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초, 여러 차례의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비호 아래 히로히토와 그 측근들은 일본 군부의 중국 침략, 동남아시아 침략을 묵인했다.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군부 인사에도 참여하는 등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 전쟁을 도왔다. 그 결과, 히로히토의 재위 기간 중 일으킨 전쟁으로 2천여만 명의 아시아인들이 희생됐다.
히로히토는 1931년 만주사변을 묵인하고 관동군의 진저우 공중 폭격을 재가했다. 중일전쟁과 난징대학살도 묵인했다. 그는 중요한 결정마다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측근들의 조언에 따라 재가만 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는 패전 후 자신을 방어하는 주요 논리가 됐다.
일본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략을 승낙했고, 진주만 공격 8시간 뒤에 선전 조서를 발표했다. 히로히토는 전세가 현저히 기운 1944년 9월에도 칙어를 통해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태평양전쟁에서 연전연승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과 맞서 인도양에서 중앙 태평양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을 유지·방어하는 데 일본의 전력은 역부족이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면서 결국 히로히토는 패전과 항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NHK 라디오는 히로히토가 떨리는 목소리로 ‘포츠담 선언의 요구를 수락’(항복)하는 이른바 ‘대동아전쟁 종결의 조서(임금의 뜻을 일반에게 알리고자 적은 문서)’를 읽는 ‘옥음 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히로히토가 선언에 이용한 단어들과 언어는 너무 어려운 말이어서 대부분 일본인은 그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했다. 일본어의 문어를 이용한 데다 선언적인 말투여서 그게 ‘항복’이라는 걸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살아있는 신’이 세속의 언어로 ‘항복’을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명언이 있다.
"일본인들은 12살 소년 같다"
6년간의 일본 통치를 마친 후, 맥아더 장군은 자신이 느낀 일본인들의 특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굴함. 진실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하는 뻔뻔함. 집단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단순함.
맥아더 장군은 그런 일본인들의 특성이 마치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