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녀만 아니라 중상급 유녀와 오이란도 해당되었다.
다만 유녀들은 유곽 측에서도 중요한 상품이었기에, 요시와라 계율을 심각하게 어긴 것이 아니라면 어지간히해서 죽이지는 않았고 구타만 한 뒤 유곽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얼굴이나 몸에 흉터가 생기면 계급이 떨어지거나 일하는 데에 지장이 생겼고, 최악에는 요시와라에서 쫓겨나 요타카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즉 죽어도 죽지 못해도 노예 신세였던 것이다.
신 요시와라 근처에 세워진 죠칸지(浄閑寺)라는 절은 “유녀들의 나게코미데라(投げ込み寺, 投込寺)”라는 별명이 붙여진 만큼, 보통 요시와라에서 유녀들이 죽으면 죠칸지 앞에다가 내다 버렸다. 죠칸지의 승려들은 유녀들의 시신을 화장해주고 명복을 빌어주었다. 죠칸지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 공식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고, 절에 들어가보면 유녀들의 유골함을 볼 수 있는데 무려 2,000개가 넘어간다. 죠칸지만 아니라 유곽 근처의 절들은 전부 유녀 전용 나게코미데라를 겸했는데, 또 다른 유녀의 나게코미데라인 사이호지(西方寺)는 유명한 오이란이자 세습명으로 유지한 2대째 타카오 타유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다.
아무튼 상기 서술된 사정으로 인해 유녀들의 평균 수명은 약 23세. 보통 15살부터 정식 유녀가 되었는데, 아무리 옛날에는 의료 문제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짧았다 해도 유녀만큼은 심각하게 짧은 수준이며, 성병 감염으로 인한 병사나 규율을 어겨 처형된 것만 아니라 당시 화장품의 주 재료였던 수은과 납 중독, 좁은 가게 내의 비위생적인 집단생활로 인한 면역 저하와 스트레스, 낙태를 하겠다고 시술을 받다가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마찬가지여서 1893년 요시와라에는 무려 9,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중 많은 유녀들이 매독으로 고통받았다.
만일 운좋게 성병에 안 걸리거나 성병에 내성이 생겨 건강을 유지했다 해도 20대 후반이 되면 빚을 다 갚았다는 이유로 낙적이 되었으나, 실상은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내쫓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면 어릴 때부터 매춘과 가무만 배웠으니 달리 할 일이 없고, 유녀 시절부터 각종 이유로 돈을 유곽에게 뜯겼으니 개인 재산이 없거나 부족해서, 반토신조가 되어 후배 유녀들을 양성하거나 오이란의 시중담당, 호객꾼, 뚜쟁이, 게이샤로 전직해 유곽에 계속 남게 되었다. 즉 한번 유곽에 팔려오거나 태어났다면 나이가 들거나 죽을 때까지 유곽에 묶여 쓸모가 없어질 때까지 착취당하고, 죽으면 멍석에 말려 나게코미데라 앞이나 길가에 버려져 이름없는 시체로 잊혀지는 것이다.
결국 유녀들의 유일한 구원이자 안전하게 유곽에서 나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27세가 되기 전에 단골손님이 빚을 갚아주는 대신 첩이나 아내가 되어 유녀에서 낙적되는 것. 전문 용어로 미우케(身請け)가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미우케 비용은 화대비용보다 비쌌고 오이란은 배로 더 비쌌기 때문에, 어지간한 재력자도 미우케를 하는 건 매우 힘들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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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 23세
성병이 걸려 쫓겨나면 길거리에서 돗자리 매춘
도망가는 등 계율을 어기면 주인이 직접 처형.
죽으면 밭에 거름이 되거나 무덤도 없이 강에 버려지는... T T


(귀멸의 칼날 요시와라 유곽편의 황당한 미화, 마치 미풍양속의 전통문화인 것 처럼 속여 관광 상품을 만든 모습 )
20c초까지 존재했던,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성노예제도 T T
추악한 것을 숨겨 오히려 자랑인 것 처럼 세계를 속이는 w
이런 황당하고 파렴치한 민족은 일본인 이외에 없는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