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백제계였지만
혈통은 약간 다른 ^^
한쪽은 무령왕의 후손들 , 한쪽은 백제 멸망후 정착한 의자왕의 후손들
옛 족보를 불태운 칸무는 “내 생모가 무령왕 후손”임을 자랑스레 밝히려 했지만, 부계 조상(=의자왕)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을 아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백제는 무령왕(25대)∼성왕(26대)때 찬란했던 문화대국이었고, 의자왕(31대)은 멸망국 비운의 왕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쇼토쿠 태자는 일본인들이 백제 성군이었던 성왕의 화신이라 생각하며 고대 일본문화의 꽃인 아스카시대를 열었던 통치자이다. 무령왕 후손인 그의 통치(섭정)시대를 열망해서일까?
칸무는 794년, 헤이안(平安京: 현,교토)에 도읍지를 옮겨 헤이안 시대를 열어나간다. 신생국 일본은 헤이안에서 8∼19세기(1860년대 메이지 이전)까지 1천년간 사실상의 수도가 되어, 왕도(王都)와 막부(幕府: 무사정권) 문화를 펼쳐나간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 초기(795∼ )부터 비로소 고대 백제사로부터 독립(이질화)된, 일본국 특유의 문화를 펼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칸무왕의 ‘한일동족론 문서의 분서(焚書) 정책’은 본국(문화선생국) 백제 역사와의 단절을 통해, 자주적 일본국으로 태어나서 ‘소(小)백제(=일본) 문화국가의 탄생’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백제 멸망 이후부터 서서히 고대 한국의 역사·문화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걸은 일본국은 끊임없는 침략을 일삼으며 문화적 스승·부모국인 우리나라를 괴롭혀왔다. 그러더니 조선말 1910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의 모국(母國)인 우리나라의 국권마저 침탈함으로써,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뿌리를 배신하는 배은망덕(背恩亡德)의 대죄를 범하고 말았다.
지금은 지나온 역사과정을 총체적으로 심판하는 우주가을 개벽기이다. 오늘날 일본의 작태(역사왜곡 망언, 독도분쟁 등)는 근본(스승국) 뿌리를 배신하는 배사율(背師律)과 부모(부모국)와 조상을 바꾸고 부정하는 환부역조(換父易祖)의 대죄를 짓는 행위이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는 어리석은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세상이치를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그저 안타까움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