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영국 상선 비하르호 대학살(1944년 3월 18일)
1944년 3월 일본의 중순양함 토네(利根)호는 인도양에서 영국의 상선 비하르(Behar)호를 격침시켰는데 함장이었던 마유즈미 하루오(黛治夫)는 바다에 빠진 108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구출하여 이송하면서 이 사실을 제16전대 사령관 산콘쥬 나오마사(左近允尚正) 제독에게 보고하였는데 나오마사는 불필요한 일을 했다고 마유즈미를 질책하고 모두 사형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마유즈미는 포로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러 번의 부탁을 나오마사 제독에게 하였으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어서 포로들을 36명, 72명으로 분리하여 비하르 호의 선장이 포함된 36명은 다른 배에 태워 풀어주고 72명의 포로들은 모두 참수하여 그 시체를 바다에 버리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산콘쥬 나오마사(左近允尚正)는 직접 살해를 결정하였다고 해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토네(利根)호의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黛治夫)는 병사들에게 살해를 지시하기는 하였으나 살인에 반대하였다는 사실이 참작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4위: 싱가폴 숙칭 대학살(1942년 2월 ~ 3월)
숙칭(Sook Ching)은 숙청(粛清)을 의미하는데 싱가폴을 점령한 일본군이 거주하는 중국인 저항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헌병을 동원하여 이들을 청소한다는 의미에서 “숙청작전”을 전개하였고 특히 농촌지역에서 자행된 만행이 극에 달하여 전체마을을 완전히 없애기도 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일본과 싱가폴의 희생자 통계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데 일본에서는 전체 희생자의 규모를 5,000 ~ 6,000여 명으로 추산하는데 반해 싱가폴과 중국에서는 30,000 ~ 100,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3위: 잠수함 I-8 대학살(1944년 3월 8일 ~ 7월 2일)
I-8은 I-7과 더불어 2차 대전 이전에 개발된 일본의 잠수함인데 1944년 3월 26일 스리랑카의 콜롬보 연안으로부터 수 백 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네덜란드 화물선(Tsijalak호)을 발견하고 침몰시킨 후 103명의 생존자를 탑승시켜 칼과 망치를 이용하여 학살하고는 그래도 살아있는 생존자들은 갑판에 버려둔 채로 잠수하여 오직 5명만이 살아남았다.(죽일 생각이라면 그냥 바다에 버려둘 일이지, 굳이 승선시킨 다음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닝기리~)
그런데 이 사건을 저지르고 난 몇 달 뒤에 또 다시 똑같은 만행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번에 희생된 배는 미국의 화물선(Jean Nicolet호)이었다.
일본군은 총검으로 고문하고 살해하여 시체를 바다에 버렸는데 그들이 연합군의 항공기를 발견하고 잠수할 때에는 갑판에 30명의 포로들이 생존해 있었으나 구조된 인원은 단지 2명에 불과하였다.
2위: 버마(현 미얀마) 철도공사(1942년 6월 ~ 1943년 10월)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라고 불리는 버마 철도(Burma Railway)는 인도로 진격하기 위한 해상로가 영국에 의해 끊기게 되자 병력과 보급물자의 수송을 위하여 육로를 개척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이런 이유로 건설된 것이 미얀마와 태국을 연결하는 415km에 달하는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이다.
1년 동안의 공사를 위해 일본군은 6만여 명에 달하는 연합군 포로들과 20만 여명에 달하는 아시아인들을 징집하였는데 전쟁포로 13,000여 명을 비롯하여 강제로 동원된 민간인 노동자 8만~10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1957년에 개봉된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가 그것이다.
1위: 마닐라 대학살(1945년 2월 ~ 3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1월 필리핀의 루손 섬에 연합군이 상륙하였을 때 당시 일본군 사령관이던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는 마닐라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도시가 아닌 시골지역에서 전투를 계속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이에 반대하는 이와부치 산지(岩淵三次) 등 2명이 독자적으로 마닐라에서 시가전을 벌였다.
그러나 미군이 상륙하였다는 사실에 그들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는 그에 대한 분풀이를 필리핀 민간인들에게 하기 시작하였는데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이고 총검으로 찔러죽이거나 참수하기도 하고 건물에 불을 질러 몰살시키기도 하였다.
미군은 일본군이 항복할 수 있도록 폭격을 중지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 만행을 거듭하였으며 그 결과 모두 10만에 이르는 민간인 희생자를 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