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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3호분(고국원왕릉으로 추정)의 부엌에서 조리하는 장면. 여자들이 부뚜막 아궁이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불을 지피고 시루 앞에서 요리를 하며 탁상에 반상기를 두 줄로 쌓아 올리고 있다. 푸주간에는 개와 사슴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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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로 오면 권농 정책에 따른 양곡의 증산으로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데다가 불교의 융성으로 육식이 절제되고,음다(飮茶) 풍속이 생김에 따라과정류와 더불어 떡은 한층 더 발달 되기에이른다.
예컨대 단군이래 고려 시대까지의 기록을 엮어 놓은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고려인이율고(栗 )를 잘 만든다고 칭송한 중국인의 견문이 소개되고 있다.
이로보아 이시대에 "율고"가 만들어 졌음을 알수있다. "율고"는원(元)의문헌인<<거가필용(居家必用)>>에 "고려율고"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조선의 떡이었다.
그 조리법은 밤을 그늘에 말려서 껍질을 벗긴 뒤 찧어서 가루를 내고,여기에 찹쌀 가루를 2/3 정도 섞은 다음 꿀물을 내려 시루에 찐鳴?하였다. 이로써 이 떡이 밤설기의 일종 임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이수광(李 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송사(宋史)>> 의 기록을 인용하여"고려에서는 상사일(上巳日)에 청애병(靑艾餠, 쑥떡)을만들어 음식물의 으뜸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어 그 주에서는 어린 쑥잎을 쌀가루에 섞어 쪄서 고( )를 만드는데이것을 "애고(艾 )"라 한다고 하여 쑥설기떡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 밖에 앞서 인용한 바 있는 <<거가필용>>에는 여진의 음식으로시고( )라는 것이 나오는데 여진 사람이 고구려 사람의 후예이고 보면 고려에서 만들어진 떡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시고"의 조리법은 찹쌀과 말린 감을 함께 찧어서 가루를 만들고,여기에 다시 대추를 삶아 으깨어 진흙처럼 말린 것을 섞어서체로 친 다음 시루에 찐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감설기떡"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고려 시대 이전에 쌀가루만을 쪄낸 백설기로 대표되던설기떡류가 고려로 내려오면서 쌀가루 또는 찹쌀 가루에다 밤ㆍ쑥ㆍ감ㆍ대추 등을 섞어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려 시대에 와서 떡의 종류와 조리법이다양하게 발달된 것은 문화의 다양화를 증 명해 주는 것이다. 특히 불교 의례와 명절 음식으로 떡을 많이 썼던 관습으로 보아도 그렇다.
고려 시대에는 설기떡류와 함께 단자류인수단(水團: 쌀가루ㆍ밀가루를 반죽하여 경단같이 만든 다음끓는 물에 삶아 냉수에 헹궈서 물기를 없앤 뒤꿀물을 넣고 실백을 띄운 것)도 만들어 졌다.
고려 공민왕 때의 목은(牧隱) 이색(李穡)은그의 <<목은집(牧隱集)>>에서 <유두일삼영 (流頭日三詠)>이란 제목 하에 유두일에 먹는 수단에 대해"백설같이 흰 살결에 달고 신맛이 섞 였더라."고 읊고 있다.
이 <<목은집>>에는 또 <점서(粘黍)>란 제목의다음과 같은 시도 수록 되어 있다. 뉘가 알까 떡의 향기를 황금빛이 면(面)에 넘치네.팥소를 넣어서 배가 부르며 먹기 쉬워서 배고픔에 좋다.소화되기 어려우니 배탈나기 쉽다.이밖에도 이 시대에는 원(元)나라로부터 상화(霜花)가 도입되기도 했다.
상화는 밀가루를 부풀려 채소로 만든 소와 팥소를 넣고 찐증편류인데, 앞 시대의 이식(餌食)과 비슷한 형태였다. 지금의 만두나 찐빵 종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가요 가운데는 "쌍화점에 쌍화 사라 가고신딘/ 회회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라는내용의 <쌍화점>이란 가요가 있다. 이는 고려 시대에 쌍화 곧 쌍화를 파는전방이 따로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고려 시대에는 떡의 종류가 많아졌음은 물론절식으로도 자리를 잡았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떡이 일반화된 시기였으니, <고려사(高麗史)><열전(列傳) 최승로(崔承老)조> 에는 광종(光宗)이 내도장(內道場)의 떡으로 걸인(乞人)에게 시주(施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같은책<신돈(辛旽)조>에도 돈(旽)이 떡을부녀자에게 던져 주었다는 기록이 있어,떡 문화가 널리 일반화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