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유럽쪽 국가들(지리적 위치가 유럽쪽인)중에서는 우리나라와 혈통적,언어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입니다. 이스탄불에 가면, 터키 사람들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어본다고 합니다.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물어보는 대부분의 외국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죠. 한국인이라 대답하시면 터키 사람들은 정말 좋아 한다고 합니다. 터키 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서쪽 끝에있는 나라인 터키에서 아시아의 동쪽 끝에있는, 중국 처럼 대국도 아니고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를 이렇게까지 잘 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터키와 우리나라는 닮은 점이 많다.
우리 나라와 터키는 아시아 대륙의 극동과 극서에 있습니다. 얼핏보면 전혀 닮지않은 나라인 듯 하지만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터키어는 인도어나 유럽어쪽보다는 우랄알타이어 쪽에 가깝다고 합니다. 우즈베키스탄 이나 카자흐스탄 언어와도 상당히 비슷한데, 우즈베키스탄은 우리 한국계 사람들도 많이 사는 곳이 아닙니까? 그래서 민족적, 언어적으로 가깝기도 합니다. 그리고 터키도 우리나라처럼 한참을 발전해서 1980년대 후반 국민소득 6천 달러에까지 이르렀는데, (동남지방에서 약간의 석유도 납니다.) 우리나라처럼 경제 위기를 한번 겪어 국민소득이 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참 다시 소생중인 나라라는 것도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게다가 터키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1970년대에 서독에 가서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당시 터키의 세번째 도시가 베를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까요? 독일에서 터키사람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경제를 어느 정도 살려놓을 수 있었지요.
현재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에 가보시면,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쇼핑가를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공통점을 찾자면, 터키와 우리나라는 전통적 악습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는 젊은 나라 라는 것이 같겠죠. 왜인지 알려면 터키의 역사를 살펴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간략하게 터키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터키는 원래 지금처럼 조그만 나라(물론 지금도 크기는 큰 나라 이지만)가 아니었습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3개 대륙에서 패권을 잡고 흔들며 지중해를 완전 장악해 그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쉴레이만 대제 사후 서서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마흐무드 2세라는 영웅이 술탄으로 등극합니다.(사실 마흐무드 2세에 대해서는 위대한 개혁군주인가 아니면 많은 영토를 잃은 실패한 군주인가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흐무드 2세의 개혁 정책이 오스만 제국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므로 이 글에서는 영웅이라고 쓰겠습니다.) 이 사람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고 나폴레옹 3세와는 5촌으로(나폴레옹 3세의 어머니인 오르탕스의 이모 에메가 이 황제의 어머니) 부패할 대로 부패한 예니체리를 폐지하고 서구적인 개혁을 단행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을 구제하여 터키를 서구화 시키려 했습니다.
전통적 이슬람의 악습은 당시 오스만제국을 유럽의 병자라고 불리게 만들 정도로 피폐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황실 근위대인 예니체리는 황제를 폐위하고 옹립하고 하는 것마저 자신들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만큼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득권을 수구하며 절대 개혁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흐무드 2세의 아버지인 셀림 3세도 이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마흐무드 2세도 이들의 지지를 받은 숙부인 무스타파 4세와 제위를 놓고 목숨건 싸움을 한 끝에 제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1826년 마흐무드 2세에 의해 폐지되고 모조리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황제가 내려주는 은혜로운 해방 이라는 뜻의 일명 은혜개혁 탄지마트입니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제국이 이미 이슬람 원리주의자 들에 의해 기울대로 기운 상태에다 남쪽 영토 획득을 노리는 북쪽 러시아와 끊임 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구열강은 크림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승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지만 결국 러시아에게 패배한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 일부와 흑해주변 영토를 모조리 잃습니다. 게다가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한 무함마드 알리가 독립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마흐무드 2세와 그 아들 압둘메지드 1세는 쓰러져가는 황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돌마바흐체 궁전을 짓고 급진적인 서구화만이 살길임을 일찍이 알아 챘으나 이 망해먹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힙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궁전중 하나였던 돌마바흐체의 건설은 결국 안그래도 어렵던 오스만 제국의 재정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압둘메지드 1세는 개혁 의지가 꺾여 방탕한 생활을 하다 몇년 가지 않아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압둘라지드 1세는 개혁을 실시하기는 했으나 오히려 황제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 시키는 역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압둘하미드 2세는, 개혁을 요구하는 뜻있는 젊은이들의 모임인 청년 터키당을 탄압하고, 오스만 제국의 국력을 약화 시키고 황제독재를 꾀하다가 폐위 당하게 됩니다. 제국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이러한 상태에 엔베르 파샤라는 멍청한 작자가 재상으로 임명됩니다. 발칸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듯 하다가 나라 안 형편도 어지러운데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편으로 끼어들더니 결국 패전하고 자신도 실각 합니다. 게다가 형 메흐메드 5세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메흐메드 6세는 황제라는 자가 영어, 프랑스어 중 한가지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완전히 연합국에 넘기는 조약인 세브르 조약에 조인해 버립니다.
터키 국민들은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청년 터키당에서 케말파샤(케말 빈 아타튀르크)라는 영웅이 나옵니다. 데살로니카 출생인 케말 무스타파(터키 사람들은 건국의 아버지라 칭송합니다.) 라는 이 영웅은 세브르 조약을 폐기 하고, 그 유명한 바닷속에 밀어넣기 작전으로 스미르나(이즈미르)에서 그리스 군을 몰아내 터키의 독립을 지켜내고 현재의 영토를 확립합니다. 이어 실용화, 서구화의 대 개혁을 단행해 유럽의 병자 오스만 제국을 새로 떠오르는 신흥 국가로 탈바꿈 시킵니다. 여성해방, 민주화, 서구화.. 모두 이 캐말파샤가 이루어낸 혁명적인 일이랍니다.
이 사람은 1918년 앙카라에 임시정부를 설치하고 대통령이 된 뒤에 연합국 세력을 몰아내고 이스탄불을 되찾습니다. 술탄 메흐메드 6세는 세브르 조약의 책임을 지고 폐위 되어 영국으로 망명하고 술탄 제도가 폐지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에 의해 지배를 받기도 하면서 민족운동을 벌인 점도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의 선각자들은 끊임없이 "전통적 쓰레기 유교 사상" "공자왈 맹자왈" "신분제도" "천한 것들 양반 어른만이 제일이다" "제사"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에만 집착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감싼 냄새나는 배불뚝이들과 쉼없는 싸움을 벌여왔었습니다. 한가지 다른점은 우리는 그것과 싸웠으나, 패배했다는 것이죠. 오늘날까지도 개혁과 개방, 서구화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과 터키는 비슷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터키와 우리는 같은
핏줄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터키는 돌궐민족이 세운 국가로, 그래서 이름도 돌궐과 비슷한 "투르크"인 것입니다.
돌궐은 쥬신이고, 우리도 돌궐이요 쥬신이니 우리도 쥬신이고 터키도 쥬신입니다.
실제로 쥬신은 세계에 2억정도 퍼져있습니다. 대한민국, 북한, 일본, 만주, 몽골, 알타이, 터키 등등 전 세계에 퍼져있지요. 그런데, 자신들이 쥬신이라는 것을 아는 쥬신은 많지 않습니다. 중국의 왜곡(돌궐, 물길, 선비 등등 갖가지 안좋은 이름으로 우리 민족을 조각내고 왜곡했죠. 당시 글을 쓸수 있었던 민족이 한(漢)족뿐이었으니...)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때문에 이것은 그리 큰 이유는 못됩니다. 하지만, 핏줄은 속일 수 없는지 터키와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보여주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축구입니다.
터키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축구를 좋아합니다. 누구든지 좋아하는 축구팀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이지요.
한국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축구"하면 전국민이 열광하죠.
이는 축구에서 공을 쫓아 달리는 것이 유목민이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쥬신은 전사이자 유목민이었죠. 쥬신들이 글로 역사를 쓰지 않은 이유는, 당시 쥬신들이 글로 역사를 써야된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뭐, 이러한 공통점들도 엿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몇 백년전의 문제가 그리 큰 작용은 못하고 있고요(서로 자신의 뿌리를 못찾고 있는 실정이니...). 역사적인 배경과 지리적인 배경 등이 가장 큰 이유로 되겠습니다.
논파 완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