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선생에게 속아서 군수공장 근로보국대에 끌려갔다가 배가 고파 탈출한 열너댓 살의 어린 소녀는 밤중에 야산에서 일본군 장교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길로 끌려가 종군위안부가 됐다는 것이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감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있는 현지까지 찾아가야 하는 고통을 강 할머니는 당해야 했다.
"누구누구 이름을 부르며 너희들은 담요를 가지고 따라오라 해요. 그리고는 저 산위로 데려가요. 거기 나가 있는 일본 놈들이 총을 옆에다 놓고 지랄들 하고 가고 그랬죠. 어떤 놈은 방공호 속에서 그 지랄하고요."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던 할머니는 5년 전 남양주의 그곳 비닐하우스에 정착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관할 관청으로부터 이집마저 철거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고 있다.
"사회계장님이 나오셔서 양로원에 가실 의향은 없으시냐고 묻대예. 지금까지 숨어살면서 내가 정신대 갔다 왔다는 이야기 아무한테 안했는데 거기 가서 다 드러나면 따돌림 받겠다는 생각이 들고, 비밀이 보장되겠어요, 그런데 가면... 그래서 아무 대답 안했어요. 거기 안 가려 해요"
강 할머니는 누구든지 밭일이라도 시켜주기만 하면 그저 열심히 하겠노라고 말하며 쇠약하지만 고운 얼굴에 눈물을 머금었다.
박 할머니 이야기 "그놈들이 인두로 등을 지졌다"
1941년 당시 혼인신고까지 끝내놓은 박 할머니(가명)는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는 다섯 명의 군인과 경찰들에 의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끌려갔다. 그분은 얼굴을 가린다는 조건으로 50여년 전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심장이 뛰어요. 그 말만 하면 심장이 뛰어요. 어디로 갔나하면,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나가사키라고 하는 것 같아요. 거기서 남자 상대하는 교육을 받았어요. 들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 상대해줘라 그런 내용이지만 처음 겪는 처녀들이 그게 뭔 소린가 싶잖아요? 그런 뒤에 군인 트럭에 실었어요. 한 30명이 차를 타고 가는데 어딘지 몰랐지요. 다 당하고 나중에 나올 때 들어보니까 구마모토라 해요. 조그만 다다미방이 쭉 연결돼 있는데 여자들 하나씩 방방에 들어가래요. 군인 상대하러. 다들 놀래가지고, 이런 일이 어딨어요? 어느 아가씨가 도망을 치다가 붙잡혔어요. 붙잡아서 심하게 기합을 주니까 여자가 놀라 자빠져서 끝내 죽었지 뭐. 군인들이 우리들 도망가지 말라고 칼로 죽은 사람 유방을 도려내고 배를 가르고 몸을 이렇게 저렇게 하니까 창자가 막 나온거요. 우리들 보라고 그 창자를 이리저리 흔드는데, 이거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나요."
더 이상 그 아비규환의 위안소에서 견딜 수 없었던 박 할머니도 탈출을 감행하다 잡혀 들어왔다. 그에게도 어김없이 참혹한 형벌이 가해졌다.
"끌고 들어와서 거꾸로 매달아놓고 허리에다 뭐를 치고, 내 등허리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따끈따끈해요 등허리가." "할머니 등 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그러지요."
그랬다. 할머니 등에 대여섯 군데나 불로 지진 자국이 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인두 자국이 아직까지 선명했다.

▲ 박아무개할머니의 등에 남은 인두로 지진 흔적(1992)
"거꾸로 매달아놓고 인두로 지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언제부터 군인들을 상대했어요?""그날 저녁부터요."
잔인한 고문이 있던 그날 밤부터 군인을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박 할머니는 그때부터 4년여 동안 갇혀 살면서 위안부 생활을 하는 동안 아비 모르는 아이를 두 번이나 낳았다. 두 아이는 두 살 터울이었다. 날 때마다 아기들을 "어떤 아줌마"가 데려가 키우며 일주일에 한번쯤 엄마를 보게 해주었다. 물론 해산하고 사흘 뒤부터는 다시 일본군을 받아야하는 비극적인 삶이었다. 어느 날 폭격을 맞았다. 일본군 다수가 죽거나 도주해서 한명도 볼 수 없었고 위안부 여성들도 볼 수 없었다. 밟히는 시신들 위로 걸어 들어가 지하실에 있다는 아이들을 찾았다. 기적적으로 아이들은 거기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나왔다. 기구한 삶, 기구한 아이들과 기구한 엄마였다. 종전이 되었다. 엄마는 천신만고 끝에 두 아이를 데리고 귀국했다. 그러나 두 아이들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났다. 박 할머니는 그 후 다행히 혼인을 할 수 있었고 아들을 낳았으며 효성 깊은 며느리를 얻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그 모진 세월 그 억울한 삶을 듣고 시어머니를 설득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용기 있게 관계기관을 찾아가 시어머니의 삶을 죄다 이야기했다. 속리산 부근 기념품가게 그 할머니와 그 며느리 이야기다.
할머니 한분 한분과의 인터뷰는 서너 시간씩 이어졌다. 마지못해 말을 시작하던 할머니들은 점차 울분이 치솟아 질문 없어도 말씀을 이어갔다. 다만 프로그램의 길이가 정해져 있으므로 말씀을 다 소화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 도대체 이 천인공노할 더럽고 잔인한 만행이 어떤 틀과 흐름 위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는가. 그 전말과 만행의 현장을 정리해보자. 그것이 프로그램의 제2편 3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