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22일 미국, 영국, 독일(서독), 프랑스, 일본 각국의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맺은 합의로, 회의 개최 장소의 이름을 따서 플라자합의(Plaza Accord)라는 명칭이 붙었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펼쳤으며 이로인해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달러강세로 인해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어 갔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이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환율조정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플라자합의의 주요내용은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의 통화가치 상승을 유도하고, 이 조치가 통하지 않을 경우 각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서라도 이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는 강력한 정치적·군사적 파워를 행사하던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쌍둥이 적자(재정과 무역에 있어서의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이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플라자합의가 체결되자 해지펀드는 달러 매도에 나섰고, 달러가치는 빠르게 떨어졌다. 반면 1주일 만에 일본의 엔화는 약 8%, 독일의 마르크화는 약 7% 평가절상되는 즉각적 효과가 나타났다. 또, 플라자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대였던 엔화는 1985년 말 200엔, 1988년에는 120엔대까지 평가절상되어 3년 만에 100% 상승했다. 한편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2년 만에 30% 이상 평가절하되었다.
플라자합의 이후 미국은 불황에서 탈출하여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했고, 1990년대에 들어 신경제 현상으로 불리는 고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은 이로부터 오랫동안 경제불황을 겪었다.
특히 1980년대 초중반까지 4~5%의 안정적 성장을 지속했던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현상으로 인해 자동차 등 일본 주력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감소하였다. 하지만 수출경쟁력에 비해 내수시장은 빠르게 성장하여 소비가 증가하였다. 국제유가도 하락하자 일본정부의 내수 소비시장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추진하자 주식가격이 폭등하고, 부동산 투자로 이어져 거품경제가 양산되었다. 엔고로 인한 일본의 내수호황과 부동산 버블은 2년이 지나면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의 버블을 막기위해 일본정부가 금리를 인상을 단행하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기업과 은행이 무더기로 도산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플라자합의를 보더라도 한국에 이런 조약이 있었다면 한국 정부나 시민 사회의 반대로 절대로 성사될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도 친미 국가이지만 일본이 가장 전세계에서 미국에 굴욕적인 외교를 하는 사대주의 외교 국가는 바로 일본인것 같다
미국과 무역 전쟁을 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미국에 자주적인 자세를 취하는 자주 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