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증거-2개
직접증거 1. 師古曰貊在東北方三韓之屬皆貊類


중국의 문서에서 민족 비율에 대해서 교차검증이 되는.
師古曰貊在東北方三韓之屬皆貊類
師古가 말했다. 貊은 東北方에 살고 있으며, 三韓의 屬하고 있는 집단이 모두 貊의 종류이다.
직접증거 2.宋 徐兢 고구려는 한국史
고구려인 후손이 아직 남아있던 勃海人의 최후의 저항 직후로 우회적인
샘플을 사용한 것이지만 그래도 후손이므로 샘플로 사용 가능한 자료

net우익 wiki에서도 인정되는 사실이지만, 勃海는 고구려인의 후손이 정체성을 강력하게 유지

1116년에도 勃海人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고, 당연히 그 당시에도 그 주민의 일부의 고구려인 후손이 샘플로 존재.

宋 徐兢의 王氏 高麗의 역사를 서술한 高麗圖經은 존재했던 고구려인 후손 샘플 표본과 매우 가까운 1124년.
宋 高麗圖經-고구려의 선조는 朝鮮.

高麗圖經卷一
徐兢 편집.
건국
夷狄의 君長등은 속임수와 폭력으로 스스로를 높이되, 이름을 별나고 괴상하게 하여 ‘單于’이니 ‘可汗’이니 하나, 족히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오직 高麗는 箕子가 封했을 때부터 德으로 侯가 되었는데 후대에 점점 쇠약했으며, 他姓(箕子 이후의 왕조) 역시 漢 官爵을 써서 갈음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였으니, 위에는 일정한 높음이 있고 아래로는 차등이 있다. 그러므로 나라를 이어받고 代를 전하여 감에 있어 자못 기록할 만한 것이 있다. 이제 모든 사적을 고찰하고 그 역대의 왕을 序次(왕조를 순서대로 설명)하여 이 建國記를 짓는다.

始封
고려의 선조는 대개 周武王이 朝鮮에 봉한 箕子胥餘이니, 姓은 子이다. 周ㆍ秦을 지나 漢高祖 12년에 이르러 燕 衛滿이 망명할 때 무리를 모아 椎結하고 와서 오랑캐를 복속시켜 차차 朝鮮 땅을 차지하고 왕 노릇을 하였다. 子姓이 나라를 차지한 지 8백여 년 만에 衛氏의 나라가 되었고 衛氏가 나라를 차지함이 80여 년이었다. 옳음에 앞서(그 탄생 비화가 설화지만 그냥 언급하겠다는 뜻) 夫餘의 왕이 河神의 딸을 얻었는데 햇빛이 비치어 임신하였으며 卵을 낳았다. 자라서 활을 잘 쏘았는데, 세속에서 활 잘 쏘는 것을 ‘朱蒙’이라 하므로, 따라서 ‘朱蒙’이라고 이름지었다. 부여 사람들이 그의 출생이 이상했던 때문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제거할 것을 청하였다. 朱蒙이 두려워서 도망하다가 큰물을 만났는데 다리가 없어 건너지 못하게 되매 활을 가지고 물을 치면서 呪文을 외니, 물고기와 자라가 줄지어 떠올랐다.

그리하여 타고 건너가 紇升骨城에 이르러 살면서 그곳을 스스로 高句驪라 부르고, 따라서 ‘高’로 성씨를 삼고 나라를 高麗라 하였다.
후기 신라, 고구려의 貊과 동족의 穢, 胡(북방 민족)은 古朝鮮 시대에 일반적인 국민.

이 2개는 s급에 해당하는 직접 증거라고 하는 것이 가능.
거의 직접증거에 준하는 효력을 가진 정황 증거.
1.
삼국지
穢傳
옛날 箕子가 chonsen에 와서 八條의 法을 가르쳤다.
즉 8條의 법을 箕子가 chonsen에 와서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을 받은게 穢라는 뜻.
즉 최소한 穢는 朝鮮人의 중요한 민족의 하나로朝鮮 전체가 穢 혹은 穢의 혈통이 굉장한 비율로 이미 섞인 상태.
武帝의 토벌로 chonsen이 멸망, 그리고

그 영토가 4개의 영토로 분할된 後, 胡와 漢(중국인)의 계급적 구별이 갑자기 생겨남.
한국인이 xianbei나 다른 북방민족의 확률은 아직 완벽하게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저기서 말하는 chonsen에 원래 주민으로 살다가 갑자기 중국에 정복되고 漢과 구별이 생겼다는 chonsen 주민의 胡는
穢로 보는게 타당하겠지
그리고 저 것으로 또 추측이 가능한 것은, 衛滿이 중국인이라는 추측이 옳다고 해도 穢族을 흉내내서 귀화한 것에 불과하며
漢과 穢(그 당시 일반적인 한국인)의 지배층 구분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지.

그리고 보통, 胡는 유목민족으로, 貊과도 통한다고 봐야지.
穢의 언어, 풍속은 고구려의 貊과 같았으니 동일민족 확률이 점점 올라가고

net우익이 고구려를 세웠다고 망상하는 만주족의 선조 yilou는 夫餘, 고구려와 언어가 달랐다고 한다.
방언으로 달랐던 것도 아니라, 얼굴은 비슷한데 언어는 다르다고 한 것을 보면
문맥으로 보면 비슷한 것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야. 즉 만주계 퉁구스x

史記에 의하면 貊即穢
노골적으로
貊=穢
의 증명이 되고 있음.
2.초기의 신라에서 倭와 공존한 세력 穢

고구려의 貊도 상당한 인구였으나, 아마도 아직은 穢에게 밀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외에는 華夏의 인구도 상당했다는게 사실 여부를 떠나서 흥미롭다
저기에서 沃沮, 不耐는 穢이다. 그 외에 韓 다음의 穢는 穢國을 말하는 것 같다.
韓穢의 영토 즉, 韓穢之地라고 했던 이유는 韓과 穢가 어느 한쪽 도태되지 않고 둘 다 무시가 불가능한
규모로 신라에 공존했기 때문이다.
즉, 古朝鮮에도 穢는 주요한 주민으로 존재했고, 신라에도 주요한 주민으로 존재했다
다만 韓과 세력 경쟁을 했을뿐이다.
貊이라는 穢와 혈통만 비슷하고 타협을 모르는 공격적인 종족이 남하하기 前까지는.

3.중국北史-고구려의 주민이 신라에 서로 사람들을 이끌고 귀화해 신라가 강력해졌다.

신라 그 나라는 처음에 백제의 복종했는데,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하자, (백제의 강력한 공격에 의해서) 전쟁의 역할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그 후에 서로 사람들을 이끌고 귀화의 선택을 했는데 그 것에 따라서 (신라가 전쟁에 매우 도움이 될 수준의 고구려인의 인구를 받아 들였으니까) 강력해졌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백제를 (자신있게) 공격했다 그리고 迦羅를 복종시켰다.
이 책이 北史인 것은 보면 알겠지만 중국의 文帝가 眞平王과 拜禮 페스티벌 했다고

다음 페이지에서 이어지고 그리고 半 잘렸지만 北史가 잘려나간 부분이라는 것을 2번째 자료에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3개는 a급에 해당하는 정황 증거라고 하는 것이 가능.
즉, 이 것만으로 穢/貊이 한국인의 거의 대부분의 비율이라고 보기는 애매한 것은 있지만
다만 최소한 상당히 많은 비율이 이미 섞여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암시에 가까운 b급 증거 3개
1.신라 중심지 근처의 穢族의 지속적인 존재.

신라의 최초의 수도는 붉은 지역의 바로 밑의 지역에 있었다.
즉, 穢族은 신라 성립 초기부터 수도의 바로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백제 고구려의 穢貊 민족을 제노사이드로 고구려와 백제의 민족과 현대의 한국인과 상관없다는 주장은
비열하게 태어난 net우익과 그 일부 선조의 날조이다.

신라와 국가적인 거리가 좀 있는 東穢의 경우에는 영역이 저런데, 앞서 말한
붉은 지역의 뿔이 솟아 있는 지역과는 거리 차이가 꽤 있다.

붉은 지역의 최근의 이름은 浦項이다.
그런데 이 浦項은 원래 迎日郡이였다

迎日郡에서는 晋率善穢伯長印章이라는 穢族이 많이 살던 지역을 보여주는 印이 출토되었다


특히 선물한 중국의 왕조가 晉으로 보이는데 이 晉의 시대에 신라의 세력권에 이미 服屬된 붉은 지역의 族長이 선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신라 왕이 직접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종류이든, 穢貊의 穢는 이미 신라의 건국 초기부터 진출해 있었다는 것이다

晋率善穢伯長印章은 이것.
穢族의 지도자에게 준 것이다.
그런데 이 穢族의 지도자는 신라의 영향권에 있었던 지도자이고
그렇다면 고구려가 만주족 왕조이고 신라가 중국의 힘으로 고구려의 원래 민족을 제노사이드로
말살해서 현대 한국인과 관련이 없다는 것에 모순이 생긴다
왜냐하면 고구려가 穢의 성격을 가진 貊이므로.
穢貊의 고구려의 穢는 신라 초기에 벌써 신라의 중심부와 그 근처에 진출해 있었고,
그 곳에 원래 살고 있던 倭와 어느 정도 섞여서
穢貊의 아류이지만 그래도 穢貊을 형성했다.
2. 逸周書 王會解 穢韓穢

王會外夷五十六國
중국 古文書
穢族에 관련된 脚註
즉 注를 韓穢 즉, 韓의 속성도 가진 穢라고 하고 있고 東夷別種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오래된 책에 注, 이것이 한자로 붙어있고 설명이 나오면 단어 자체를 설명하는 脚註라는 것은
알 것이다.
穢族와 韓族이 거의 항상 같이 다녔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
다만 기록이 훨씬 後代의 내용이라서 사료 가치는 좀 하락하는 경우.
3.신라 후기의 새로운 지배층의 무덤 방식과 고구려의 무덤 방식이 매우 비슷함.

다만 이 것은, net우익에 한정하면 s급 공격 자료로 사용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
왜냐하면 net우익이 倭무덤이 한반도에서 발견되면 倭가 거의 지배해서 주도한 세력권이라고 하므로.
다만 개인적으로는 b급 재료로 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