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뭄으로 너무 빈약한 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내지 않는가? 너무 덥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숨이 막히도록 덥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는 방법도 없을 듯하다.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 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해도 결국 치열한 곡예의 域에서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漂着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五日이 못 되어서 이 一望無際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푸르기만 하는가? 하루 온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계속 푸른 채로 있다.
-李箱의 수필 권태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