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국 금인이 섬나라의 국보,,,,,폭소

에도시대 텐메이 연간에(텐메이 4년 음력 2월 23일 = 서기력 1784년 양력 4월 14일이라는 설이 있다) 논을 경작하던 도중 진베이(일본어: 甚兵衛じんべい)라는 이름의 백성이 우연히 발견했다. 또는 발견자는 슈지 키헤이(秀治 喜平)라는 백성이고 진베이는 나카군봉행에게 제출한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커다란 바위 아래에 돌 세 개가 마치 상자처럼 금인을 감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즉 이 금인은 단순히 묻혀 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숨겨 놓은 것이다. 군봉행을 통해 후쿠오카번으로 건너갔다가, 유학자 카메이 난메이가 『후한서』에 나오는 왜노국 국왕이 후한 광무제에게 받은 금인이 이것이라고 동정하고 『금인변』(金印弁)이라는 감정서를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