭궞궭궳뙥궑궫. 뛼맳궸궇귡_`긫귘(뿧됓뱷뚒), 럏밮궸궇귡긘}긛(뱡뮼`뛑), 볦둇궸궇귡궔귔궻궺(@`뭧) 궶궵궕둊쁈쀀둇궳뢜뙅궢궲룷맻귩~뢯궢궲, 볷{궸딞귡띍뚣궻먰벉귩듃뛱궥귡궰귖귟궬궯궫. 뿘뢺륿귖띍뚣궻뙂먰귩궥귡궰귖귟궬궯궫. 뿘뢺륿궼 18볷뽭뽭궻볫렄궸궶귡궴, 귅궴궫귞궋궸궖귢궋궶릣귩땬귪궳뿀궲롨귩먷궯궫. 덇릐궳뛟붋궻뤵궸뤵궕궯궲궿궡귏궦궋궲, 갾궞궻뙰롵귘궰귞귩뫥궭봨궯궫귞뜞귪궳귖]뒭궕궶궋궳궥.갿궴뗴궸딣궯궫.(<뿘뭺븧뚺멟궳(뿘뭺븧뚺멣룕)> 뙒(뒱) 9 븊^(븤^) 31긻[긙걏긶깛긐깓긞긏(뛱^))

궴궸궔궘뿘뢺륿궼둖밎멏궕뙽귟궶궘댷벍궥귡궴궋궎륃뺪궸뼻릣똓귩럚딐궢궲 11뙉 18볷뽭 10렄궸뢯`, 쁈쀀멟둇궸댷벍궢궫궢, 11뙉 18볷뽭궔귞11뙉 19볷귏궳볫볷듩뽭귩긜궕궳궇귟몚궯궫. 11뙉 19볷뽭뼻궚 2렄뜝됦똓쁀뜃듞묂궼둖밎궻멏뭖궕똒궕궯궲뿀귡쁈쀀둇궸릋귪궳궋궫. `똓궕뽭뼻궚 4렄쁈쀀귩똮궯궲긐@깛긂|(듡돶뎋) 멟둇궳몓궋궳, 뿘뢺륿궼뾴똼멟(映똼먰)귩궢궫. 럡궫궭릣똓궼밺멄 83롖, 릣똓궕 1뼔 7,000]릐궳, 뼻릣똓궼밺멄 63롖, 릣똓 2,600릐궬궯궫.

둖밎궻빜쀍궼묈뱷쀌멗땽 500]먉, 릣똓 6뼔뼹]궬궯궫. <먩멵렳^(먬멵렳^)>(먩멵 31봏 11뙉 27볷긤`긃`@깑긖뿘벩]궻뮮똶)궸귝귢궽 갾뫍멏궕 3뷨]롖갿궴뙻궯궫궕, <뿘뭺븧뚺멟궳(뿘뭺븧뚺멣룕)>뙒 9 븊^ 1걏긶깛긐깓긞긏걐궴 <먩뺞뭷떩럮(먬_뭷떩럮)>궸궼 갾뫍멏궕 5뷨]롖갿궴궋궯궫궢, <먩멵렳^>(먩멵 31봏 11뙉 24볷)궸궼 갾뼻릣똓믯벬긙깛깏깛궕똓궻뽩똳둌궸뺪뜍궢궫궞궴궸귝귢궽, 뫍멏 100롖귩뺕궑궲 200롖귩봕귘궢궫궢, 럂롵 500땳, 맯궚뺕귟 180릐]귟, 뱘뜴뎢뽩궼귏궬릣궻뤵궸븖귂뤵궕귞궶궘궲빁궔귡궞궴궕궳궖궶궋궢, 귽`긅깛긐긮깈깛긐(뿘뢺륿)궕귪궬.갿궰귞궘궲궇귡.

궞궻볷뽭뼻궚됦똓궼밎뺴궕빁궔귞궶궘붼뼤뿠궸릋귪궬. <뼹럩(뼻럍)>궳뙥궫쁈쀀긐@깛긂|둇먰궻딯^귩귝궘뙥귢궽, 갾1598봏 11뙉돿뱻딬뾴}[긖(돿뱻맭맫)궕멏귩뢯궢궲먩궸벀궛궫. 뻷딺(뻸딲)궼궋귝궋귝|럀(뱡랹), 뿬븓(볃뎋)궸볺궯궲뛱궯궫궢, 뾎륃(뿫겕)궼귽긃긎깈귩뛘똼궢궲묭궋뺅궢궫. 긞긏}깛긗궕릣똓귩벑궋궲룷맻깇긌긥궕귩~뎴궢귝궎궴뙁_, 긙깛깏깛궕궞귢귩궩궎뫥궭봨궯궲봲뻢궠궧궫. 뫝궘궻룋궻`똓궕붃귩궰궚궲둊딞궯궫. 궶궨궕뮝멞귩랼귞궔궢궲궔귞 7봏궻듩렪궯궫똓럷궕릶뼔귖궶궯궲, 뤑뽙궢궫똓쀆궕릶뷨뼔귖궶궯궫. 뭷돍궻뮝멞궴궩궻뫌뜎궫궭궼룦궰뙥궞귒궕궶궋뭤떕궸귏궳럧궯궫궻궸듫뵏(듫뵏)궕귪궳궔귞먰몚궕룊귕궲뢎뢿퀌궫.갿궴궠귢궲궋귡.(<뼹럩(뼻럍)> (뙒320걏봎먰(쀱`)걐묉208 둖뜎(둖뜎) 1 뮝멞) 궞궞궳궼긙깛깏깛궻뽴뽞궳둖밎멏귩봲뻢궠궧궫궞궴궳뙸귦귢궲궋귡궕뿘뢺륿궻뽴뽞궕덇붥둱륲궸궶귡궸궼댶댰궕궶궋궬귣궎.

걹뿘뢺륿궻먰궴둇먰궻럅뤵궛
띍뚣궻먰뤾(먰뤾)궼|럀(뱡랹), 뿬븓(볃뎋), 귽긃긎깈(뎖떞)궕궇귡룋궬. 궞궻띍뚣궻먰몚궼뿘뢺륿궕}뜎궢궫궻궳뿘뢺륿궸뫮궥귡딯^궼궶궋. 궫궬, 뫜궻릐갲궕딯^궢궫 <긶깛긐깓긞긏(뛱^)>, <뛱뮮(뛱륉)>, <붻빒(붻빒)>, <렳^(렳^)> 땩귂궥귊궲궻럍뿿(럍뿿)귩몟뜃궢궲맢뿚궥귢궽렅궻귝궎궬.

궞궻볷뽭뼻궚멺(뮝) 릐(뼻) 쁀뜃듞묂궼뜺덭궳멺귒빁궚귩궢궲뛱릋궢궫. 궩궢궲뿘뢺륿궼뒅궴뱡갲궟궴궸븱빜귩봹뭫궢궲룺궶궋뷈궑귡귝궎궸궢궲뛱궯궲릋똓궢궫. 럏밮궸뾜땼궢궲궋궫긘}긛Yoshihiro(뱡뮼`뛑) 궶궵궻둖밎궫궭궼 500]롖귩벑궋궲, 똠룼벞럏밮궔귞볦둇쁈쀀궻듩궸궇귡뚹뢆궠귪(뚹뢆뾪)귩똮궯궲귏궯궥궙궸쁈쀀궳볺궯궲뿀궲궋궫. 궞궻렄, 뮝멞릣똓궫궭궼뫮밎멏궻뛮쁇멟뺴궳궇귡|뱚궴긐@깛긂|궻듩궸봹뭫궠귢궫궢, 뼻릣똓궼궓궔귚귖뻢궸뫲궭븱궧궫. 둖밎멏궕쁈쀀릣쁇귩똮궯궲긐@깛긂|돧뜃궸뻲궵됡궗땸궯궫렄, 럡궫궭릣똓궫궭궼뜺덭궳덋띐궻귝궎궸뙸귦귢궲덇뺆궸뺺똼귩돿궑럑귕궫. 궞궞궸뛯궲궫밎뺴궼뢜귏궯궫랼귞궽궯궫궴뙻궋궶궕귞궵궗귏궗궢궲궼귘궕궲귏궫먰쀱귩맢뷈궢궲럡궫궭릣똓궸뫮뛕궢궲뿀궫. 궥귡궴럡궫궭릣똓궫궭궼뫍멏궸뗟먝궢궲됌궕븊궘빊궖븿(릁됌)귩궳궫귞귕궸뱤궛궲렄궻궓븷궫궭귩봕귘궢럑귕궫. 궩궢궲밎뺴궼볷궕쁒귢럑귕귡뜝궞귢댥뤵뫯궑귡궞궴궕궳궖궦궸긐@깛긂|(듡돶뎋)궳벀뻊귩뮗귟럑귕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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렄묆 뮝멞렄묆     맫` 뫝궘궻궓븷궫궭궻댷벍귘밎똓궻뛘똼궸뾢댲궋`깛.
`긅긗`@깑긙깛(먮럻랣릛)궼뭷똓궥귡궞궴궕뜺뤸듞궻멟궸봹뭫궠귢궲궋귡궢, 덇붥궻멟궸궼먍뚷멏궕궩귢궪귢뜺덭궸덇롖궦궰봹뭫궠귢궲궋궲궩궻뚣궸뭷똓궻뮳먝럚딐귩롷궚귡멟뎢묂쀱궕궇귡. 궩궢궲뜺뤸듞뢂귟궻룷궠궶궓븷궫궭귖궋귞뭿릛`뫴귩댸렃궢궲궋귡궢, 궩궻뚣궸뚣쀱궳뜺뤸듞궻뮳먝럚딐귩롷궚귡귝궎궶뚣뎢묂쀱궕궇귡. 궞궻릛`궼뫝궘궻궓븷궫궭궻댷벍귘밎똓궻뛘똼궸뷄륂궸뾢댲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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썱븮궻뭷둋궼뮝멞릣똓궻뭷릷뽴뽞귩궥귡똠룼멣뾽뭺먃궻랳벞릣똓궕뮧쀻귩궥귡멟릋궻럓궬. 랳벞릣똓궻몟럌쀟븫궳궇귡뱷맕뎑궼똠룼벞뱷뎑궸궇궯궫. 랳벞릣똓궻뮧쀻궼뢶뢌, 궥궶귦궭뢶궴뢌궸렳{궢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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걹뱷맕뎑궻룮먰궳궼(뤵먰멏)
뜺멦궼뮝멞릣똓궻밺멄궻뭷궳덇붥묈궖궘궶궯궫딮뽎궻잯귏귢귡. 궞궻봹댰멏땳(봹댰뢯뿀궽궑궴묈궖궠귩뙸귦궥궞궴) 뼹멟궼밮럔볷뜈뜺멦(밮럔덇뜂띆멏)궬. 1615봏궸궼뿙돷궻뮮궠궕 14뵯궬궯궫궕궩궻뚣룞갲궸뮮궘궶궯궲 1800봏궸궼 18뵯귏궳몵궑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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걹멣뾿뜺릣뎑밺멄
멣뾿뜺릣뎑궻릣똓먢뱗럊궕뤸귡긬깛긆긞긏]깛깛궳멟릋궳궼뚙궰쀫궻먩뺴궳궇귡멣뎟(멟뎑)귩덙궖롷궚궲궋귡. 릣똓귩뮧쀻궥귡멟릋궸궼뚙궰쀬댶궇귡. 둫쀫궟궴궸궩궻돷궸뚙궰긖긬`긅깛긐궕뺂맟궠귢궲궋궲, 귏궫궩궻돷궸뚙궰`긅긐@깛궕븊궋궲궋귡.

멣뾿뜺릣뎑귩긼긛@긚깂깛긐(뚋뜺릣뎑)궴귖뚁귪궳, 빶뤝궼긽깂깛긐(~뎑)궬. {뎑({뎑)궼뜞궻쀭릣럖궸궇궯궫. 쀟륉(뎑룶)귞궕뤸귡긂긳긙깛]깛궳궼(뾚N먰멏)땬덙궞궻봹댰댶븿벆궸궼봹댰뢯뿀궽궑궴묈궖궠귩뙸귦궥멏땳(멏땳) 뼹멟궳궇귡뙧롌멏궴궋궎뙗붋귩듑궔궯궫. 궞궻궓븷궻뿙돷뮮궠궼 13뵯(봠) 댧궳, 멏궸뤸귡똓럷궼 164릐볙둖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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댶븿, 궥궶귦궭멗롨(멏롵)궕뙓뚂궶몾궸궶궯궲궋귡궢, 뤵뛟붋궻뤵궼 2둏궸궶궯궲궋귡. 궩궻^귪뭷 "욊둻"궴뙻궎럌쀟뱜궕궇귡궻궸, 긚깛긬깛(|붋=뢿)궴궋궎뚾궋뢿긩깑긬깛궳뤵뛟붋궻뤵궔귞뤵븫궻긹긞긙긳몾븿귏귦귟귩궰궚궫. 욊둻궻묈궖궠궼 4뵯궻븴궕 2듩(3.64긽[긣깑)궳뛼궠궼 2.5듩(4.5긽[긣깑)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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릔묬궻뿉뱰렄댝묔멏궼돿뱻딬뾴}[긖(돿뱻맭맫)귩럑귏귟궸뜒밹(뜒밹), 땯땆(뗣딺),긼깛_({뫝) 궶궵뫝궘궻븧룶궫궭궸귝궯궲뒩몙궢궫궢, 궩궻뭷궳귖뭷룷^궕궫궘궠귪뒩몙궢궫.

뒸멗(랳륣븫궬궺)

렄묆 뮝멞렄묆(16C 댥뚣, 볷{ : 댝뱘뱧랹렄묆)     맫` 먰뜎렄묆궔귞맶띿궠귢궲뿀궫볷{궻묆밒궶똓듞. 몾멏(몓멏)궴뚁귪궬귟궥귡.
뒸멗(듫멏 ; 랳륣븫궬궺)궼댝묔궳궼(댝묔멏)궴덇룒궸먰뜎렄묆릣똓듞묂궳뒋뽸궢궫밺멄(먰멏)궬. 댝묔멏궸붶귊궲딮뽎궕띿뚉, 뫊뱗궕몓궋궻궕벫뮙궬.

궕렄딖궼덇붗궓븷궫궭귖 1,000]봏귩궦궯궴궰궶궕궯궲뿀궫듴뽜멏, 궥궶귦궭 갻뚀뭾렜멏뫬갽 몾궻땆@궳묮붺궢궲{둰밒궶룙궚멏(몾멄)궴룙궚멏(몾멄)궸뾩빾귟궥귡렄궬궯궫. 멗롨(멏롵)궻뽎뾩귖뵠^(뵠럔^)궳궼궶궘궲뼻귞궔궸댱쁉벺궖뢯궠귢궫뭁덇멗롨쀤(멏롵띫)귩렃궯궲궋귡궢먮궯궫귝궎궶`뫴궸궶궯궲궋귡.

뒸멗궻묈궖궠궼쁄 30롖귩궔궚귡궞궴궔귞쁄 100롖귩궔궚귡궞궴귏궳뫝뾩궬궯궫궕, 궩궻뭷궳 40롖~50롖귩궔궚귡뢣똜멏궕덇붥뫝궘뒩몙궢궫. 뤵븫몾귘땉뮮(~몧)궼댝묔멏궻맕뱗궸궢궫궕, 욊둻궴뿯뗰귩궔궚귡롨뫽(몧뛟) 궶궵궼덇붗밒궸룷궠궘궢궫. 쁄 80롖귩궔궚귡뒸멗댥돷궸궼욊둻궕궶궋.

쁄 40롖~50롖귩궔궚귡뢣똜뒸멗궼뢿붎(뻞봵붋)궕댶븿궻멣뽋궸궬궚먠뭫궠귢궲궋궲, 뫀뽋궼뮔뼀(뮔뼀)궳묆귦귟귩궢궫궔귞 "묈덙궚궳궼"(뼀뮗멏)궴뚁궽귢궫. 궩궻둖궸귖뫀뽋궻뢿붎궸|귩럊궯궫궞궴귖궇귡.

뒸멗궼릣똓듞묂궳댝묔멏귩뺚뜴궢궲, 됻뫊맜(됻뫊맜)귩뿕뾭궢궲룄뾪듞(룄뾪듞)궻뽴뽞귩궥귡뫔띪궬궯궫. 몓궋궴궋궎댰뼞궳 "뮝멞"(몓멏)궴궋궎빶뤝귩렃궯궲궋귡.

묈^뒸멗궸궼긩(룷쁄)궕 76롌궳궔궔궯궲궋귡궢묈쁖(묈쁄)궼 48뫽궕궔궔궯궲궋귡궞궴궕묈븫빁궬. 멏뫬몾궼~긞긬깛/뢣붎/뽋븊궖궳맟궠귢궫 3몏`귘, ~긞긬깛궴뢣붎귩덇궰궸궓궓귝궩 2몏`궻볫궰궕궇귡.

17맊딬룊궸긾긞긏긪깑{긳(뽜뒆@=궓븷귩띿귡붶쀡@)궕븕땩궠귢궶궕귞뒸멗궻먱`, 몾, 땉뮮귖뷭돸궠귢궫. 궩궻뚣떗뜈렄묆(]뚈렄묆)귩똮궭궶궕귞뒸멗궸궼귌궴귪궵빾돸궕궶궔궯궫. 빟쁝궕뮮딖듩렃뫏궢궫궻궳, 똓멏땆뢱귩뵯밯궠궧귡궞궴궕궳궖귡벏딖궕븉뫉궬궯궫궴궞귣궳궩궻뙱덓귩{궥궞궴궕궳궖귡.멮몾멏(긕긫깂긳궬궺) 렄묆 뮝멞렄묆(16C 댥뚣, 볷{ : 댝뱘뱧랹렄묆)     맫` 룷궠궶딮뽎궻뒸멗귩뙻궎. 먰벉귝귟궼먍뚷뾭귏궫궼쁀뿆뾭궳뒋뽸.
멮몾멏(룷몓멏 ; 긕긫깂긳궬궺, 룷^멏궴궢궲몓궘몪귡궴궋궎댰뼞궻뼹멟)궼뒸멗(듫멏 ; 랳륣븫궬궺)궻덇롰궳, 뒸멗궻뭷궳덇붥룷궠궶궓븷궳궇귡룷^뒸멗(룷^듫멏)귩뙻궎. 덇붗밒궸 14롖~30롖궻돥륡궋귪궼룷^됻뫊뒸멗(룷^됻뫊듫멏)귩뙻궎궻궸, 뿯뗰귩뽜붎귘둷띫궶궵궸븊궚귡롨뫽몧뭫(몧뛟몧뭫)귩뒸멗귝귟룺궶궋귝궎궸궢궲뙥궲똹궘궲, 롨뭒궸궑귡궻궕벫뮙궬. 럑룯(뽲몈 ; 뤮륉쀝궳(욊쁄)) 묆귟궸뵾~(뵾_)궴뙻궎믟궋뢿붎(|붋-긚깛긬깛)귩먠뭫궢궫궞궴귖뒸멗궴댾궎_궬.

멮몾멏궼뢣똜귘묈^뒸멗귝귟릆똹궘궲멹몓궘뛮둇궕궳궖귡궻궳먍뚷맫랣뾭귘쁀뿆뾭궳궫궘궠귪럊귦귢궫. 뗭듞(뗭듞)궳럊귦귢귡뤾뜃귖궇귡궕뛘똼쀍궼궇귏귟떗궘궶궋. 쁄 30잵륈뱡귩렃궯궫붶둹밒묈궖궋멮몾멏궴뙻궯궲귖 8롌궳볙둖궻`긅깑|(밪뺺; 뮖뢤)귩뱥띦궢궲궋귡궬궚궬궯궫.

릔묬궻뿉궻렄뱛븓궸뙸귦귢궫둖밎궻먍뚷멏귩뙥궰궚궲뮝멞듞묂궳럈뚷멏(럈뚷멏)궳믁궋|궚귡귝궎궸궢궫궕, 궴궲귖몓궘궲믁궋븊궘궞궴궕궳궖궶궔궯궫궴궋궎딯^귖궇귡.

돷멏(긦}긳궬궺)


렄묆 뮝멞렄묆(볷{ : ]뚈렄묆)     맫` 빜럐, 봭뷖, 똓쀆궶궵귩^귆뾃몭멏.
돷멏(됖멏 ; 긦긳궬궺)궼먵먐궳궼(먪먐멏)궴귖뙻궎궻궸빜럐, 봭뷖, 똓쀆궶궵귩^귆궓븷귩뙻궎. "먵먐궳궼"궴뙻궎(궻궼) 갻됖븿먑귔묈궖궋궓븷갽궴궋궎댰뼞궬. 뭷뜎궻뚀묆멏귘듰뜎궻뚀묆멏궳귖 갻묈궖궋궓븷갽귩 갻먵먐궳궼갽궴궋궎빶뤝궴뚁귪궬궞궴궼럸궫귟딋궯궫귟궬. 돷멏궼볷{봹댰묆밒궶먱`궬궴뙻궑귡궻궸, 뱰렄궸궼궞귪궶먱`귩 갻빾띚멏(뺊띓멏)갽 귏궫궼 갻긹긗귽뢯뿀궽궑"(긹긗귽몾귟)궴뚁귪궬.

]뚈렄묆뭷딖댥뚣궔귞볷{뎵듶귩뒋뵯궸뺖궖됷귟궶궕귞쀆뜏귩^몭궢궫멏뵓궕궥궙빾띚멏궬. 묈궖궠궸귝궯궲뗦빁궥귢궽, 쀋(뷝_), 됷멄(묺룕D)귘딠맜(뤻빫), {깛~(붘빫) 궶궵궕궇궯궫궢, 500먊~1,000먊귩먑띦궥귡궞궴궕궳궖귡묈궖궠궕롥뿬귩궶궢궫궕뼀{뼎딖궸궼 1,500먊~2,000먊귩먑띦궥귡궞궴궕궳궖귡묈^멏궕궫궘궠귪럊귦귢궫.

]뚈렄묆둇^궻롥쀍궳뱋뤾궢궫빾띚멏궼뙰갲궼 16맊딬뜝]뜂볙궢궲(맋뚈볙둇 ; 긜긤긥귽긇귽)귩뭷륲궸뵯묪궢궫뎵듶궳궼먱`궬궔귞긨긬깛긐(뫯봥맜)궕롢궘궲둖둇귘돀뾪뛮둇궸궼몜돒궢궘궶궔궯궫.

빾띚멏궼뾪렜붃멏궴뒶멣궸뫜궻몾귩렃궯궲궋귡. 갻뛻뢶"(뛮)궴뚁귆뚾궋붋띫궻뿙돷귩딈{궸궢궲긨_귘(뜧묲)/긥긇_귘(뭷묲)/긂깗_귘(뤵묲)궴뙻궎랳뭝궻둖붋귩멺귒뜃귦궧궲멏뫬귩먑귪궳뤵궛귡. 궢궫궕궯궲]깛긐긫깛긐긭긿깛긐궻떗뱪궼뿙돷궴둖붋(랳붋)궸귝궯궲뙂귏궯궲, 긲긃깛긐긊깛긐긤궼밙뱰궶듩둼궳깂깛긐긭깈깛(뿼뙺)궻둖붋궴둖붋궻듩궸뫞궋멠쀇귩돹먠궢궲뛼귕귡. 멠쀇궼멏뫬궕돘궳딳귞궶궋귝궎궸롦궯궲궘귢귡띿뾭귖뙎궺궲궋귡. 궞궻귝궎궸뚾궋붋띫궴뫞궋멠쀇궳맟궠귢궫멏뫬궼몜뱰궶떗뱪귩롨궸궓궑귡궞궴궕궳궖귡궬궚뤶븎궳궇귟, 맶띿귖뾢댲궔궯궫.

궢궔궢궞귪궶땆@궼룷^멏궳궼몜돒궢궋궕묈^멏궸궶귢궽멠쀇궴멠쀇궻듩궻듩둼궕뛎궘궶귡귝궎궸궶귡. 궵귪궶뺴@귩럊궯궲귖멠쀇궻듩궸궇귡둖붋궼댲궢궘빾`궠귢궲, 벫궸밪믮궳쁀뙅궢궫긨_긥궴긥긇_귘, 긥긇_긥궴긂깗_긥궻쁀먝븫빁궕먇롢궬. 뼻렊렄묆(뼻렊렄묆) 댥뚣궻됪먨궼귌궴귪궵]뜙, 귏궫궼]뜙뽎뾩궻븉띪(}긚궬궴=뤌쀇)귩븤뭶궢궲궞궻귝궎궶롢_귩뺚궯궫.

궞궻귝궎궸묈^궓븷귩묈궖궋붋띫귩럊궯궲띿귡궞궴궕궳궖궫궞궴궼볷{궻뽜띫럱뙶궕뻃궔궬궔귞궬. 럤궰귟됓, 뤌, 릻, 궘궥궻궖, 궚귘궖궶궵궻귝궎궶뤵궛귡궞궴궕묈궖궋땺뽜귩벦귘궥궔궯궫궢뵲뽜귩궥귡뙸뭤궳궥궙붋띫궳띿궯궲럊궎궞궴궕궳궖궫궔귞궬궯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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