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이 수정되는 것을 보고 일본인들은
일본인의 열등감을 확인하기 바란다.
왜 여기 한국 사이트에 기웃기웃 하는가?
여기 열등한 일본인들은 오지마라.
한반도계 도래인과 재일동포는 환영한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조상을 알수 있을것이다.
대다수 피부색 어둡고 작은 일본인은 여기 오지마라.
역사, 문화, 인종적인 열등감을 감추려고
순진한 한국인들을 세뇌시키려고 하지마라.
1등급 : 천황 , 일본 상류층(정치가, 부자, 천황, 사무라이, 학자, 기술자, 예술가..)
일본의 신분은 대부분 세습되며 2000년전부터 한국에서 건너온 도래인이 지배계층으로
현재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도래인은 재일이다.
2등급 : 일본 본토의 원주민 대부분 일본인(키가 작고 피부 어둡다)이며 한국인(지배계층)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혐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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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에는 일본인이 없다?
[속보, 세계] 2002년 12월 30일 (월) 10:30
“일본 본토에 일본인은 없다”
얼토당토않을 것 같은 이 같은 말이 적어도 인류학적인 면에서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본토에 순순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8%에 불과한 것으로 일본 국립유전자협회가 밝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국립유전자협회 공식 홈페이지(www.nig.ac.jp) 전자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2 김성열
동 협회는 전자박물관의 "일본인의 기원"이라는 코너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호우라이 사토시 박사의 연구자료를 일본인유래를 알 수 있는 가장 근거 있는 자료로써 공식 채택하고 있다. 그 동안 이와 유사한 내용의 연구들이 있긴 했으나 공신력 있는 일본기관이 공식 확인해주기는 이례적인 일이다.
동 협회 자료에 따르면 호우라이박사는 미토콘드리아 DNA다형으로부터 일본인의 유래를 밝히면서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4.8%에 불과하고, 50%는 한국인, 중국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있다고 밝혔다.
보통 인류학적인 면에서 일본인(원주민)이라 함은 죠몽인, 아이누, 류큐인 3집단을 뜻한다. 하지만 이 집단들이 각각 별도의 종족이 아니라 아이누와 류큐인은 죠몽인(본토인)의 후손으로 모두 같은 종족이라는 설도 있다.
어떻든 이들 3종족은 사는 곳이 서로 확연히 다르다. 류큐인과 아이누는 일본열도 남과 북의 끝단 즉 아이누족은 최북단 북해도에 살고 있고, 류큐인은 최남단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일본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본토(일본에서는 本州라고 부름)에는 죠몽인이라는 원주민이 있다.
日본토에 본토인DNA 보유비율 4.8%불과
그러나 일본인의 유래와 현대 일본인의 구성을 확인하기 위해 DNA를 분석한 호우라이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은 한국, 중국 등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으로 구성돼 있음이 밝혀졌다.
▲ 호우라이 박사가 밝힌 DNA로 본 5집단의 인구분포
ⓒ2002 김성열
호우라이 박사는 일본인 집단의 유전적 배경을 추리하고 현재 일본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일본의 3집단(본토 일본인, 류큐인, 아이누)과 한국인, 중국인으로 이뤄진 293명의 시료를 채취,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배열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죠몽인이라고 하는 일본 본토인과 그의 후손들이라 여겨지고 있는 아이누나 류큐인은 어느 정도 유전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음이 밝혀졌지만 본토 일본인에 있어서의 유전자 풀의 대부분은 아시아대륙으로부터의 도래인에 의해 유래됐음이 밝혀졌다. 이 결과는 현대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혼혈설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본토에 본토인(죠몽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8%에 불과하고, 오히려 중국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25.8%였으며, 한국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비율은 중국보다 약간 적은 24.2%였다. 류큐인과 아이누족은 각각 16.1%, 8.1%였다. 일본 원주민으로 간주되고 있는 죠몽, 아이누, 류큐 3집단을 모두 합쳐도 30%를(정확히 29%) 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중국인의 DNA를 가진 사람의 비율 5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이다.
"한국, 중국 등 대륙인이 건너와 일본 만들어"
이것을 인구비로 봤을 때는 상당한 차이 있다. 일본의 총인구수는 1억3000여만명이다. 이중 90%가 본토에 살고 있다. 인구수로 봤을 때 1억1700여만명이라는 숫자가 본토에 살고 있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3집단 고유DNA 비율의 합 29%를 인구수로 다시 계산하면 1억7000여만명 중 3000여만명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이 나오게 된 데는 야요이시대 이후(390년 이후) 일본국토의 대분분을 차지하는 본토(本州)에 한국, 중국 등지로부터 대륙인이 건너와 지금의 일본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결혼 또는 이민 등 종족간 이동을 통해 민족고유의 유전자에 대한 의미는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근대 국가가 탄생할 무렵부터 일본 고유민족은 퇴색하고 대부분 한국, 중국 등지의 도래인으로 구성돼있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한편 이 연구자료가 밝힌 한국인의 DNA유형별 인구구성을 보면 한국인이 한국고유의 DNA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0.6%였고, 중국 유형은 21.9%, 류큐인은 17.4%, 아이누는 1.6%였다. 그러나 일본 본토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비율은 0%였다.
중국의 경우는 중국인 고유의 DNA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60.6%였고, 한국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중국인의 비율은 10.6%였으며, 일본 본토인의 유형 1.5%, 류큐인 7.6%, 아이누유형 1.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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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와 혐한류(嫌韓流) 사이
한류와 일류(日流)가 부딪칠 때 혐한류가
장팔현 박사
요즈음 일본에서는 혐한류가 거세가 불고 있다. 가히 A급 태풍 ‘나비’를 능가하지 않나 우려된다. 이는 일본인들이 유전적으로 가지는 한국.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로 ‘우월성’과 ‘콤플렉스’라는 양면성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한국.한국인들로부터 우월성을 느낄 때는 혐한류(嫌韓流)가 유행하고, 반대로 콤플렉스를 느낄 때는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한류(韓流)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2천년 전 한일 양국의 역사전개로부터 유전되어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21세기 들어 최근의 한일관계는 바로 일본인들이 느끼는 대 한국.한국인에게서 느끼는 복잡한 이중성의 표현으로 한류와 혐한류가 동시에 흐르고 있을 뿐이다. 아니 혐한류는 한류에 대해 일본 우익세력들이 느끼는 시기와 질투와 억지, 그리고 패배감과 자학(自虐)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일본우익세력들이 일본의 서민 대중들이 한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본능적이고도 방어적인 입장으로부터 나오는 단말마와도 같은 최후의 “한국.한국인 싫어!”라는 속내의 표현이다. 이는 바로 아시아의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서중석 상임 공동대표가 8월7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나와 인터뷰하면서 일본의 대표적 우익단체인 새역모가 기본적으로 “한국은 "열등국가"이자, 중국의 "속국"”이라 말했듯이 ‘한국은 일본만 못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한류 붐 속에서 나오는 불편한 속내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점점 경제, 문화면에서 격차가 좁혀짐은 물론 오히려 한국문화가 일본문화를 압도하는 현상 속에서 일본우익세력들이 인위적으로 반한(反韓)바람을 일으킬 목적으로 일본국민들에게 일부러 혐한류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 불고있는 혐한류에 대하여 간단히 밝혀보고자한다.
1.현대의 혐한류(嫌韓流)는 한류에 대한 강한 반발의식
일본에서 혐한바람은 네 번째 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대 아스카시대가 열리기 전의 신도파인 모노노베씨에 의한 것이요, 두 번째는 여.몽연합군에 의한 두 번에 걸친 일본침공 의해 일던 것이다.
세 번째는 에도막부에 의해 일던 한류가 그치고 메이지유신이 일면서 시골무사들에 의해 정한론이 일 때 혐한바람도 동시에 거세게 불었고, 네 번째는 현재 불고 있는 ‘한류’의 반작용으로 일어나고 있는 혐한론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극우인사들에 의한 망언을 종합세트로 구성한 만화 ‘혐한류’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 한류와 혐한류는 동전의 앞과 뒤처럼 붙어 있는 것으로 항상 따라다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멀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부터 가까이는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일본을 무조건 싫어하는’ 혐일류(嫌日流)가 불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겪은 토요토미에 의한 조선 침략과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직접 혹독한 일제 치하를 겪으면서 조금의 과장을 보탰을지라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혐일류라는 점이다.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위안부로 징용으로 징병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피지배민족으로서 겪은 모진 비인간적 모욕을 바탕으로 혐일류가 분 것이니, 일본에서 이는 혐한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피해자인 우리가 가진 혐일류와 가해자인 일본이 도모하는 혐한류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의 원인도 모르고 일본인들이 혐일류를 무조건 반대하여 혐한류로 대처한다면 이는 현재 일고 있는 표피적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요,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는 침묵하면서 그 원인은 알려고도 연구도 않고 일본의 책임만 회피하고 있는 꼴이다.
고대의 혐한류는 정치가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고, 이러한 혐한 바람은 ‘일본서기’에 칠지도가 백제로부터의 하사품인데도 불구하고 헌상품으로 둔갑되고, 삼한을 신공황후가 정벌했다는 허무맹랑한 역사왜곡으로 기술되어 오늘날까지도 한일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중세 여.몽연합군에 의한 일본침공으로 불기 시작한 혐한류는 막부와 민간 모두가 느끼던 것이었다. 당시 대륙과 반도의 양국에서 차출된 일본 침공군은 쓰시마(대마도)와 이키(壹岐)섬을 휩쓸고 북 큐슈(北九州) 지역마저 살육의 도가니로 만드니, 이때 일본인들이 느끼던 공포심과 증오심은 대단했던 것 같다.
양국의 침략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본 일본은 두 번 다 때마침 불어준 태풍으로 원나라 지배 하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참상에 대해서는 에마키(두루마리 그림) 자료로 남기어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에게 혐한의 한 축으로 교육시키고 있음이다. 이러한 교육과 혐한의 바람은 곧바로 일본우익들이 한국도 일본을 침략해서 피해를 주었다는 논리를 제공해주고 있음이다.
근대 서양문물이 물밀 듯이 일본에 불어 닥치던 메이지유신기의 혐한류는 유신을 일으킨 시골무사들이 만들어 국민들에게 교육시킨 결과 지금까지도 그 맥을 유감없이 잇고 있음이니, 현재 일본에서 극우세력들을 중심으로 부는 혐한류의 근저에는 사상적으로 메이지유신기 이후 형성된 것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일양국에 대한 고대사의 대한관(對韓觀:한국을 바라보는 관점)도 대개 메이지 때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이 아직도 일본인들의 뇌리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혐한류는 메이지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혐한류로 ‘현대판 한류’에 대한 반작용으로 맞불 놓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기 내용은 요약되어 "신동아" 10월호(pp.412~418)에 "일본,왜 지금 "혐한류(嫌韓流)"인가"로 게재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