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때의 일이다. 개성에서 정전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공산군은 회담에 참가하는 유엔군 차량에 흰 깃발을 달도록 요구했다. 그 이유가 희한했다. 만약의 경우 적으로 오인되면 공격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엔군은 일리가 있다며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공산군의 ‘작전’이었다. 그들은 깃발을 단 유엔군의 차량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보면 유엔군이 마치 백기를 달고 항복하러 가는 듯한 모양이었다. 공산군은 이렇게 ‘꼼수’를 부렸다.
공산군은 회담장에서도 ‘꼼수’였다. 회담장 주변에 무장한 병사들을 배치한 것이다.
병사들은 서방측 보도진에게 총 끝을 들이대기도 하고 살벌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서방측 보도진은 주눅이 들어야 했다. 공연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유엔군이 적진을 찾아와 평화회담을 구걸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회담장 내의 좌석 배치 또한 기가 막혔다. 공산군 대표가 남쪽을 향해 앉도록 배치한 것이다. 유엔군 대표가 공산군 대표를 마주보려면 별 수 없이 북쪽을 향해 앉아야 했다. 남쪽을 바라보고 앉는 공산군은 ‘승자’였다. 북쪽을 향해서 앉는 유엔군은 ‘패자’였다. 좌석까지 이같이 교묘하게 배치하고 있었다.
의자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보니 공산군 대표의 의자는 높은 의자였다. 유엔군 대표의 의자는 낮은 의자였다. 그 바람에 유엔군 대표는 공산군 대표를 올려다봐야 했다. 공산군 대표는 유엔군 대표를 내려다보며 회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요즘 용어로 공산군은 ‘갑’, 유엔군은 ‘을’이었다.
유엔군 측이 항의를 하자 새 의자를 가져와서 바꿔 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이미 사진 촬영이 끝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