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아먹는 관습은 어디에 있었는가?
혹시 수십 명을 죽인 유영철 같은 사람이 그런 류에 속하지는 않을까?
수백 명을 죽인 사람도 있다는데, 그런 사람이 식인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심충겸 : 중국 장수들이 슬쩍 상대방의 낯빛을 살피고 나서 거짓으로 그럴 듯한 말을 해놓고 기다리
것이야말로 바로 그들의 상투적인 태도이니, 주홍모의 말인들 어떻게 모두 믿을 수 있겠습니까.
류성룡 : 오가는 문서를 전일에는 등서하여 보여주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는 유독 등서하여 보여주니 이 역시 의심스럽습니다.
최흥원(崔興源) : 굶주린 백성들이 요즘 들어 더욱 많이 죽고 있는데, 그 시체의 살점을 모두 베어 먹어버리므로 단지 백골(白骨)만 남아 성(城)밖에 쌓인 것이 성과 높이가 같습니다.
류성룡 : 비단 죽은 사람의 살점만 먹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도 서로 잡아먹는데, 포도군(捕盜軍)이 적어서 제대로 금지하지를 못합니다.
리덕형 : 부자형제(父子兄弟)도 서로 잡아먹고 있으며, 양주(楊州)의 백성은 서로 뭉쳐 도적이 되어 사람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반드시 조치를 취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뒤에라야 서로 죽이지 않게 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금지시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심충겸 : 가등청정이 경주(慶州)에 서신을 보낸 것은 반드시 그럴 만한 곡절이 있어서였을 텐데, 류총병(劉總兵)이 임기응변 하려고는 하지 않고, 호남(湖南)으로 진을 옮겼으며, 주홍모는 심유경의 화친하는 것을 반대하는 일로 적진에 들어갔으니,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가등청정이 반드시 한차례 위협하고 약탈하는 일이 있을 것이므로 깊이 염려됩니다. 또 가등청정의 마음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류총병이 관백(關白)을 도모하라는 말로써 글을 써서 들여보냈으니, 그들로서는 크게 성을 내어야 마땅할 텐데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하였다.[『선조실록』권49 선조 27년 3월 무술(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