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668년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 땅의 백제 사람들은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써 끊어 졌으니 선조의 무덤을 어찌 오간다 말인가?"하고 탄식했다. 일본의 백제사람들에게 백제는 본국이였다. 서기 670년 일본열도에서 백제인들은 "일본"이란 국호로 새로 태어난다. [일본서기] 등의 역사서 또한 대륙과 한반도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일본열도 중심의 역사관으로 수정편집한 나머지, 후대 일본 역사가들에게 혼란을 주고 [임나 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등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임나일본부설]의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일본역사서 [일본서기]가 왜곡편집된 진짜 이유는 당나라와 신라의 동맹으로 멸망한 백제가 신라를 갚아야 할 원수로 생각하면서 일본열도로 건너가 국호를 [일본]으로 정하고 한반도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연대까지 상향조정하고 자신들의 조상들을 대상으로 하극상하면서까지 일본중심주의로 역사를 집필하다보니 세월이 흘러 후대에 이르러서는 결국 역사해석에 혼란을 가져오고 뒤죽박죽 왜곡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일본열도 전역에서 출토되는 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이 한반도 지역의 유물들과 거의 같고, 고분 등 무덤양식들이 한반도 지역의 무덤양식들과 같다는 것이 왜곡된 내용들을 바로 잡아 주고, 최근에는 아끼히토 일본천황이 일본천황가는 백제왕족의 후손들임을 공식 고백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 역사학자들은 양심에 따라 백제멸망직후 국호를 일본으로 바꾼 백제인들의 관점에서 편찬한 나머지 후대에서 왜곡조작되는 수단으로 전락한 일본서기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 있어 일본역사학계의 자위적인 해석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상황이라는 대전제아래 한중일 문헌비교와 고고학적 유물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해석되고 이해되야 일본 또한, 쥐나처럼 역사왜곡을 통하여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경고하고 강조하는 바이다. 과학의 발전은 역사인식에 있어서도 더 이상 개인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관점과 입장만을 내세운 나머지 주관적인 해석과 이해로 전락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