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매뉴얼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행동하지 못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매뉴얼 사회 ‘일본’

▲일본의 도쿄타워.
일본은 왜 매뉴얼 사회인가?
일본은 지진, 해일, 화산 분출, 태풍, 폭설 등 자연재앙의 나라다. 일본인들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대처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사고가 나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군대조직처럼 움직인다. 지진으로 수많은 가옥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고속도로와 항만이 파괴되어도 일본인들은 질서정연하게 대피하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복구해 낸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매뉴얼대로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덕분이다.
일본 사회에서 매뉴얼은 사회시스템으로 작용된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대표적인 조직은 군대다. 일본국민들도 군대의 사병처럼 움직인다. 일본에는 군대뿐만 아니라 학교, 기업, 마을 등 어느 집단에나 매뉴얼이 있고, 구성원은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일본 전체가 군대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경제 대국 일본의 신화를 만든 것도 매뉴얼 덕분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매뉴얼은 누가 만든 것일까?
오랜 관습과 전례(前例)를 통한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일본은 흔히 ‘사무라이 나라’로 불린다. 일본은 외딴 섬나라다. 이 섬나라는 높고 험한 산지(山地)와 오지(奧地)로 각 지방이 분리되어 있다. 겉으로는 천황제 중앙집권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중앙집권이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일왕은 상징적, 주술(呪術)적 군주로서 제사장에 가까웠다. 각 지방에는 강력한 호족 세력이 있었고, 그들은 무사집단인 사무라이를 거느리고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시대 이후 일본은 700년간 사무라이들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매뉴얼을 작성했다. 지금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매뉴얼은 사무라이들이 만든 것이다. 사무라이 시대는 ‘칼’로 백성을 다스리던 시대다. 고립된 섬나라인데다 산지가 많고 지형이 험난해서 백성들은 잘못을 해도 도망칠 곳이 없다. 소수의 리더가 매뉴얼을 만들면 백성들은 군말 않고 따라야한다.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반대를 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길들여진 일본인은 지금도 군말 없이 권력에 쉽게 복종한다. 아직까지도 일본 사회시스템은 사무라이 사회시스템이다. 소수의 리더들은 통제하기 위해서 매뉴얼을 만들었고 백성들은 매뉴얼이 시키는 대로 절대복종한다. 그래서 일본은 철저하게 매뉴얼로 움직이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매뉴얼이 경제 대국 일본의 신화를 만들어 낸 원동력일까?
매뉴얼이 가진 장점은 많다. 매뉴얼의 사전적 의미는 ‘사용설명서’다. 어떤 일의 진행이나 어떤 물건의 사용법에 대해서 상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다. 누구든지 그것을 잘 이해하고 따르기만 하면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소기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잘 짜여진 매뉴얼이 있고, 이를 신속, 정확하게 실천해 내는 부지런한 일본국민이 있었기에 경제 대국 일본의 신화는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걷기, 앉는 자세, 손님맞이하기, 인사하기 등을 철저하게 교육받는다. 일본 상점에서 보는 직원들의 친절은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뉴얼에 의한 생산성 향상 운동에 강성노조운동마저 무너졌다. 매뉴얼은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교본’이자 ‘원동력’이었다.
매뉴얼 사회의 한계와 위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인들의 대처는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리더도 전문가도 없었다. 당시 원전의 추가 폭발 위험이 높아 바닷물을 끌어다가 원자로를 냉각시키자는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끌어다 원자로를 식히는 방법은 매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추가 폭발이 발생해서 피해가 엄청 커졌다. 하마터면 일본 동쪽이 원폭으로 다 날아가 버릴 뻔했다.
세계 각국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했지만, 구호물자 처리 방침이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신속하게 물품을 전달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달려온 의료진 역시 일본 면허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봉사 활동을 못했다.
매뉴얼 사회의 한계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집단감염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일본열도를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접시로 만들었고, 일본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까닭은 외국 크루즈선박에 대한 영해 내 위기대응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선례(先例)가 있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규정과 지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고 치밀하게 대응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코로나19 사태 같은 매뉴얼에 없는 사고가 일어나면 ‘선례가 없어서……’, ‘규정에 나와 있지 않아서……’라고 허둥대며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21세기 들어서 전례 없는 사고가 연속적으로 터지면서 매뉴얼이 오히려 일본사회를 움직이는데 걸림돌이 아닌가 하고 세계가 일본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재난 현장에서 구호물자가 산처럼 쌓여 있는데 구호물자 처리 방침이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굶주림 속에 방치하는 나라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일본은 매뉴얼 사회의 한계를 여실하게 노출시켰다. 그런데 일본 사회의 매뉴얼은 업그레이드되지 않고 있다. 업그레이드는커녕 리셋도 되지 않고 있다. 컴퓨터,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는 시스템이 엉키거나 부하가 걸렸을 때 리셋을 한다. 사회 시스템은 정기적으로 거대한 리셋이 필요하다.
일본사회는 리셋버튼이 없다. 그러니 일본 사회는 제대로 된 정권교체도 없고, 적폐(積弊)청산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촛불의 성찰’ 같은 시민혁명은 더더욱 없다. 일본은 아래로부터의 시민혁명이 한 번도 없는 나라다. 제품 사양이 바뀌거나 시대가 바뀌면 매뉴얼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매뉴얼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하는 매뉴얼이 없어서 매뉴얼을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거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는 일본이 매뉴얼의 함정, 매뉴얼의 붕괴를 노정시킨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
일본에 코로나19 소식을 처음 알린 건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다. 그 배가 요코하마 항에 정박한 건 2020년 2월 3일 밤이었다. 2월 4일 검역을 실시한 결과, 약 20명이 양성 반응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선박의 관할권에 대한 이유를 핑계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크루즈선에는 3,711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쇼를 즐기고 칵테일파티를 벌였다. 일본 정부가 매뉴얼에 없는 매뉴얼을 찾는 동안 크루즈선내 감염자가 무려 634명이나 발생했다.
잘못된 초기대응으로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고 일본 열도 전체를 코로나19의 거대한 배양접시로 만들고 말았다. 일본의 코로나19 폭발은 ‘예상된 돌발상황’이었다.
문제는 ‘예상된 돌발상황’이 현실화 된 후에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1세기 최대의 원전사고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책임지거나 처벌 된 자는 하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누구하나 책임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 만, 수 십 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죽어나가더라도 말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은 얌전하게 그 사태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쓰나미와 원전폭발로 수 십만 명의 이재민이 집을 잃고 굶주리고 있는데도 일본 정부는 매뉴얼에 있던 전달 루트가 모두 차단된 터여서 젠 세계에서 모여든 구호품을 전달하지 목하고 우왕좌왕했다. 당시 취재를 나간 한국 기자가 “구호품을 제때 보내주지 못하는 정부가 원망스럽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불만은 없다. 국가 위기 상황이니까. 정부 방침을 잘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끔찍한 고통과 불편을 겪으면서도 일본인들은 화를 내지도 않고 그 책임을 어떤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일본 사회시스템은 사무라이 사회시스템이다. 일본인들은 정부의 잘못이나 거짓말에 의문을 품거나 따지거나 거부하지 못한다. 지배세력에게 저항을 못하고 그냥 맹목적으로 따른다. 우리처럼 “왜?” 라고 묻지도 않고 감히 촛불 따위는 들 생각을 못한다. 일본인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 한 번도 촛불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양순한 일본국민은 매뉴얼의 울타리에 갇힌 채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베를 비롯한 일본 권력자는 마음 놓고 거짓말을 한다. 왜냐하면 한 번도 거짓말을 추궁당하거나 책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반성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코로나19 대응 부실에도 아베의 지지율은 그다지 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유권자들이 여전히 아베를 지지하는 큰 이유는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일본이 앞으로 파시즘 쪽으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