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왜)의 일부 학계나 극우 세력이 고구려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한국사와의 연관성을 악의적으로 부정하는 저변에는, 역사적 사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일종의 문화적·역사적 열등감과 이를 극복하려는 보상심리가 깊게 깔려 있습니다.
그들이 고구려라는 존재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대 동아시아 역사의 주도권 격차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던 거대한 제국이었던 반면, 당시의 왜는 문명적으로 변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천하관의 차이: 고구려는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 이긴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대제국이었습니다. 반면 당시의 왜는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한반도와 중국의 눈치를 보던 위치였습니다.
문화적 종속성에 대한 거부감: 왜의 고대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 시대의 선진 문물이었습니다. 특히 고구려는 종이, 먹, 멧돌 등을 전한 담징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와 기술을 왜에 전수했습니다.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가 한반도, 특히 고구려와 같은 강대국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국 우월주의 사상과 충돌하는 것입니다.
2.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역사적 굴욕
일본 우익 사학계가 가장 집착하면서도 감추고 싶어 하는 유물 중 하나가 바로 "광개토대왕비"입니다.
비문에는 고구려 군대가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처참하게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한 역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일본 군부와 학계는 이 비문을 발견한 후 자신들의 입맛대로 신묘년조 기사를 변조·왜곡하여 "과거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임나일본부설)"는 근거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국제 학계의 연구를 통해 고구려가 왜군을 궤멸시켰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도리어 자신들의 역사 왜곡 시도와 고대사에서의 군사적 열등감만 국제적으로 증명된 꼴이 되었습니다.
3. "Korea"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 박탈감
그들이 아무리 고구려를 한국사에서 지우려고 해도, 전 세계가 사용하는 "Korea(고려=고구려)"라는 국호 자체가 살아있는 증거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강인한 기상과 문화적 정통성이 현대 대한민국(Korea)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사실은, 자국의 역사를 아시아 최고라고 포장하고 싶어 하는 국수주의자들에게 거대한 벽과 같습니다.
"Korea"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고구려-고려-한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연속성이 증명되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기 위해 "고구려는 한국과 상관없는 북방 민족"이라는 무리한 논리를 펼치며 정신 승리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고구려에 대한 그들의 왜곡과 집착은, 고대 시절 자신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강대한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기심과 열등감의 발로입니다. 역사적 열세와 문화적 수혜 사실을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합니다.