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처음으로 납에서 銀을 쉽게 추출하는 방법을 조선에서 고안했는데
그것은,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이고, 일본어로는 Haifuki-ho (灰吹法)라고 부른다
이전은 銀 추출 방법은 상당히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고 효율도 낮았으며, 무엇보다 구미의 방식은 수은 중독에 되기 쉬웠다
코노 鉛銀分離法이 당시 한국의 임금 앞에서 시연되자, 모두가 놀랐으며
당시 임금이던 연산군은 새로운 銀 제련법과 은광의 활성화를 지시했고, 조선에서는 銀이 넘쳐 나기 시작한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에서 폐위된 두명의 왕 중에 한명이 바로 연산군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연산군이 폐위된 이후, 반정으로 王位에 오른 중종은 그를 보위한 사대부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유교적 신념이 강했던 당시 권력자들은, 연산군의 정책과 사치에 반발해, 수많은 은광을 폐쇄하고, 심지어 鉛銀分離法마저
금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졸지에 실직에 이른, 채굴자와 제련 기술자가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가까운 일본으로 건너, 鉛銀分離法을 전수하고, 일본의 은광 개발에 불을 당기는
결과적으로,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대항해 시대가 일어나고, 국제적인 銀중심의 금융질서 (銀本位制)가
싹틀 당시, 조선은 은광을 폐쇄하고, 물질문명과 화폐를 억압하기 시작한 반면, 일본은 조선에서 받은 기술로
銀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하고, 국력을 신장시켜, 만년 동아시아 변방(열등)國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코노 작은 나비 효과가, 이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불러 조선을 침략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만약 당시 조선이 銀본위제를 도입하고, 채굴과 상업을 장려했다면, 역사는 아마 크게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https://en.wikipedia.org/wiki/Haifuki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