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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조선원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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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아..........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 정석환, <비화/ 5.18당시 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 비망록> (신동아, 1996 1월)


 


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으로 철수하던 중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님이여...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들에게 고함>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에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달라" 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중략) 고립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 김정남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활성서, 2002년 12월)




조국은 그대들에게 총칼로 잔학했는데..그래도 태극기를 덮고...



5월 25일
아침 8시,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21세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림국장실에 쓰러지듯이 허겁지겁 들어닥치면서 어깨를 움켜쥐고는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중략) 독침 사건이 발생하자 도청 안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살벌해졌다. 여기저기서 간첩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돌고 모두들 수군거리며 도청 안에는 불안해서 못 있겠다며 상당수가 빠져나갔다...(중략)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서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이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길거리에 방치된 광주의 영령들


 


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 임창용 <"폭동"아닌 "민주항쟁" 자리매김 큰 몫 윤상원 5.18 시민군 대변인> (서울신문 1998 9월 10일)


다 피지도 못하고...여인이여...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절통하고 절통해서 어찌 눈을 감겠소...


 



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장갑자 위에 장착된 서치라이트가 도청을 비추는 가운데 계엄군은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 통첩을 방송했다. 그러나 도청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곧 총성이 울림과 함께 계엄군의 서치라이트가 박살났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 내리깔렸고 계엄군의 일제사격이 개시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달아나던 시민군을 살해했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부 사살하였다. 한 계엄군 병사는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아.......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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汚い朝鮮猿たち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아..........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 정석환, <비화/ 5.18당시 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 비망록> (신동아, 1996 1월)


 


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으로 철수하던 중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님이여...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들에게 고함>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에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달라" 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중략) 고립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 김정남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활성서, 2002년 12월)




조국은 그대들에게 총칼로 잔학했는데..그래도 태극기를 덮고...



5월 25일
아침 8시,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21세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림국장실에 쓰러지듯이 허겁지겁 들어닥치면서 어깨를 움켜쥐고는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중략) 독침 사건이 발생하자 도청 안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살벌해졌다. 여기저기서 간첩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돌고 모두들 수군거리며 도청 안에는 불안해서 못 있겠다며 상당수가 빠져나갔다...(중략)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서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이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길거리에 방치된 광주의 영령들


 


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 임창용 <"폭동"아닌 "민주항쟁" 자리매김 큰 몫 윤상원 5.18 시민군 대변인> (서울신문 1998 9월 10일)


다 피지도 못하고...여인이여...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절통하고 절통해서 어찌 눈을 감겠소...


 



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장갑자 위에 장착된 서치라이트가 도청을 비추는 가운데 계엄군은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 통첩을 방송했다. 그러나 도청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곧 총성이 울림과 함께 계엄군의 서치라이트가 박살났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 내리깔렸고 계엄군의 일제사격이 개시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달아나던 시민군을 살해했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부 사살하였다. 한 계엄군 병사는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아.......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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