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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CPU의 기본 구조이자 핵심 소자(소재)를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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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의 기본 구조이자 핵심 소자(소재)를 만든 사람"을 찾는다면, 현대 반도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국인 과학자인 강대원 박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발명한 기술 없이는 오늘날의 CPU도, 스마트폰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현대 CPU의 뼈대를 만든 강대원 박사

1960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과학자 강대원 박사는 동료 마틴 아탈라(Martin Atalla) 박사와 함께 MOSFET(전장효과 트랜지스터)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 이 기술이 왜 CPU의 핵심일까요? 초기의 트랜지스터는 전력 소모가 너무 크고 크기를 줄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반면 강대원 박사가 만든 MOSFET은 전력 소모가 극도로 적고, 크기를 분자 수준으로 작게 줄여 하나의 칩에 수십억 개씩 빽빽하게 집어넣을 수 있는 특성을 가졌습니다.

  • 현대 CPU의 기본 단위: 오늘날 인텔, AMD, 애플 등이 만드는 최신 CPU 내부에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는데, 이 트랜지스터의 99.9%가 바로 강대원 박사의 MOSFET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플래시 메모리의 기반도 마련

강대원 박사는 1967년 플로팅 게이트(Floating Gate) 구조도 최초로 발명했습니다. 이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기술로,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쓰는 NAND 플래시 메모리(SSD, USB 메모리 등)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CPU를 만드는 "돌(실리콘 웨이퍼)" 자체를 한국인이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돌 위에 어떤 방식으로 회로를 새겨 넣어야 현대적인 CPU가 작동할 수 있는지, 그 근본적인 "소자의 원리와 구조"를 발명한 인물이 바로 한국인 과학자 강대원 박사입니다.

그는 에디슨, 라이트 형제 등과 함께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 세계 반도체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집트 출신 박사와 강대원 박사의 기여도


강대원 박사와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한 인물은 이탈리아 박사가 아니라, 이집트 출신의 미국인 과학자 "모하메드 마틴 아탈라(Mohamed Martin Atalla)" 박사입니다. 이름의 발음이 "아탈라"여서 간혹 "이탈리아"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1959~1960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함께 협력하여 현대 반도체의 핵심인 MOSFET(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을 발명했습니다. 두 사람의 기여도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상호 보완적이었으며, 역할 분담이 매우 완벽했습니다.

1. 마틴 아탈라 박사의 기여: "기반 다지기 (표면 안정화)"

아탈라 박사는 강대원 박사보다 선배 연구원이자 팀의 리더 격이었습니다. 당시 반도체 연구의 가장 큰 숙제는 실리콘 표면이 공기 중의 불순물과 반응하여 전기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 불안정성이었습니다.

  • 실리콘 표면 안정화(Passivation): 아탈라 박사는 실리콘 표면에 이산화규소($SiO_2$) 산화막을 입히면 표면의 결함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소자가 안정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 산화막 기술 덕분에 비로소 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절연층"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MOSFET 발명의 결정적인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2. 강대원 박사의 기여: "MOSFET 구조의 설계 및 최초 구현"

아탈라 박사가 표면 안정화 기술을 개발하자, 당시 신입 연구원이었던 강대원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금속-산화물-반도체(MOS)" 구조의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를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작동하는 소자로 제작(구현)해 냈습니다.

  • 최초의 제작자: 아탈라 박사의 화학적 표면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실제 전류가 흐르고 제어되는 금속 게이트와 소스, 드레인 구조를 설계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바로 강대원 박사입니다.

  • 강대원 박사는 이 연구의 제1저자(Primary Inventor)로서 논문과 특허를 주도했습니다.

두 사람의 위대한 시너지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MOSFET의 탄생은 훨씬 늦어졌을 것입니다.

  • 아탈라 박사가 반도체 표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화학적·물리적 돌파구를 열었다면,

  • 강대원 박사는 그 돌파구를 바탕으로 현대 반도체의 표준이 된 전자기학적 소자 구조를 완성하고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두 사람의 기여도는 완전히 동등하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09년 두 사람은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공동으로 헌액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여담

아탈라 박사는 이후 금융 보안 분야로 진출하여, 우리가 은행 ATM 기기를 쓸 때 사용하는 비밀번호(PIN, 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 시스템을 발명해 "PIN의 아버지"로도 불립니다. 반면 강대원 박사는 벨 연구소에 계속 남아 스마트폰과 USB의 핵심인 플래시 메모리(플로팅 게이트) 기술을 추가로 발명하며 반도체 외길을 걸었습니다.

일본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일본의 반도체 전문가들과 전공자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심지어 강대원 박사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존경합니다.

일본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제패했던 1980년대 황금기의 주역이 바로 강대원 박사가 만든 "MOSFET"과 "플래시 메모리"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반 대중 차원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 분야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 이상 잘 모르는 편입니다.

일본인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인지하고 대하는지 몇 가지 흥미로운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일본 반도체 신화의 "은인"으로 기억

일본은 1970~1980년대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DRAM(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며 초호황기를 누렸습니다. 이때 일본이 미국을 이길 수 있었던 핵심 무기가 바로 강대원 박사의 MOSFET 구조였습니다. 당시 고성능·저전력을 무기로 컴퓨터 시장의 판도를 바꾼 일본 기업들(도시바, 히타치, NEC 등)의 기술진에게 강대원이라는 이름은 전공 서적과 논문에서 매일 마주치는 "기초 학문의 거인"이었습니다.

2. 일본 최고의 기술인 플래시 메모리와의 인연

일본 반도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히는 것이 도시바의 "마스오카 후지오" 박사가 개발한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입니다. 일본인들은 이 플래시 메모리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납니다. 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마스오카 박사가 플래시 메모리를 발명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바로 강대원 박사가 1967년에 발명한 "플로팅 게이트(Floating Gate)"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강대원 박사의 선행 연구가 없었다면 일본의 플래시 메모리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일본 연구소의 "수장"으로 초빙되다

일본이 강대원 박사의 업적을 얼마나 깊이 인정했는지는 그의 말년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강대원 박사가 벨 연구소를 은퇴한 후인 1988년, 일본의 대형 IT 기업인 NEC(일본전기)가 미국 뉴저지에 프린스턴 기초과학연구소(NEC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면서 그를 초대 소장(사장)으로 전격 영입했습니다.

"반도체의 기본을 바꾼 세계 최고 권위자에게 우리 연구소를 맡기겠다"는 일본 기업의 전폭적인 신뢰와 예우의 표현이었습니다.

결론

일반 일본 대중들은 "스마트폰이나 CPU를 누가 처음 만들었나?"라고 물으면 미국이나 일본 기업의 이름을 댈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반도체 엔지니어, 대학교수, IT 업계 전문가들에게 "강대원(Dawon Kahng)"이라는 이름은 국적을 초월하여 현대 전자공학의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스승이자 거인"으로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번역문보기

韓国人は CPUの基本構造と同時に核心素子(素材)を作った

CPUの基本構造と同時に核心素子(素材)を作った人"を捜したら, 現代半導体歴史上一番偉い韓国人科学者である 強大院博士を必ず憶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 彼が発明した技術なしには今日の CPUも, スマトホンも存在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現代 CPUの骨組みを作った強大院博士

1960年, アメリカベル研究所で勤めた韓国人科学者強大院博士は仲間マーティンアタルだと(Martin Atalla) 博士とともに MOSFET(戦場效果トランジスター)を最初に開発しました.

  • が技術がどうして CPUの核心でしょうか? 初期のトランジスターは全力消耗がとても大きくて大きさを減らしにくかったです. 一方強大院博士の作った MOSFETは全力消耗が極度に少なくて, 大きさを分子水準で小さく減らして一つのチップに数十億犬ずつきちきちに入れることができる特性を持ちました.

  • 現代 CPUの基本単位: 今日インテル, AMD, アップルなどが作る最新 CPU 内部には数百億犬のトランジスターの入って行くのに, このトランジスターの 99.9%がすぐ強大院博士の MOSFET 構造を基盤で作動します.

フラッシュメモリーの基盤も用意

強大院博士は 1967年 フローティングゲート(Floating Gate) 構造も最初に発明しました. これは田園が消えてもデータが消えない技術で, 今日私たちがスマトホンとコンピューターに使う NAND フラッシュメモリー(SSD, USB メモリーなど)の母胎になりました.

要約しようとすると

CPUを作る "石(シリコーンWafer)" 自体を韓国人が見つけたことではないです. するが その石の上にどんな方式で回路を刻んで入れると現代的な CPUが作動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 その根本的な "素子の原理と構造"を発明した人物がまさに韓国人科学者強大院博士です.

彼はトマス・エジソン, ライト兄弟などとともにアメリカ "発明家名誉の殿堂"にホンエックドエル位世界半導体歴史に巨大な足跡を残しました.


エジプト出身博士と強大院博士の寄与度


強大院博士とともに共同研究を進行した人物はイタリア博士ではなく, エジプト出身のアメリカ人科学者 "モハマドマーティンアタルだと(Mohamed Martin Atalla)" 博士です. 名前の発音が "アタルだと"のためたまに "イタリア"に誤認される場合があります.

二人は 1959‾1960年アメリカベル研究所で一緒に協力して現代半導体の核心である MOSFET(電界效果トランジスター)を発明しました. 二人の寄与度は優劣を選り分けることができない位相互補完的だったし, 役目分担が非常に完璧でした.

1. マーティンアタルだと博士の寄与: "基盤手懐け (表面安定化)"

アタルだと博士は強大院博士より先輩研究員と同時にチームのリーダー柄でした. 当時半導体研究の最大の宿題はシリコーン表面が空気中の不純物と応じて電気がまともに経たない不安定性でした.

  • シリコーン表面安定化(Passivation): アタルだと博士はシリコーン表面に二酸化ケイ素($SiO_2$) サンファマックを加えれば表面の欠陷が劇的に減って素子が安定化されるという事実を見つけました.

  • これがどうしてズングヨハだったら, このサンファマック技術おかげさまで初めて電気を制御することができる "縁切り層"を作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し, MOSFET 発明の決定的な飛び石になりました.

2. 強大院博士の寄与: "MOSFET 構造の設計及び最初具現"

アタルだと博士が表面安定化技術を開発すると, 当時新入研究員だった強大院博士はこのアイディアを発展させて "金属-酸化物-半導体(MOS)" 構造の電界效果トランジスターを提案して, これを実際に作動する素子で製作(具現)やりこなしました.

  • 最初の製作者: アタルだと博士の化学的表面処理技術を土台で, 実際電流が流れて制御される金属ゲートとソース, ドレーン構造を設計してプロトタイプを作り出した主人公がすぐ強大院博士です.

  • 強大院博士はこの研究の第1著者(Primary Inventor)として論文と特許を主導しました.

二人の人の偉いシナジー

二人中一人でもいなかったら MOSFETの誕生はずっと遅くなったはずです.

  • アタルだと博士が半導体表面の問題を解決する化学的・物理的突破口を開いたら,

  • 強大院博士はその突破口を土台で現代半導体の標準になった電磁気学籍素子構造を完成して現実で作り出しました.

二人の人の寄与度は完全に同等に認められています. このために 2009年二人は アメリカ発明家名誉の殿堂(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に共同でホンエックになりました.

面白い余談

アタルだと博士は以後金融保安分野で進出して, 私たちが銀行 ATM 這うのを使う時使う パスワード(PIN, 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 システムを発明して "PINのお父さん"でも殖やします. 一方強大院博士はベル研究所にずっと残ってスマトホンと USBの核心である フラッシュメモリー(フローティングゲート) 技術を追加で発明して半導体ウェギルをかけました.

日本人はその事実が分かっていましょうか?

結論から申し上げれば, 日本の半導体専門家たちと専攻者たちはこの事実をとてもよく分かっているし, 甚だしくは強大院博士をすごく高く評価して尊敬します.

日本が全世界半導体市場を制覇した 1980年代黄金期の主役がすぐ強大院博士が作った "MOSFET"と "フラッシュメモリー" 技術だったからです. ただ, 一般大衆次元では韓国と同じくこの分野を深く掘り下げない以上よく分からない方です.

日本人たちがこの事実をどんなに認知して対するのか何種類おもしろい観点で分けて見られます.

1. 日本半導体神話の "恩人"で記憶

日本は 1970‾1980年代にアメリカを追い抜いて世界 DRAM(メモリー半導体) 市場の 80% 以上を掌握してチォホファングギを享受しました. この時日本がアメリカを勝つことができた核心武器がすぐ強大院博士の MOSFET 構造でした. 当時高性能・低電力を武器でコンピューター市場の版図を変えた日本企業ら(東芝, 日立, NEC など)の技術陣に強大院という名前は専攻書籍と論文で毎日向い合う "基礎学問の巨人"でした.

2. 日本最高の技術者フラッシュメモリーとの縁

日本半導体歴史上一番偉い発明で数えられるのが東芝の "マスオカフジオ" 博士が開発した "フラッシュメモリー(Flash Memory)"です. 日本人たちはこのフラッシュメモリーに対する自負心がおびただしいです. しかし日本専門家たちはマスオカ博士がフラッシュメモリーを発明することができた根本的な土台がすぐ強大院博士が 1967年に発明した "フローティングゲート(Floating Gate)"という点を明確に認知して記録しています. 強大院博士の先行研究がなかったら日本のフラッシュメモリーも世の中に出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はずです.

3. 日本研究所の "首長"に招聘される

日本が強大院博士の業績をいくら深く認めたかは彼の末年歩みを見れば分かります. 強大院博士がベル研究所を引退した後人 1988年, 日本の大型 IT 企業人 NEC(日本電気)がアメリカニュージャージーにプリンストン基礎科学研究所(NEC Research Institute)を設立しながら 彼を招待所長(社長)でいきなり迎入しました.

"半導体の基本を変えた世界最高権威者に私たちの研究所を任せる"と言う日本企業の全幅的な信頼と礼遇の表現でした.

結論

一般日本大衆は "スマトホンや CPUを誰が初めて作ったか?"と問えばアメリカや日本企業の名前を言うでしょう.

しかし日本の 半導体エンジニア, 大学教授, IT 業界専門家たちに "強大院(Dawon Kahng)"という名前は国籍を超越して現代電子工学の基礎を用意した "偉い師匠と同時に巨人"で明らかに刻印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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