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패닉… 화폐발행 2배로 급증
당시 조선은행권은 일본에서도 일본화폐와 1대1로 교환해 쓸 수 있었다. 일인들이 해방 직후 대출까지 일으키며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일인들의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당시 조선총독부는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조폐국에서 새 돈을 찍어 공수하고 그마저도 바닥나자, 서울의 조선서적인쇄공장에서 돈을 추가로 찍어내 일인들의 현금반출을 도왔다.
그 결과, 조선은행의 총 발행액(화폐발행량)은 7월 말 47억원 수준에서 9월 말 87억원으로 두 달 새 2배 가량 늘어났다. 증가분 40억원은 당시 가치로 쌀 700만석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액수.
일인들은 또 무정부 상태를 십분 활용해 광복 후 45일간 각 은행에서 2억5000만원을 새로 대출받아 돈을 빼돌렸고, 일본으로 송금한 돈만 7억원에 달했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임승융 학예연구사는 “엄청난 통화량 팽창으로 광복 후 한 달여 만에 물가가 20배로 뛰었다”고 말했다
◆휴지조각으로 변한 일본국채
일제가 전쟁비용 조달 목적으로 조선의 은행들에 강제로 떠 안겼던 일본 국채, 일본 군수산업체의 회사채는 패망 후 휴지조각으로 변해 은행에 엄청난 부실을 안겼다.
당시 조선상업은행(현재 우리은행) 대차대조표를 보면 전체 자산 23억원 중 일본국채와 정부기관 사채가 2억7000만원에 달했다.
당시 은행들이 보유했던 일본 국채는 대일청구권 보상대상에서도 빠졌다. 조선상업은행은 이어 분단으로 인해 북한지역 은행지점(전국 점포 65개 중 27개) 재산을 모두 몰수당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었다.
임 연구사는 “광복 직후 일인들의 금융침탈과 분단으로 은행이 부실화되자, 미 군정 당국은 은행 지점의 30%를 일시에 폐쇄하는 등 우리 역사상 최초의 금융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