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마 문화에 주목
이것은 신라 기마 토우... 가야와 신라문화의 동질성을 통해 한국문화의 원형 발견
4세기말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가야 침공 이후 가야세력 약화 일부 연맹에서 이탈
.
.
.
.
.
.
.
.
.
.
4세말 큐슈 북부지역에 완벽한 형태의 가야 갑옷 출현
이후 일본 열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後
왕릉급 무덤에서도 출토~~
나라현에 있는 박물관
이런 현상에 대한전문가 의견
나시다니 다다시 교수
일본 큐슈대학 역사학과
일본 고분에서 철제(鐵製)라는 삼각형 철판(鐵板)이 출토되었습니다.
철기(鐵器)를 만드는 재료인데
그것으로 철기(鐵器)를 만든 거지요. 4~5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철(鐵)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열도는 금속을 만들수 없는 석기시대라는 근거)
석기시대 근거를 보충하는 고고학 발굴 일지
★일본 환두대도의 최고 권위자 町田 章 교수는 "그 당시 일본은 환도를 만들 수 없었다..모양과 재질을 보면 한반도의 유물이 틀림없다"1976, [環刀の系譜], ★가야의 철무기:영어권 박사로는 일본 고고학의 최고인 존 코벨(JohnCaterCovell,1910~96,Columbia
University)은 "왜국을 최초로 정복한 한반도의 왕국은 가야가 틀림없다,왜국에서 발견되는 철기 무기가 모두 가야의 제품으로 재질 또한 가야의 철이다"
★일본에 쇠로 만든 무기와馬具.쇠투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는 서기 4세기 후반인데, 이 시기의 일본 고분에서 나오는 철제품은 성분이 한반도산이며 일본산 철로 만든 제품은 5세기 후반에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新日本 제철 야와타 연구소의 분석결과)
★九州大 "西谷正교수" "일본은 철무기를 만들지 못했다,비로소 일본이 만든 시기는 5세기 후반이다.그 이전은 모두 한반도의 제품이다" ...........................
후지마루 /일본 기타큐슈 박물관장
이 일본제 갑옷과 한반도 남부 가야의 갑옷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철제갑옷(鐵製甲)루트는 한반도 가야지방이었다고 합니다
(가야 건너온 갑옷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 의견)
두 전문가의 의견을 묶어 보면
철을 만들지도 못했는데
가야계통의 갑옷이 발굴됐다
모순된 상황에서 의문 발생
일본열도에는 금속이 생산되지 않았다.......
일본 열도에는 馬가 없었다 .........
일본 열도에는 바지를 입는 습관도 없었다....
그러하기에 바지를 입고 馬를타고
전쟁을 하는일은 더더욱 없었다........
.
.
.
.
.
발전된 갑옷이 일본열도에 갑자기 등장한다
가야의 갑옷과 그 형태가 100%일치한다
당시 일본열도에는 금속을 만들지도 못했고
이러한 갑옷을 가공할수 있는 능력은
더 더욱 없었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훈도시를 착용한 원시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의 문명을 전수받았고, 폴리네시아 앞바다
멍게 해삼의 친척 海馬를 잡아 길들이고
타고 다녔던 것인까?.....
결론:4세기 광개토대왕의 가야 침공 시점과
일본열도에 가야 군사유물 등장 시점 일치
하는걸로 보아 고구려 침공에 타격을 받은
일부가야의 일부세력이
일본열도로 본격적으로 진출
일본열도 정치중심지인 혼슈가 아닌
큐슈 북부에서 출발해 서서히 일본열도
전체로 확산하는 현상으로 보아
정치적 평화적 결탁에 의한 이동보다는
일본열도에 대한
가야인들의 군사적 정복과정으로
이해할수 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노예였다는사실을
뒷바침하는 의견들....
USA캘리포니아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야요이인(한국을 제외한 대륙민족)], [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 시켰다." <<<<세계 문명사 탐구의 권위자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
일본 역사학자 미즈노 유우(水野祐)는 그의 저서 ‘일본 고대 국가 형성’(고단샤·1978)에서
최초로 일본을 지배한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인 15대 오우진(應神·4세기)천황과 16대 닌토쿠(仁德·5세기)천황 부자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오우진 천황이 백제 복식을 입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들 천황 부자에 의해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河內)왕조가 세워졌다고 주장
<<<<<<<한국인이 왕이되어 통치한 훈도시 왜인
부상략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 15대 오오진(응신)왕이 일본왕 최초로 한복(백제조복)을 입었으며, 그 후에 대대로 일본왕들이 입었고, 33대 스이코(추고: ?∼628년)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18세기 고증학자 토우테이칸은, 고대논문 「일본결척」을 인용하여 “응신왕 시대에 백제왕이 봉녀(縫女) 2명을 보내주어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서민들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열도가 백제의 식민지에 불과하니 백제옷을 입는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같네요
"26대 게이타이 천황,백제 무령왕 친동생"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가토 에이코(加藤瑛子)교수
주장 <<<<<< 왜인이 왕이 돼었다라는 물증을 찾는게 더 어려울것 같네요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 교토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급인 고대 ‘신찬성씨록’을 자택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는 “비다쓰 천황은 백제 왕족입니다”라고 확언했다(2004년 7월11일). <<<<<<< 언제는 왜인이 지배층이 된적이 있니.........-_-;;
하야시 세이고(林靑梧)는 그의 저서 <일본서기의 암호>에서 “일본 왕통 혈족의 만세일계(萬世一系) 세습제부터가 날조이며, 일본 개국왕은 김수로왕 후손임은 상식인데도 이를 부정, 징구왕후라는 유령을 내세웠다”고 밝혔다. 또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한국인이 아니면 왜구 열도의 왕이 될 수 없다는 법이라도 있는것 같네요
워낙 왜인들이 금속도 사용할줄도 몰랐고 옷을 입지도 못한 미개인이였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왕 지배층은 한국인 ...노예 피지배 계층 농노는 왜인이라는 간단한 등식이 성립됨...
前구마모토 대학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교수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오늘날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한국어이며,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기록에 남겨진 왕 귀족 중요인물은 한국인이라면.....왜인은 노예의 역사
밖에 없는것 같네요 역시 일본열도를 한국의 지방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듯~~~~!!
"일본 문화 훈장"을 받은 존 코벨(John Cater Covell,1910~96)여사:[한국 문화의 뿌리를 찾아]~
"일본의 신도(神道).. 일왕의 뿌리..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등...한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놀라운 일이다
심지여 1945년 8월15일 일왕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를 맥아더에게 넘기는 것으로 항복을 표현하는 것조차 한국식 이다" <<<<<<지배층 한국인들의 풍습
토쿄대 사학과의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 "일본은 고대 한국인이 세운 나라이다”(‘日本國家の起源, 1967) << 한국인의 일본열도 개척 및 정복에 의해 일본이라는 나라 탄생
北史 列傳 倭國
人庶多跣足 - 맨발에
故時, 衣橫幅, 結束相連而無縫
옷에 바느질도 하지 않고
頭亦無冠
冠도 없고
有弓·矢·刀·弩·斧, 漆皮爲甲, 骨爲矢鏑
무장수준은 지금의 아프리카 원시인 수준
無文字, 唯刻木結繩. 敬佛法, 於<百濟>求得佛經, 始有文字
학문은 전혀 몰랐고
俗無盤俎, 藉以葉
접시도 없고
食用手
손으로 밥을 먹고
<<<<<<<문명과 동떨어진 왜인의 삶~~~
카큐슈우인대 오오노 스즈무(大野 晋, 1919∼) 교수"한국인은 일본열도에 금속 제조및 사용법 야금·금공 기술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조경술등 모든것을 가져왔다(‘日本語の 世界’, 1980) <<<<<<일본열도의 문명은 모두 한국인에 의한 것에서 볼때 일본열도의 주체는 왜인이 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