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결코 숨길 수가 없으며, 곳곳에 흔적이 드러난다.
증거1. 식사량
현대에 일본 국민 1인이 먹는 식사는 현저히 양이 작으며, 작게 먹는 것은 중세시대부터 일본에서 문화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가난으로 인해 강제로 시작되었다.
인류가 의도적으로 작게 먹기 시작한 것은 현대에 곡물의 대량생산 이후 부터이며, 중세시대까지 인류의 소망은 많이 먹는 것이었고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저렇게 식사량이 작은 것은 극심한 가난 때문이었다.
증거2.키
일본국민들의 키는 아시아에서 현저히 작으며, 키는 유전보다 성장기 아동들의 식사량에 좌우된다.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등 단백질 섭취가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은 부족한 식사 때문에 현저히 키가 작고, 일본도 그런 이유이다.
증거3. 단백질 섭취 부족
일본은 불교 영향 때문에 중세시대부터 단백질 섭취가 금지였다고 주장하지만,
인간은 체내에서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필수 아미노산을 반드시 단백질 섭취로 보충 못하면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섭취하려는 욕망이 발생한다. (그래서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사람을 먹는 식인문화가 발생)
일본은 농산물 생산이 극히 작았기 때문에 축산이 불가능해으며, 야생 동물도 없었기 때문에 사냥도 불가능
결국 개를 잡아먹는 문화가 있었으며, 개를 먹는 문화가 사라진 건 1945년 이후 부터이다.
증거4. 생산 기술이 없었다.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이전까지 일본은 대부분 산업에서 생산 기술이 부족, 대부분 필요 상품을 한국으로부터 구입.
증거5. 왜구의 난동
해적이 난동을 일으키는 국가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고대 바이킹에서 현대 소말리아 해적까지 이유는 지독한 가난
일본도 지독히 가난했기 때문에 전국민이 해적질에 나섰고, 모든 아시아가 고통을 받았다.
증거6. 삼포 왜란
일본 해적들이 너무 난동을 부리자 일본 국민들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일본 해적이 난동을 피운다고 판단한 조선 정부는
일본인들에게 삼포 개항을 하여 조선의 생산품을 자유롭게 구입하도록 허가했다.
그러자 일본 전역에서 수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어 서로 싸웠는데, 이유는 조선의 물품을 일본에 수입하면 이윤이 10배가 넘었다고 한다.
현대에 비유하면 한국과 북한의 차이 정도 (한국 생산품을 북한에 수입하면 이윤이 10배 정도 발생한다)
그 정도로 일본이 가난했고, 경제 수준이 한국의 1/10 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