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인류 최초의 원폭피해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방문 계획이 발표되자 과연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에 대해 사죄를 할 것인지 여부에 일찍부터 관심이 쏠렸다. 군인과 일반 시민을 구별하지 않고 10만명이 넘는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원폭 투하 행위는 국제법적으로나 인도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당연히 침략전쟁의 원흉인 일본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다수였다. 일본 정부는 오바마가 히로시마 방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일찌감치 미국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로마인 이야기>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오바마의 방문에 앞서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미국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은 너무나 잘한 일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는 “사죄를 요구하지 않고 말없이 손님을 맞는 것이 큰 소리로 사죄를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품위 있다는 인상을 준다”면서, 이런 일본의 태도를 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같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일본은 국가의 품격이 다르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도 상당히 공감했을 만한 내용이었을 텐데 인터뷰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원폭의 가공할 만한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히로시마 피폭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국격을 높였다는 시오노의 말이 어떻게 보였을까. 아무리 마음속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 일본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원폭피해자들의 마음속에는 미국으로부터 한마디 사죄나 최소한도 반성이라도 듣고 싶다는 깊은 한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 설사 미국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하더라도 그런 결정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공격으로 직접 피해를 당했던 일본의 원자폭탄 피해자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