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찬 너의 말…그게 인종주의다
입력2014.03.04. 오후 3:25 수정2014.03.04. 오후 4:15 기사원문
평판 근거로 他者 증오하는 게 인종주의
최근 나타나는 지역주의는 2000년대 이전의 지역주의와 달리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해광 전남대 교수(사회학)는 “현실의 경제적·정치적 지역주의와 무관한 문화적 지역주의로, 인종주의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했다. “과거 지역주의는 패권주의의 경제적·정치적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생긴 것으로 비교적 이해관계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지역주의는 다릅니다. 특정 지역 사람들을 하위 주체, 열등한 인종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인종주의는 원래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저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他者의 행위가 아니라 속성에 대한 평판을 근거로 해서 他者로서의 他者를 증오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은 인종차별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썼다. 따라서 누군가 영호남 사람들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의 기질을 ‘종특’(인터넷 용어로 ‘종족 특성’을 말함)으로 꼽아 비판한다면 우리는 그를 ‘유사 인종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
왜 지금인가? 전문가들은 “꼬집어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연민 없는 증오가 고개를 쳐드는 것은 주로 생존의 위기를 만날 때다. 21세기의 도시에서라면 일자리를 잃거나 채무에 시달리는 이가 많아질 때, 집단의 증오지수 또한 올라갈 테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몰락한 자영업자와 약육강식의 시장에서 전쟁을 겪듯 살아가는 빈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좌절과 분노 위에서 파시즘은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파시즘이 언제나 증오의 대상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는 점은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증오는 파시즘의 다른 이름이다.
증오의 결과에 대한 책임감 심어줘야
혐오발언은 그 자체로 해악이다. 더 우려할 것은, 오래 쌓인 증오는 반드시 밖으로 표출된다는 심리학적 견해다. 편견이 증오로, 증오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데는 그리 많은 걸음이 필요하지 않다. 다른 집단에 대해 편견을 구축한 이들은 먼저 ‘부정적 발언’을 지인들과 주고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 수준의 편견을 넘어서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편견의 대상을 ‘회피’하거나 ‘차별’하는 데 이른다. 이 단계마저 넘어서면 ‘물리적 공격’이 나타나고 급기야 ‘몰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지역 갈등이 ‘물리적 폭력’에 이를 가능성은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러나 혐오발언을 일삼던 일본의 극우 누리꾼 ‘넷우익’이 이후 혐한 거리시위까지 벌이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으로 번진 것을 고려하면, 현 수준의 혐오발언들도 젊은 층의 유희라고만 보아 넘기긴 어려운 일이다.
증오를 녹이는 데 마법 같은 치료제는 없다. 증오의 원인과 결과를 직시하는 것이 먼저라는 건 공통된 의견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증오, 증오의 대상인 가해자, 그리고 증오의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증오의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증오에 맞서 그것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다 적이 되었을까>의 저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이렇게 적었다. 박해광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일베와 같은 젊은 세대들은 특히 5·18을 다른 인종, 다른 영토의 사건처럼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걸 환기할 수 있는 사회적 반성이 반드시 있어야겠고요. 역사 교육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사회가 젊은 세대에 정의로움을 교육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국 증오라는 원시적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정의와 합리라는 고등 신경계의 사고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그러기 위해 진화한 것 아닐까.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참고 문헌
<한국 사회의 차별 언어>(이정복, 소통), <인종주의>(박경태, 책세상), <우리는 어쩌다 적이 되었을까?>(로버트 스턴버그, 21세기북스), ‘다중전환의 도전과 비판사회학’(2013년 비판사회학대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22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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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團에 대한 혐오는 행위에 대한 혐오로 백인이라고 하는 속성에 대한 혐오가 아닙니다.
따라서 인종주의, 인종차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KKK團員은 KKK에 대한 혐오를 백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