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리저리 가보고 싶은 데가 많다. 아마도 호기심이 많아서인 것 같은데,
덕분에 틈만 나면 인터넷을 뒤지면서 가보고 싶은 이곳저곳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정도다.
그런데, 사실 한국에는 가보고 싶은 곳이 별로 없다
나는 이순신 장군도 보려고 아산까지 내려갔다 또한 장도 하나 보려고 제철소밖에 없는 광양까지 내려갔다 내가 내 태어난 땅에 별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유럽이 최고고 한국은 후지다고 생각하는 상류층 아들도 아니다.
특히 한국 관광지의 물품 가격은 피 토하게 비싸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어서 한국의 관광지는 별로 가보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가 재미가 없는 건, 세 가지가 없어서 그렇다.
1.관광지마다 독특한 이미지가 없다
2.공감할 문화적 아이템이 없다,
3.특별히 기억에 남을 임팩트가 없다
미국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중국 하면? 만리장성과 자금성.
일본 하면? 사무라이.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과 게임.
베네치아 하면? 곤돌라.
파리 하면? 에펠 탑.
그럼, 우리나라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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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NOTHING
서양에 가장 잘 알려진 동양 문화는 일본 문화일 텐데, 그 중에서도 사무라이와 가부키는 상당히 잘 알려진 일본 문화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알려지게 된 것에도 사정이 있다. 처음에 가부키라는 건 일본에서도 그리 대단한 물건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19세기의 유럽 귀족 문화에 있어서 오페라는 빠질 수 없는 요소였는데, 그래서 유럽인들이 반쯤 자랑삼아 유럽에 연수 온 일본인 관료들에게 오페라를
보여 줬다고 한다. 그런데 오페라를 본 일본인들이 하는 말...
...그리고 가부키는 순식간에 "오페라의 동양 버전" 이 되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무라이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일본인들은 사무라이를 "낭만적인
기사(Knight)의 (신비로운) 동양 버전" 으로서 소개했다. "기사 무용담만큼이나 친근하지만, 뭔가 색다르다." 고 느낀 서양인들은 쉽게
일본 사무라이에 빠져들었다.
내가 2003년도 일본 교토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천년수도인지라 볼 것도 많은 곳이지만, 그런 곳에도 일일이 하나하나 의미 부여를 해 놨다.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교토 한구석의 그저 오래된 골목길은 신선조와 유신지사들이 숨바꼭질을 하던
역사의 현장으로 돌변한다. 일본의 그 많은 신사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자기만의 의미를 뽐낸다.
신사에 있는 소원을 들어 주는 돌, 인생의 의미를 축소해 놨다는 정원 등등...
겨우 두세 번 가본 정도지만, 켄신과 하지메가 칼들고 싸우던 교토의 골목 구석구석은 내겐 친근한 공간이다. 장소는 장소 그 자체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 부여된 이야기로 기억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관광지들은 특별한 의미가 별로 부여되어 있지 않은 게 보통이다.
이런 젠장, 일단 관광을 왔으면 내가 부여에 왔는지 경주에 왔는지는 구분이 가야 할 것 아닌가. 그저 오래된 곳이라고 해서 다 볼거리가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오천년동안 쌓인 그 풍성한 의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런 걸 일반인들에게까지 강요하기엔 무리다.
사실 유럽의 그 유명한 관광지들도 그리 대단한 것들만 있는 건 아니다.
(오래 된 무언가들이 우리보다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관광지들이 유명해진 건 의미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코펜하겐의 인어 공주 동상이나 브뤼셀의 오줌 누는 소년이 유럽의 양대 명물로 칭송 받을까.
왜 서양인들은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복제품 정도로만 여기느냐?
왜 게이샤나 사무라이는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한국은 안 그렇느냐?
왜 서양인들은 기생을 한국판 게이샤로만 이해하느냐? 왜 한국에 놀러 오려는 외국인이 없느냐?
왜 그렇긴 왜 그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지.
잠시 한국에 좀 왔다 한들, 한류 드라마 열풍 식으면 그걸로 끝인 법.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바꾸어야 좋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