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餘 : 80,000戶
東夫餘 : 10,000戶 정도 추정
邑婁 : 기록 없음. 5,000戶 정도 추정
遼西郡 : 72,654戶
遼東郡 : 64,128戶
玄菟郡 : 7,594戶
樂浪郡 : 62,818戶
帶方郡 : 15,000戶 정도 추정
고구려 30,000戶
東濊 : 20,000戶
南沃沮 : 5,000戶
東沃沮 : 기록 없음. 4,000戶 정도 추정
北沃沮 : 기록 없음. 1,000戶 정도 추정
마한 : 190,000戶
辰, 弁韓 : 50,000戶
邪馬臺國 : 70,000戶
對馬國 : 1,000戶
末盧國 : 4,000戶
伊都國 : 1,000戶
奴國 : 20,000戶
不彌國 : 1,000戶
投馬國 : 50,000戶
그 외 倭의 小國들 : 기록 없음. 총합 2,3000戶 정도 추정
↑
漢書와 삼국지의 기록 (3세기)
고구려 지역 : 377,194戶 (약 189만人)
남한 지역 : 240,000戶 (약 120만人)
倭 전체 : 170,000戶 (약 85만人)
고구려의 인구는, 倭 전체의 약 2배,
고구려와 남한을 합치면 倭 전체의 4배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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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697,000戶
백제 : 240,000戶
신라 : 기록 없음.
倭(邪靡堆?) : 100,000戶
↑
隋書와 新舊唐書, 당대 비석의 기록 (7세기)
백제와 신라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고구려의 인구는 대략 350만人이지만, 이것은, 전쟁 마지막 시점의 인구이므로, 전쟁 전의 시점에는 보다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倭의 경우는, 隋書에서 인구가 100,000戶로 되어 있는데, 倭의 수도라고 하는 邪靡堆의 인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지에서 70,000戶라고 쓰여있던 邪馬臺國의 인구가 100,000戶로 늘어난 것이라면, 같은 비율을 적용했을때, 倭 전체는 242,857戶, 대략 120만人
히미코 시대보다 영토도 늘었을 것이기 때문에, 120만人+a 정도가 될 것이다.
아니면 신뢰성이 가장 높은 고구려 인구를 기준으로 같은 비율로 성장했다고 가정한다면 314,135戶, 대략 150만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