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년 월드컵
한국은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싸워야 했다. 해방된지 얼마안되어 일본 대표팀이 한국땅을 밟는 것을 국치라고 생각했던 이승만 할아버지 탓에, 일본에서 두 경기 모두 치루어야 했다.
이겼는지 어쨌는지, 스위스로 가게된 한국대표팀. 하지만 스위스로 가는 길은 평탄치 않았다. 서울역에서 기차타고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타고 일본으로, 일본에서 비행기 타고 스위스로 빡센 원정길에 오른 대표팀에 문제가 발생한다.
비행기표를 10개 밖에 구하지 못한 것이다. 10명으론 축구못한다.
간신히 다른 손님에게서 표를 구한 팀은 스위스로 출발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미국 공군기를 타고 갔다.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는 경기시작 10분 전이었다. 보름전부터 가서 음식물 공수받으며 경기치루는 요즘을 생각할때 기막힐 노릇이다.
시차적응 못한 한국선수들, 꿈속과 현실을 거닐며 공찼다. 결과는 헝가리 전 0대9패.
이어 벌어진 터키전에는 지친 주전선수 대신 나간 후보선수들. 결과 0대7.
아... 가슴이 아려온다.
58년 스웨덴 월드컵.
어떤놈이 출전 서류를 분실해서 출전도 못했다.
62년 칠레 월드컵
대한민국은 밥먹듯이 이겼던 일본을 이기고 유고와 겨룬다.
승자는 월드컵에 진출하는 절대절명의 경기.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께서 유고는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경기를 포기한다 했다.
선수들 다 집에 가서 쉬고 있는데 경기 시작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박통의 심경변화인지, 유고가 자본주의 국가가 됐는지,시합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당연히 연습 못한 한국은 1-3, 1-5로 패한다.
66년 런던 월드컵
당시는 북한 축구가 먹어주던 시절이었다. 전적이 무려 29승 1패 브라질보다 승률이 높았다. 당시 피파 회장은 아시아가 축구를 존나게 못한다고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묶어서 경기를 하게 했다. 빈정상한 아프리카는 15개 팀 모두 출전을 거부했다. 은근히 고집있는 놈들이다.
결국, 예선전은 겨우 호주와 최강 북한, 한국 뿐이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게 패할 경우 국민이 받을 상처가 너무 크고 정권이 위태로울거라 판단하여 경기를 포기한다.
벌금 5000달러 부과하고 선수들, 집에서 쉬었다.
70년 멕시코 월드컵
김호, 이회택,이세연, 박이천, 정강진 등 한국은 일면 역대 최강이었다.
호주를 이기면 결승진출 가능했다.
점수는 1-1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PK를 얻었다. 월드컵진출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회택이 실축했다.
74년 서독 월드컵
한국은 축구영웅 차범근이 가세하여 또 역대최강이었다.
한국의 마지막 상대는 또 호주. 지난 월드컵의 복수를 해줄 차례가 왔다.
1차전 0-0 2차전 2-1 앞선 상황. 드디어 월드컵 진출. 축포터트릴 준비를 할때,
호주팀의 리처드란 쉐끼가 롱 드로잉을 했는데 그것이 떼굴떼굴 굴러 골대로 홀인원.
2-2 무승부, 결국 3차전을 치룬다. 결국 홀인원이후 운빨이 오른 호주에게 또 지고 만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한국 대표 또 드림팀 구성한다. 조광래, 차범근, 허정무, 이영무 아시아 최강.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1승 5무 1패로 탈락.
82년 스웨덴 월드컵 - 씨바.
쿠웨이트는 2번 싸워야 하는 것을 한번으로 하자는 꼬심바리를 날렸는데 한국이 수락한다.
알고 보니 쿠웨이트는 심판을 매수했었다. (중동놈들 무선놈들이다.)
경기 심판의 불공정 판정으로 0-1. 한국은 후반 이태호의 해딩으로 골을 넣었으나 심판은 이태호가 골키퍼를 밀었다고 선언 무효처리한다.
당시 카메라 확인 결과 골키퍼와 이태호의 거리는 무려 5,6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만능팔 가제트가 아닌 이상 5.6미터 밖의 골키퍼를 만질수는 없는 것이었다. 억울한 이태호는 강력항의했고, 퇴장당했다.
세상에, 4강까지 하고나니 월드컵 본선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슬프도록 웃긴 한국의 월드컵 좌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