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역사를 공부를 한다는 것이 기존의 사학자들, 특히 한족계 백제, 중국인들이 먹었던 적미, 젓갈, 돌절구로 갈아만든 차등을 마시며 살았던 불법 외노자 집단인 중국계 한족들이 이주해서 세운 나라 백제의 한족들의 후손들이 서술한 오늘날의 국사를 보게 되면 역사를 옳게 못 배운다. 왜냐하면 이들 불법 외노자 집단인 백제의 후손들은 "백제도 한국사"라는 터무니없는 소설을 써갈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에 도래해서 그렇게 미친듯이 전쟁을 했는가?
세계 3대 사가중의 하나인 사마천이 남긴 사기를 보면, 왕망시절 당시에 고구려가 이미 존재했었다. 왕망은 흉노를 토벌하기 위해서 고구려의 병사를 이용할려고 했는데, 고구려가 반란을 일으켜 오히려 왕망을 속 섞인다. 왕망은 장수를 보내 고구려를 토벌을 하고, 그 이름을 낮추어 "하구려"라고 하였다. 그리고 3세기에 작성이 된 삼국지 위지에는 삼한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즉, 왕망이 고구려를 토벌할 당시에 이미 한반도에는 삼한이라는 국가가 있었음을 의미를 한다. 역사적으로 삼한이 언제부터 시작을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진시왕이 만리장성을 건설을 할 때, 그 유민이 도망쳐와서 마한왕의 허락을 받고 동쪽땅에서 살았다는 것으로 보면, 만리장성을 축조하던 시기에도 삼한이 있었음은 명백하다. 그때에는 삼한보다는 마한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진나라 유민들이 진한을 이루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삼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고구려와 삼한이 존재하던 시기에는 이 둘 사이에 전쟁의 기록이 확인이 되지 않는다. 헌데 백제의 등장 이후로 한반도에 전쟁관련 기사가 속출을 한다. 신라와의 전쟁은 기본이고, 고구려와도 전쟁을 일삼는다. 그 이전까지 고구려의 전쟁의 대상이 중국, 그리고 요동의 제번국(모용씨의 선비족-부여국등)이었음을 감안을 한다면 고구려와 남쪽지역과의 전쟁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이런 모습이 3세기이후부터 갑자기 출현을 한다. 바로 중국 한족의 대량 이주에 따른 결과였다. 그 이주가 한반도 정벌을 위한 목적에서였는지, 아니면 계속된 전란을 피해 먹고 살기 위해서 온 것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백제 고이왕이 출현함과 동시에 한반도가 전쟁을 겪었던 것으로 보면, 정벌을 위한 목적, 즉, 전쟁을 위한 의도에서 이주를 해왔다고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일단 본인이 추후에 다시 기고하겠지만 중국의 한족들은 1차와 2차로 나뉘어져 유입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차 대량 이주는 중국의 吳나라를 그 시작으로 본다. 이 당시 吳나라와 고구려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그런 고구려 정벌을 위해서 吳나라가 군사를 파견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이 된다. 吳나라는 당시 요동의 모용선비족에게 1만명의 사신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정벌을 목적으로 군사를 파병보내는 것은 힘들지 않다. 일단은 추정이다. 이때를 1차 이주로 본다.
이때 경기와 충청 지역에 "중국식 토성인 풍납토성과 몽촌 토성이 출현"을 하게 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대형 옹관묘"가 출현을 한다. 그 출현 시기가 꼭 같이 서기3세기다. 탄소를 이용한 연대기 측정 방식에서도 서울 경기의 토성은 3세기로 추정이 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묻히었던 고고학 유물들은 전부 중국의 남조의 유물이다. 남조는 吳나라부터 시작을 하는 국가들을 일컬는데, 吳나라부터 송나라까지 존재했던 국가들을 일컬어 남조라 하고, 다른 말로 육조(6개의 국가가 존재했기 때문)라고도 한다.
그리고 2차 이주는 중국의 동진 시기에 대량으로 이루어진다. 이때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본다. 군사만 20만 이상이 파병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삼한은 완전히 정벌을 당했고 고구려까지 이때 멸망을 당했다.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평양성까지 침공해 들어가 그 왕인 고국원왕을 목을 베었다는 것은 한반도 전토를 상대로 전쟁을 해서 승리를 했다는 것과 꼭 같은 의미다. 그리고 이 인물은 일본 열도까지 쫓아들어가, 삼한의 왕가들을 추적을 한다. 이 인물이 바로 일본의 인덕천황이다. 한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열도까지 정벌한 중국의 동진의 인물이다.
그가 사마씨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동진을 세운 황제의 이름이 사마예인데, 그의 일족이 한반도와 열도를 동시에 정벌을 하고 일본의 인덕천황으로 자리잡혔을 가능성이 있다. 즉, 일본의 천황가는 중국의 한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