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요코이야기를 어학 교재에서 퇴출시키기로 전격 결정하는 쾌거를 올렸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교재채택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30분 위원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 및 공청회를 열고 요코 이야기 교재 채택에 반대하는 재미 한국학교 북가주협의회 관계자 등의 발언을 경청한 뒤 1시간 30분 만에 위원 만장일치로 퇴출을 결정했다.
요코 이야기를 추천 교재에서 퇴출키로 한 이번 결정은 미국내 주정부 차원에서는 처음이며 현재 교재로 사용중인 여타 주정부의 교재 채택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되고 있다.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슨씨의 자전적 소설인 "요코이야기"는 일본의 2차대전 패전 직후 한국을 떠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일본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고 폭력을 일삼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인은 악한처럼 묘사돼 있는 반면 일본인들은 전쟁 난민인양 표현돼 어린 학생들이 읽을 때 한국인이 가해자이고 일본인이 피해자인 것처럼 인식하기 십상이다.
요코이야기 반대 운동은 당초 이 책을 배우던 뉴욕주의 한인 학생 허보은 양이 등교를 거부한 데서 비롯됐다. 이 책을 접한 뒤 동료 학생들이 한국인을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 볼까 두려웠다고 허 양은 말했다. 36년간의 식민통치로 우리 민족에게 온갖 고통을 안겨준 것은 일본인인데도 이 책은 한국인이 오히려 가해자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당초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그린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평화와 불굴의 의지를 가르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 학교 교재로 추천됐다고 한다. 국내 일각에서도 이 책을 굳이 문제삼을 필요가 있느냐의 의견이 없지 않다. 하지만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미국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는 건 아주 다른 문제다.
이 책을 읽은 뉴욕 R중학교의 허보은 양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괴롭혔다는 얘기를 읽고 눈물이 나올 뻔 했다며 이런 잘못된 얘기를 미국 친구들이 배우는걸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말했다. 허양은 이 책을 교과서로 쓰는데 반발해 등교를 거부, 학교측이 이 책을 쓰지 않기로 했다.
한 한인 학부모는 이 책을 배운 두 자녀가 "엄마, 왜 한국인들이 착한 일본 사람들을 괴롭혔느냐"고 물어와 난감했다며 "막내만은 이 책을 배우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요코이야기"의 폐해가 확대됨에 따라 뉴욕과 보스턴, 로스 앤젤레스 지역 등 미주 전역에서 한인 학부모들은 이 책을 학교 교재에서 제외해달라는 조직적인 운동에 나섰으며, 주미 총영사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돼 이 책의 교재사용을 중단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펼쳐지게 됐다.

거짓으로 점철된 요코이야기
시베리아에서 6년간 복역한 일제 전범의 딸인 요코 가와시마씨가 쓴 요코이야기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 일제 당시 한국인들이 선량한 일본인들을 학대하고 성폭행을 일삼은 것처럼 묘사, 미국 청소년들의 한국 인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또 일본이 2천년전부터 한반도에 관심(interest)이 있었으며,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의 각축 대상이던 한국을 가쓰라-태프트 조약 등을 통해 정당하게 점령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미국 내 상당수 중학교에서 영어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요코 이야기는 일제 말기인 1945년 7월 함경북도 나남(청진시)에 살던 일제 고관의 딸인 요코씨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한국을 빠져나가 일본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11세였던 요코씨는 모친, 언니와 함께 나남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 이남까지 왔다가 폭격으로 기차가 부서진뒤 걸어서 서울에 도착했으며, 이어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갔는데 한국인들의 무자비한 추적을 극적으로 피했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강간이 자행되는 걸 목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요코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 밝혀졌다.
첫째, 요코는 1945년 7월 29일 수 주 째 계속되던 미군기 폭격의 공포를 뒤로 하고 야밤에 기차를 탄다고 했지만, 요코가 살았던 함경북도 나남지역을 공습했다는 미군 B-29기는 정작 그 당시 한반도를 폭격한 사실이 없다. 태평양에서 발진한 B-29는 비행거리가 한반도에 미치지 못했다는건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 요코 모녀는 심지어 인민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폭격으로 죽은 인민군의 군복을 벗겨 입고 다녔다고 했지만, 그때 당시 조선인민군은 창설되지 않았다. 조선인민군이 창설된건 1948년 2월 8일이다. 1945년에 군복까지 입은 인민군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물론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독립군 중에 공산주의계가 있었지만 러시아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이들의 한반도 진입을 철저히 막고, 전후 신속히 군대를 진주시켰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셋째, 남한에 도착한 요코 모녀는 한국인들의 강간 위협에 시달린다고 묘사되어 있으나 일본 패망 후 미군이 진주한 9월 9일까지 남한은 여전히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동경의 미군 사령부는 한국진입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절대 한국인에게 무장해제 당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때문에 8월15일 이후에도 오히려 일부 애국청년들이 일본군의 총검에 살해되기까지 했다. 9월9일에는 이미 부산에서 일본행 배를 기다리던 요코씨 일행이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는 대명천지의 한국에서 강간 위협을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넷째, 함경북도 지역에 대나무 숲이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아열대 식물인 대나무가 함경북도에 있을 수 없다. 대나무는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남부지방에만 서식했으나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충청도 지역까지 서식지가 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밖에도 요코 모자는 부상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먹을 게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비참한 생활을 했는데 정작 어머니는 3만6천 엔이란 거금을 숨기고 다녔다. 요코는 정말 가난한 피난민이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다행히 한인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요코이야기 반대 운동이 거세게 전개되면서 상당수 지역의 미 교육당국은 이 책을 추천교재에서 속속 제외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책을 가르치는 미국 학교는 여전히 많으며 한국인은 일본인을 괴롭힌 악한이라고 비쳐질 소지가 있는 이 책을 완전히 퇴출시키기 위한 한인사회와 정부의 노력이 중단돼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