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500년을 이끈 왕 27명 가운데 최고의 군주는 누구일까. 대부분 세종을 꼽을 것이다. 재위 31년 업적은 눈부셨다. 특히 한글 창제는 어떤 찬사도 부족하다. 정치를 안정시키고 조세제도를 정비해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대마도 정벌과 여진족 토벌도 큰 업적이다. 그의 헌신과 혁신은 ‘애민정신’으로 평가됐다.
606년 전 오늘(9일), 21살 세종이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 태종의 보호 속에 집권한 그는 조선왕조 기틀을 다졌다. 성군(聖君) 세종의 치적에 대한 이론이 있을 수 있을까.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제기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2018년)’란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역사적 관점에 많은 시빗거리를 제공해 온 그는 세종의 노비와 기생 확대 정책을 도마에 올렸다. 고려에서 태종까지 이어진 노비억제 정책이 세종에서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기폭제가 종모법(從母法). 여자 노비와 양인 남편 사이에 난 자식이 양인 신분에서 졸지에 노비로 전락했다. 여자 노비는 성적으로 문란해 자식의 아버지를 알 수 없다는 전제다.
이에 따라 노비가 재산 증식 수단이 되면서 노비 값이 고려 때의 5배로 뛰었다.(경국대전) 17세기에는 인구의 40~60%가 노비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세종의 두 왕자는 각각 1만여 명의 노비를 부렸고, 퇴계 이황도 367명의 노비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노비가 주인의 악행에 저항할 법적 장치를 뺏기고 기생의 딸은 기생으로, 아들은 관노가 되는 기생 세습제가 시행된 것이 세종 때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논문과 저술을 통해 ‘일부 근거의 자의적 해석’이라 반박하고 있다. 역사적 평가에는 시대정신이 반영된다. 여성을 비하하고 상품화한 왕이 세종이란 일부의 주장을 페미니즘 시대는 어떻게 평가할지. 세종은 과연 여성을 제물로 ‘양반을 위한 나라’를 만들려 했는가. 상념에 잠기는 세종 즉위 일이다.
세종이 노비종모법으로 노비를 늘리고, 주인고소금지법, 수령금지법으로 노비의 처지가 크게 악화 했으며 기생의 신분을 세습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7세기 노비의 인구는 40~60%였다는 것. 한글도 파스파 문자를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목적은 한자의 발음기호라고 말하고 있는. 충격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