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동인도회사(특히 네덜란드 VOC와 영국 EIC)의 대응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단순 사형을 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하고 가혹했습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단순한 민간 무역회사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군사권, 사법권, 영토 지배권까지 위임받은 "국가 속의 국가"였습니다. 본국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고립된 선박 안에서 선상반란(Mutiny)이나 태업이 발생하면 배 전체의 화물과 통제권을 잃기 때문에, 이들은 반란군을 "회사에 대한 반역자"로 규정하고 극단적인 공포정치로 다스렸습니다.
행위의 경중에 따라 동인도회사가 선원들을 처벌했던 구체적인 방식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선상반란(Mutiny)에 대한 대응: 즉결 심판과 잔혹한 사형
반란을 주도했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원들에게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배 안에 설치된 군사법정(Court Martial)을 통해 그 자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교수형과 수장 (Hanging): 가장 일반적인 처형이었습니다. 돛대에 목을 매달아 다른 선원들이 똑똑히 보게 한 뒤, 시신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토막 처형 후 전시: 주동자의 경우, 다른 선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사지를 자르거나 목을 베어 선박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무인도 추방 (Marooning): 사형을 면하더라도 식수와 약간의 식량, 총 한 자루만 쥐여준 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무인도나 거친 해안가에 버렸습니다. 사실상 굶어 죽거나 맹수에게 당하라는 완곡한 사형 선고였습니다.
역사적 사건: 바타비아호의 비극 (162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소속 바타비아호가 호주 해안에서 난파된 후, 부선장이 주도한 선상반란 세력이 생존자 100여 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회사의 구조선이 도착하자 현장에서 즉시 반란 주동자들의 양손을 절단한 뒤 교수형에 처했고, 일부는 호주 대륙 황무지에 그대로 추방했습니다.
2. 태업 및 항명에 대한 대응: 신체적 고문과 영구적 장애
주동자는 아니지만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태업(Sabotage), 가벼운 항명을 저지른 선원들에게는 배를 계속 운항해야 하는 인력 특성을 고려해 죽이지 않는 선에서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용골 감기 (Keelhauling):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악명 높았던 최고의 형벌 중 하나입니다. 선원의 몸을 밧줄로 묶은 뒤, 배의 한쪽 끝에서 바닷속 집어넣어 배 밑바닥(용골)을 긁으며 반대편으로 끌어올리는 형벌이었습니다. 배 밑바닥에 다닥다닥 붙은 날카로운 따개비와 조개껍데기 때문에 온몸의 살점이 찢겨 나갔으며, 과다출혈이나 익사로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태형 (Flogging): 밧줄 끝에 매듭을 짓거나 쇳조각을 단 채찍(Cat o" nine tails)으로 가죽이 벗겨질 때까지 등 뒤를 내리쳤습니다. 십수 대만 맞아도 뼈가 보일 정도였습니다.
돛대에 묶기 및 굶기: 넙치 같은 강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돛대 꼭대기나 갑판에 며칠 동안 묶어두고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아 탈수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3. 왜 이렇게까지 가혹했을까?
17세기 동인도회사의 선원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범죄자, 부랑자, 빚쟁이 등 갈 곳 없는 최하층민들을 강제로 징집하거나 속여서 태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괴질(괴혈병), 풍토병, 해적의 위협 등으로 인도나 인도네시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선원의 절반이 죽어 나가는 가혹한 환경이었습니다. 선장과 고위 간부(상급 서기 등)들은 소수의 인원으로 이 거칠고 불만이 가득한 선원들을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끔찍하게 죽는다"는 공포심을 유지하는 것만이 선박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