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원장께서 무예를 처음 접한 건 언제입니까.
“해방 직후죠. 사춘기의 꿈이라고 할까. 17세 무렵 막연하게 무림의 고수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소공동에 가면 18계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서 거기를 찾아갔죠. 그곳이 바로 일제시대 유도 도장이었는데, 그때는 조선연무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도부와 권법부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권법부에서 가라테를 배운 거죠. 권법이 바로 일본 가라테거든요. 일본말로 부르면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까 권법이라고 부른 겁니다.”
―‘장군의 아들’이나 ‘시라소니’ 같은 영화를 보면, 광복 직후의 주먹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도 가라테를 배웠나요.
“내가 알기로 깡패 중에 가라테를 제대로 배운 놈은 없어요. 그냥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몽둥이로 때리니까 강해 보였던 거지, 진짜 실력으로 붙었으면 김두환이고 시라소니고 형편없었을 걸. 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한 ‘쪼다’들이 주먹계에 들어간 경우는 간혹 있었고.”
―당시 가라테는 당수(唐手)로 불렸죠.
“당수(唐手)로 쓰는 사람도 있고 공수(空手)라고 쓰는 사람도 있었죠. 당수나 공수를 일본말로 옮기면 가라테가 되거든. 모두 같은 내용인데 도장별로 특색 있게 보이기 위해 권법이다 당수도다 공수도다 그렇게 불렀어요.”
―부원장께서는 조선연무관에서 가라테를 배우다가 지도관을 새로 여신 겁니까.
“초창기 조선연무관은 유도가 중심이고 한쪽 구석에 권법부가 있었어요. 그런데 조선연무관이 6·25 때 부역을 했습니다. 조선연무관을 관장하던 이병석씨는 민족주의자였거든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곤란하니까 권법부 사람들이 다른 장소를 구해서 떨어져 나간 거죠. 을지로 3가에 있던 한국체육관이 지도관 자리였어요.”
―최홍희씨는 군복무 시절인 1949년부터 9년 동안 자신이 연구해서 현대적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건 평가할 가치가 없어요. YMCA에 창무관을 만들고 경동고등학교에서 김운용씨에게 가라테를 가르친 분이 윤병인씨인데, 그 양반이 일본에서 최홍희를 만나서 같이 하자고 그랬는데 최홍희가 안했어요. 그 뒤 최홍희가 부대에서 여러가지를 조합해 무술을 만들었는데, 그게 모두 일본 거예요. 가라테를 기본으로 만든 거죠. 가라테를 기본으로 하고 명칭만 태권이라고 했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가라테라고 인정한 우리가 더 순수하죠. 최홍희가 나중에 이박사(이승만 대통령)한테 ‘태권’ 휘호를 신청했는데 이박사가 안 써주고 그랬어요.”
―태권도 이전에는 태수도(跆手道)로 불렸습니다. 태수도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까.
“내가 한남동 외무부장관 공관 위에 살 때 최홍희 집은 그 건너 이슬람교회 너머에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자주 만났죠. 5·16이 나고 얼마 안됐는데, 최홍희가 태권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태권이 뭐냐? 가라테의 변형인데’라고 대꾸했어요. 그러다가 가라테(당수·공수) 하고 태권도를 합해서 태수도라는 말이 나왔죠. 우리끼리 펴면 수(手)고 쥐면 권(拳)이니까, 쥔 거나 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했어요. 그때 최홍희가 6군단장이었는데 권총을 차고 막 출근하려다 말고 나하고 얘기한 기억이 나요.”
―결국 부원장님께서는 기술적인 수준으로 평가할 때 한국무술이 일본무술보다 뒤떨어진다고 보시는 겁니까.
“지금은 태권도가 경기화해서 앞서 있지만, 태권도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일본이 훨씬 앞섰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태권도는 가라테의 변형이니까요. 당시 한국무술은 송덕기 옹이 하는 택견뿐이었고요. 하지만 택견은 보건체조 수준이었어요. 그러니까 동작이 부드럽게 나가고 건강관리에 효과가 있는 거죠. 태권도도 강력한 힘을 가지려면 부드럽게 나가야 해요. 모든 펀치가 힘을 가지려면 미는 것이 아니라 탁 끊어줘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부드러운 자세가 필요한 거고.”
이부원장은 태권도의 경기화를 가장 먼저 추진한 사람이다. 모든 스포츠는 경기화해야만 상품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다른 도장들이 품세 수련에 매달릴 때 한발 앞서 겨루기를 도입한 것이다. 태권도에서 겨루기가 시작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겨루기에서는 주먹보다 발차기가 효과적인데, 발차기는 전통적인 일본 가라테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용인대 태권도학과 양진방 교수는 “가라테는 손 동작과 품세를 강조하며 겨루기가 없다. 따라서 발차기 겨루기 경기화 등은 현대 태권도와 가라테의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즉 겨루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태권도가 가라테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설명이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204/nd2002040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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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태권도의 최고 권위자 and 초기 태권도의 창립 멤버 and 태권도 협회인 국기원의 부원장인 이종우씨가 모두 자백했다. 태권도의 기원은 가라데다. 일본은 가라데를 한국에 빼앗긴 기분이 어떻습니까? 태권도는 올림픽의 공식 경기네요. k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