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아시안게임 개막을 5일 앞둔 1986년 9월 15일, 딸 집을 찾았던 70대 친정어머니 A 씨는 미뤄 둔 농사일이 걱정된다며 딸 집을 나선 뒤 행방이 묘연했다.
A 씨는 행불 4일 뒤인 19일 오후 2시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 이후 1991년 4월 3일 수원의 딸 집에 갔다고 집으로 돌아가던 60대 여성 B 씨가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피살되는 등 화성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다.
이춘재는 1986년부터 1994년 1월까지 모두 15명을 살해하고 21명을 성폭행(14명 피살자 중 13명 성폭행)했다.
이중 경기도 화성에서만 11명을 죽였고 17명을 성폭행했다.
그로 인해 연인원 205만 명이나 되는 경찰이 동원됐고 수사대상자 2만 1280명, 지문을 대조 당한 사람도 4만 116명에 달했다.
200만 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하고도 범인 냄새조차 맡지 못했던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엮어 무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만들었다.
2019년 7월 15일 경찰은 화성사건 6차(1987년 1월 10일), 7차(1988년 9월 7일), 9차(1990년 11월 15일) 사건 때 확보한 DNA를 국과수에 보내 동일인이 있는지 의뢰했다.
그 결과 1994년 1월 13일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춘재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고 형사대를 파견, 자백을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